[멕시코] 그들을 데려간 삶, 우리가 원하는 삶 : "Raúl Isidro Burgos" 사범학교에서 사라진 43명의 학생들

중남미
 

 

그들을 데려간 삶, 우리가 원하는 삶
"
Raúl
 Isidro Burgos"1 사범학교에서 사라진 43명의 학생들

Libertad Enríquez Abad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멕시코 GP , 
SIPAM (Salud Integral para la Mujer A.C 여성을 위한 종합건강) 활동가


* 역자 주


이 글은 2014년 9월 26일에 벌어진 "Raúl Isidro Burgos" 사범학교 학생 43명의 실종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글이다. 멕시코 게레로 주의 아요치나파에 있는 이 학교 학생들(모두 남학생들)은 정부의 교육예산 지원 차별과 비리에 항의하기 위해 시장의 부인이 주최하는 행사에 집회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지역 경찰과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6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그리고 이어 괴한들이 학생 58명을 납치해갔다. 그 중 15명은 살아 돌아왔고 나머지 43명이 실종되었던 것이다. 

 

사건의 배후로 이괄라 시의 시장과 부인이 지목되었으나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10월 5일 이괄라 시 근방에서 시신 28구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갱단이 학생들을 덤프트럭에 실어 지역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끌고 가 총으로 쏴 살해한 뒤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불에 태웠으며, 남은 뼈 등 유해를 부수고, 치아 등을 수습해 쓰레기봉투에 담은 뒤 강물에 던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전 시장의 부인 마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가 마약 카르텔과 결탁하고 돈 세탁을 하였으며, 이 날 이괄라 시 전 시장의 지시에 따라 경찰들이 학생들을 납치, 연행한 후 갱단 조직에 넘겼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 발견된 시신들과 그 이후에도 무더기 시신들을 발견했지만 이 시신들이 모두 이 학교 학생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갱단 조직의 우두머리를 비롯해 지역, 주, 연방 차원의 수많은 공직자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57명이 구금되었으나 검찰의 조사과정과 법무부 장관의 발표는 의문 투성이었다. 게다가 이괄라 시 전 시장 부부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당국 관계자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단 한 구 밖에 없다. 최근 법무부 장관 무리요 카람은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나도 피곤하다, 이제 그만하자"는 망언을 해 경질되기도 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간 언론 보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지역 사범학교 운동의 맥락과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낙인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짚으면서 이 사건의 본질과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재맥락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요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실종 학생들의 가족들과 지인, 동료들, 활동가들은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_번역/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 GP, GP 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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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6일, 이 날은 멕시코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준엄한 분노의 기억을 남긴 날이 되었다. 이 날, 이 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인 43명의 학생들은 학교를 나와 원래 예정되어 있었을 목적지인 집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학교의 동지들과 게레로 주의 수백만의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는 우리에게, 사라진 사람들이 정부의 통제 전략 하에, 군대에 의해 실종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 주도의 테러이다. 이 사실들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꺼내어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밝혀보고자 한다.   

 

1968년, ‘전국파업위원회(el Consejo Nacional de Huelga : CNH)가 조직한 사상 최대 규모의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PRI 당의 구스타보 디아즈 오르다즈 Gustavo Díaz Ordaz 가 집권하고 있었던 멕시코시티 뜨라뗄롤코의 'Tres Culturas (세 문화) 광장’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1971년 Halconazo 이라고 불리는 성 목요일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멕시코시티에 있는 멕시코국립과학기술대학 el Instituto politécnico Nacional (IPN), 부근에서 집회를 하다가, 진압 도중 일부 학생들이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구금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뜨라뗄롤코 68 학살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물었으며, 공립대학에 지원을 제한하는 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PRI 당의 루이tm 에체베리아 알바레즈 Luis Echeverría Álvarez 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1999년 경찰은 UNAM(la 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대학에서 수백만의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진압하여 전국 총파업을 벌인 주요 인물들을 체포해갔다. 이들은 공교육의 사유화에 반대하고, UNAM 대학의 무상교육화를 주장했다. 역시 PRI 당의 에르네스토 세디요 뽄세 데 레온 Ernesto Zedillo Ponce de León 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2013년, 이베로 대학 la Universidad Iberoamericana (Ibero)의 학생들이 부채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후 멕시코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내가 132번째 사람이다’를 내건 학생 운동이 확대되었다. 이베로의 학생 그룹은 71년 동안의 통치 이후에 다른 당에  12년 동안 빼앗겼던 정권을 다시 되찾으려 했던 보수 정당의 엔리께 뻬냐 니예토 Enrique Peña Nieto 후보의 선거운동 시기에 맞추어 그를 반대하는 집회를 조직했는데, 미디어에서는 학생 시위자들을 ‘학생이 아닌 불법 침입자’라며 비난했다. 131 명의 학생 집회 참여자들은 인터넷에서 대학 학생증을 보여주며 왜곡된 보도에 맞섰고, 이 학생 운동을 지지했던 이들이 ‘내가 132번째다’라는 슬로건으로 연대를 표명한 것이다.  

 

2014년, 경찰은 멕시코 국립과학기술대학의 학생운동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탄압하고 체포했다. 학생들은 고등교육을 보호하고 학생들에게 기술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보장하는 교육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몇 달 후, 대규모 집회에서 학생들이 경찰 및 무장단체들과 충돌하고 체포되면서 멕시코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국가를 위한 기술’이라는 까르데나스 사회주의 개념2을 이어 만든 그들의 회사를 지키는 데에 성공했다. 엔리께 뻬냐 니예토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이와 같은 정치적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라자로 까르데나스의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써 1920에 만들어진, 지역 사범학교의 기원을 생각하게 만든다. “교육부는 지역 사범학교를 양성하기 위해 훈련된 교사를 통해 커리큘럼을 보내고, 에히도(공유지)의 기술자들을 지역 사범학교를 통해 훈련시킨다. 학생들은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공동체 리더이며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정책가의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것이 지역 사범학교의 운영상이었다. 

 

사회 규범을 재구축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염두에 두었던 존 듀이의 페다고지에 입각하여, 지역 사범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안내자이자 멘토로서 채용되었다. 그래서, 멕시코에서 이러한 양성 기관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 개혁과 진보를 촉진하고자 하는 지역 교사들과 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고 사회적 경계에 서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사범학교들은 설립 당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의 종교적 배제에 불만을 가진 멕시코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의 자격을 박탈시키려고 했고, 일부 종교 그룹들은 이런 학교들을 악마로까지 부르면서 혹독하게 대했다. 심지어 교사들은 아침마다 그들의 삶을 공격하는 이들에 의해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게릴라의 근거지로 간주되어 1935년에 결성된 학생조직인 ‘멕시코사회주의자농민학생전선’ la Federación de Estudiantes Campesinos Socialistas de México (FECSM) 의 멤버들은 정부 차원에서 지역 사범학교들을 없애버리도록 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시도와 사회적 박해에 맞서 학교를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이후 1968년 학생운동 기간 동안 이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서 1968년 이전까지 17개였던 학교가 29개까지 늘어났다. 
1934년 라사로 까르데나스가 대통령이 되자, 이 학교들은 노동자, 농민들의 삶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주의 교육의 모델로 제안되어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되었고, 학교의 커리큘럼도 교육부의 공식 커리큘럼과 함께 채택되었다. 

 

다양한 논쟁들 속에서 ‘멕시코사회주의자농민학생전선’은 지역 사범학교의 교육 이념에 여전히 맑스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으며 생산, 문화, 스포츠, 정치, 농업 등의 교육 자료에 교육 계획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새로운 이론적, 이데올로기적, 방법론적 경향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개혁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교육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는 일을 소명으로 삼으며 지역의 열악한 환경과 공동체의 미래, 민중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지역 사범학교의 학생들에 대해 낙인을 찍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사범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사회적 경계에 위치한 지역들과, 가장 저발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과 싸우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발전과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관으로서 활동하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주를 하면서까지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2014년 9월 26일 게레로 주에서 "Raúl Isidro Burgos"3 사범학교의 43명의 학생들이 납치, 실종되었음에도 엔리께 뻬냐 니예토 대통령의 참모들과 법무부 책임자들은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만 주장하는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즉시 이야기해야 하는 중요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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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4개월 3일이 지나, 우리는 이 학생들이 마약 밀매와 연계된 범죄 조직에 연관되어 있다는 공식 발표를 듣게 되었다. 일부 학생들이 조직원이 되었을 것이라는 혐의와 함께 그들에게 다른 순진한 젊은 친구들을 끌어들인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헤수스 무리요 카람은 “이 학생들 중에 어떤 케이스도, 그들 중 일부가 범죄 조직의 일원이라는 우리의 결론에 대한 확증은 아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는, 모든 증거들이 그들이 차량을 타고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될 10월 2일 행진에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 중 다수가 그저 교사가 되기를 원하며, 무언가 다른 것을 배우길 원하는 젊은이들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사법 조사는 모든 과정이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최근에는 43명의 아요치나파 학생들의 삶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국내외 모두에서의 비판과 사회적 분노,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담아 2014년 9월 이후 열린 다양한 집회들에 참석했던 수천 명 민중들의 시민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요치나파 사건에 흔들리지 말라”는 내용의 엔리께 뻬냐 니예토 대통령에 대한 공식 탄원이 있기도 했다. 

 

멕시코 사회는 그들만이 아니라 아구아스 블랑카스 Aguas Blancas (1995년 게레로), 악떼알 Acteal (1997년 치아파스), 엘 차르코 El Charco (1998년 게레로), 뜰라따야 Tlataya (2014년 멕시코 주)에서와 같은 원주민, 농민 학살, 그리고 치후아후아, 게레로, 나야리트, 누에보 레온, 시나로아, 두란고, 꼴리마, 바하 깔리포르니아, 모렐로스, 따마우리빠스와 멕시코 주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여성살해로 인한 죽음 등 다양한 국가적 비극의 사례들을 통해 이미 수천 명에게 실종과 죽음을 안겼다. 
그래서, 아요치나파 사건은 단지 이 학생들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하고 끔찍한 악몽일 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아 부모와 형제, 자매,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던 18세에서 33세까지의 이 학생들처럼, 매우 취약한 삶의 조건들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올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 같은 젊은이들과 그들의 학교는 신자유주의 구조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역사학자이자 미국 뉴 햄프셔 주 다트머스 대학의 교수인 Tanalis Padilla는 멕시코 언론 라 호르나다 La Jornada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여러 사회에서 학습은 희망을 키우고, 현실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의 중요한 무기가 되어왔다”고 설명했다. 
“교육은 지식의 세계를 상징한다.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교육받은 부자들과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 간의 노동이 국제적으로 분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멕시코 사범학교의 학생들은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들은 1980년대부터 멕시코에 유입된 신자유주의 계급 질서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상이 돌아가는 제도교육에 저항하기 위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모순을 느끼는 모든 이들과 세금을 내는 모든 시민들, 모든 사람들이 함께할 국가적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그들은 그저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학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려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위험’의 상징이 되었다. 지역 사범학교와 같은 공동체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그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이나, 까르데나스주의와 같은 사회적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언제까지 세계가 지금과 같을 필요는 없으며, 우리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이 권리를 주장하고, 그 역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그들에게 통제당하지 않을 수 있다.“

 

H.I.J.O.S (‘망각과 침묵에 저항하여 정체성과 정의를 찾는 아들과 딸들’의 약자)는 검찰관과 멕시코 대통령 같은 대표자들은 국가적 테러리스트이며, 이들은 완전한 사실 해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법무부의 당국자가 ‘조사’를 이끌어내는 데에만 10일이 걸렸고 계속해서 이 문제를 지역 이슈로 축소시키려 시도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멕시코 주 당국자는 “이괄라(43명의 학생들이 실종된 곳)는 주state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H.I.J.O.S. 는 “연방검찰청의 발표는 모순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은 이 사건을 ‘꼼꼼하게’ 조사했다고 하면서도, 이 지역의 군대가 납치와 살인을 했다는 목격자들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렸던 9월 26일 밤, 끔찍하게 살갗이 벗겨진 학생 훌리오 쎄자르 몬드라곤 폰테스가 민간병원에 도움을 요청하러 달려갔던 중요한 연관 사실 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수많은 국제 인권조약에 서명을 하고 비준한 바 있다. 따라서 아요치나파 사건을 중요한 사례로써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주, 연방 차원의 모든 당국자들이 학생들의 실종에 연루되어 있으며, 그 사실이 이 사건을 법정이나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범죄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한 납치가 아니라 어떤 강제적 권력이 작동해 사라진 사건으로써 조사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 무리요 카람은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들만을 강압적으로 구금하고, 이들의 주장에만 근거해 조사를 종결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혹을 더하고 있다. 게다가 그 자신이 연방검찰청에 아르헨티나 법 인류학 팀이나 미국 인권위원회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과 같은 외부 전문가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면서도, 정확하게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학생 한 명의 유해에서 나온 DNA만을 가지고 증거라고 간주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명확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서 대화의 자리조차도 모두 깨어버림으로써 실종된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 측근들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중집회에서 43명 학생들의 교사, 부모, 형제, 자매, 아내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연방검찰청에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강력한 과학적 수사가 진행될 때까지 이 젊은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신속하지 못한 조사에 항의하며 멕시코 사법 당국이 전문가들을 구성해 신뢰할만한 조사를 하겠다고 보장하지 않는다면, 시민 불복종 행동으로 올해 있을 게레로 주의 선거를 치러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연방검찰청이 조사 라인을 개방하고 군 관련자들과 앙헬 아귀레 Angel Aguirre 전 게레로 주지사까지 조사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 사건이 사범학교가 계속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이며, 또한 동시에 사회적 기금과 조직, 노조와 학생들이 붕괴된 정치 체제의 변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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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료 지지자들과 친구들,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은 아요치나파 사건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공식 담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분의 연대와 지지를 요청합니다.

 

법무부장관 무리요 카람의 조사 결과에만 매달려 있는 뻬냐 니예토 대통령에게 “아요치나파는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정의와 자유를 위한 멕시코인들의 활동과 고통을 함께 나눌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멕시코 정부의 공식 입장 대신 멕시코 독립 언론의 보도와 이 사건에 대한 국제 뉴스를 퍼뜨려주기를 바랍니다. 

 


"Raúl Isidro Burgos“ 사범학교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ormal.Ayotzinapa.Gro/timeline)에서도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진과 함께 #NiUnAsesinatoMás (더 이상의 살해는 그만)  #VivosLosQueremos (우리가 원하는 삶) 해시태그를 붙여서 메시지를 게시해 주세요. 우리 멕시코 GP는 여러분의 지지 메시지를 모아 그들과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멕시코 매체들에게도 보낼 예정입니다. 

 

* 추가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Enriquez Abad email saludjovenes@sipam.org.mx. 에게 영어로 메일을 보내어 요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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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레로(Guerrero)주의 아요치나파에 있는 사범학교(La Escuela Normal Rural Raù̀l Isidro Burgos) 텍스트로 돌아가기
  2. 1934년에서 1940년까지 집권했던 라사로 까르데나스 Lázaro Cárdenas에 의해 추진되었던 일련의 정책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에히도’라는 토지 공유지를 만들었던 농업 분야에서의 토지 개혁, 지하자원, 특히 석유의 국유화,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스페인에서 추방된 이들에게 망명의 기회를 주는 정책들이 시행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Raúl Isidro Burgos는 멕시코 모렐로스 주의 교육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학교를 혁명의 산실로 생각하고, 교사들의 공동체 공간이자 민중의 집으로써, 사람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그들의 투쟁과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 기여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Raúl Isidro Burgos는 양심적인 교사 양성 기관을 만들어 가장 취약한 계급적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의 농장일과 사회 문화적 활동들에 결합하는 지역 교사들을 양성하고자 했다. Raúl Isidro Burgos는 학문적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그의 방침에 따라 농가의 소년, 소녀들이 그들의 땅에서 작물을 키우는 기술과 함께, 필요한 거래와 직업적 기술들을 배우게 했다. 그들은 교육 자체를 사랑하고 용기를 북돋우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땅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015/03/28 23:33 2015/03/2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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