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 묘역에서 입구쪽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항상 막막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설 때는 슬픔이 온 몸을 휘감은 듯하지만 팔과 다리엔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
멀리 보이는 새까만 비석을 노려보며 걸었다.
그러나 그 비석을 등지고 내려올 때는 맥이 풀리고,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머리 속이 하얘졌다.
형이 거처를 모란공원으로 옮긴 지 꼬박 9년.
이제 오솔길 오르내리는 것은 무심해졌고,
도리어 일상사가 막막하다.
햇볕 짱짱한 모란공원. 아홉번째 추모식.
형은 편안해졌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맘 때면 늘 내 안에 박혀있는 가시를 밖으로 꺼내 옆에 있는 몇 사람에게는 기어이 생채기를 내고 만다.
10년이 되면, 나도 내 안에 박혀있는 가시를 그대로 품어서 내 살 속에 박아 녹여버리는,
그럴 정도의 철은 들겠지.
철이 들고 나면, 일상사도 무심해지고
오솔길 오르내리는 일도 일상이 되겠지. 그러겠지.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 노동운동가 김종배동지 9주기 추모식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