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3월, <대우조선노조 노보> 기고글

 

주5일근무제 법안처리가 2월에서 3월 임시국회로 넘어오면서 민주노총의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 희생없는 주5일근무제 쟁취’ 투쟁 역시 급박하게 진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 2월20일 비상중앙위원회와 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를 잇달아 열어 국회에서 주 5일근무를 법제화한다는 명분으로 노동법 개악안을 상정하면 총파업에 돌입키로 결의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여러해동안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싸워왔다. 민주노총에 속한 많은 노조들은 이미 지난 96년부터 단협투쟁에서 주 42시간(격주 토요휴무제)을 쟁취했고, 99년부터는 주 40시간(주5일)을 따낸 노조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주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한 어떠한 노동조건 후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우리는 민주노총 조합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단협개정 투쟁만이 아니라 1천3백만  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근로기준법의 법정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투쟁해왔다. 마침내 2000년 5월에 총파업을 벌임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냈으며, 결국 정부는 이에 밀려 주 5일근무제 연내 입법화를 약속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노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한국노총은 사실상 자본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아직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주요한 노동법 개악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고, 어떠한 노동조건의 후퇴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기 위한 비상한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주 5일근무와 관련해 지금까지 논의된 안은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2001년 10월), 정부안(2001년 12월), 민주당 송석찬의원안(2002년 1월)이 있다. 이 가운데 송석찬의원 안은 정부나 공익위원안 보다 일부 개선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안통과를 목표로 내놓았다기보다 정부가 하루빨리 주 5일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비난여론을 의식한 ‘생색내기용’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결국 주 5일근무 법제화를 위한 합의안은 정부안과 공익위원안을 적당히 섞은 형태로 마련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3월 임시국회에서는 합의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해 처리하려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 삶의 질 향상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 △일자리 늘리기 등을 위해 그토록 줄기차게 ‘주 5일근무’ 법제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주 5일근무제는 도입의 기본취지를 거스르고 △연월차휴가 축소 △생리휴가․주휴 무급화 △초과노동한도 확대 및 할증율 인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단계별 실시로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 희생 등을 몰고 올 위기에 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부안의 문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정부안은 연월차 휴가를 줄인다는 것이다. 월차를 연차에 통합해, 1년 근속하면 휴가를 18일 주고 이후 3년당 1일씩 추가하되 상한선을 22일로 못박고 있다. 또한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권했는데도 휴가를 쓰지 않으면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휴가를 18~22일로 줄이면 10년 근무자는 10~12일의 휴가가 줄어들게 된다. 또 휴가를 쓰지 않았다고 수당을 안 준다면 10년 근무자는 1개월치 임금이 깎이는 꼴이고, 그만큼 퇴직금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한다는 것도 매우 큰 문제다. 정부안은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1년 이내(1일 12시간, 1주 52시간 한도)로 늘린다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면 유통서비스업이나 계절산업, 주문생산업종 등을 중심으로 되레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당없는 연장근로가 합법화되는 셈이다. 계산해 보면 최대 연간 312시간, 월 26시간치의 임금이 깎이게 된다. 좋은 말로 ‘탄력적’인 근로시간제일 뿐 노동시간을 사용자들이 편한대로 고무줄처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결국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생활주기는 파괴해 노동자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정부는 초과노동시간 한도를 16시간으로 늘리고, 최초 4시간분에 대해서는 할증율을 25%로 낮추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수당에 대한 부담이 적어지므로 사용자들은 초과노동을 강제할 것이다. 역시 실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은 채 당초 ‘노동시간 단축’의 기본취지인 ‘일자리 늘리기’도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정부는 또 주휴를 무급화하고, 임금보전을 법부칙에 선언적으로 명시해 행정지도를 통해 해결하자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노동현장은 정부의 감독소홀과 사용자들의 불법․탈법 노동행위로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한할 때 행정지도의 실효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정부안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단계별 실시방안이다. 정부는 공공․금융․보험업과 1천명 이상 사업장만 2002년 7월부터 실시하고, 3백명 이상 사업장은 2004년 7월부터, 10인 이상 사업장은 2007년 1월부터, 10인 미만 사업장은 2010년 1월부터 실시하겠다고 한다. 이는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은 ‘주 5일근무제’를 실시하는 초기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비용을 중소영세기업에 떠넘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내부의 격차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기업들은 ‘주 5일근무 도입’을 조금이라도 회피하기 위해 분사․하청․용역화를 무분별하게 꾀할 것이므로 비정규직만 늘어나게 되고 만다. 결국 정부안대로 주 5일근무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언제든지 짜를 수 있고, 또 헐값으로 부릴 수 있으므로 어떤 기업주 ‘정규직’을 고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작은 사업장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에는 1천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금융․보험부문 사업장 노동자들 역시 비정규직화와 임금수준 저하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1천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86만여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6.7%에 지나지 않으며, 3백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1백만명 가량으로 전체의 7.8%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14.5%의 노동자만이 2007년 전에 노동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린다는 뜻이다. 85.5%의 노동자는 2007년 이후에야 혜택을 받게 되며, 그 중에서도 전체노동자의 45.5%에 달하는 1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5백87만여명은 2010년이 돼서야 ‘주 5일 근무’를 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앞서 살펴봤듯 김대중정권은 지금 ‘노동시간 단축’을 놓고 흥정을 하려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1998년에 정리해고제를 강행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약속했으면서도, 이제 와서 노동시간 단축을 비정규직화, 변형근로시간제, 임금삭감 따위와 과 맞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 나라의 정부가 노동자를 상대로 사기, 강도행각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 5일근무제는 어떠한 조건도 없이 곧바로 모든 노동자에게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노동법이 개악돼도 단체협약으로 근로조건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IMF 외환위기 과정에서 단체협약 상의 근로조건이 정권과 자본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법률로 보장된 노동조건은 개악한 채 개별 노사간의 단체협약으로 보완한다는 것은 뒷걸음질도 이만저만한 뒷걸음질이 아니다. 설사 단체협약으로 보완한다 치더라도 단체협약은 노사간 힘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센 노조는 가능하지만, 조직력이나 투쟁력이 약한 노조는 힘겹게 쌓아온 노동조건을 법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고스란해 내줘야 할 것이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경우는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은 대책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정부가 지난 임기동안 떠벌려온 ‘개혁’은 모든 부문에서 ‘실정’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이제 ‘주 5일근무’를 법제화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대단한 시혜를 베풀었다는 듯 생색을 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안대로 ‘주 5일근무’가 법제화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김대중대통령이 임기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정책의 하나일 뿐이며, ‘노동시장 유연화’의 완결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총력투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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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35 2005/06/05 00:35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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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2월 <책과 사람> 기고글

 

반갑다. 내 눈이 크지 않아서인지 이런 책은 처음이다. 광고전단같은 출판사 홍보책자는 몇 번 봤지만 이건 많이 다르다. 정보와 글, 사이트, 그리고 책까지 홍수여서 진득하게 한권 붙들고 늘어지기 쉽지 않은 요즘은, 무엇을 읽을까 고르는 게 ‘독서’의 다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붙들고 늘어질 만한 책을 ‘권하는 책’이 나온 셈이니 반가울밖에...

<책과 사람>에 대해 다들 칭찬만 할듯해, 눈 씻고 ‘흠’을 찾아본다.

우선, 어렵다. 글이 어렵다기보다 전체적 분위기가 그렇다. 당초부터 ‘난 노동자’라고 규정해버려서 그런지 <책과 사람> 전반에 흐르는 이지적 냄새가 날 밀어내려는 듯 하고, 책 속의 어지러운 문패들도 눈앞에 정리되지 않는다. 늘 책을 붙들고 사는 인텔리만이 아니라, 책을 어려워하는 보다 많은 대중, 그러니까 책을 가까이하기 힘든 ‘노동자’에도 ‘책’을 이어주는 기꺼운 <책과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또 하나. ‘정보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매체와의 질적 차별성을 권한다. ‘11월의 책’에서 신간소개의 양이 풍부하고, 각 분야별로 소개해내는 것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요즘은 일간지, 주간지마다 전문잡지 못지 않게 책을 비롯한 ‘문화’ 판매가 유행이다. <책과 사람>이 월간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들과 질적 차별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이는 이번호를 읽으며 ‘정보가 늦구나’라고 생각했다기 보다, 앞으로 힘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갖가지 색깔과 편집의 광고가 난데없이 끼여들어 깔끔하고, 때론 파격적인 <책과 사람> 편집과 어울리지 못한 채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책 편집방향과는 관련 없는 말 그대로 ‘광고’려니 짐작하고 그냥 묻어둔다.

어쨌든 11월호 기획 ‘서점봉별기’를 읽을 때는, 많이 살지도 않은 나조차도 “나도 한때는…” 식으로 내고향 저 먼 전라도 광주고 앞 헌책방 부근을 배회하던 기억들이 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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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31 2005/06/05 00:31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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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7월, <민주노동과 대안> 기고글

노동운동가 김종배 추모사업회


불꽃처럼, 아니 활활 타오르는 불꽃 그 자체로 살다 가신 노동운동가 김종배동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됐습니다.

김종배동지와 어떤 투쟁이든 한번이라도 같이 해본 사람이라면, 김종배동지와 어떤 이유로든 술 한잔 기울여본 사람이라면, 김종배동지와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본 사람이라면, 김종배동지의 눈빛에 한번이라도 눈을 맞춰 본 사람이라면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실천, 그의 사상과 말씨, 그리고 그의 눈빛은 그렇게도 강렬했고, 또 소박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된 것입니다.


공공연맹에서 교육사업을 맡고 있던 김종배동지는 지난 1999년 8월27일, 영동고속도로에서 손수 승용차를 운전하여 가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숨을 거뒀습니다. 김종배동지는 하루 전날 강원도 진부에 있는 집에 들러 병환중인 아버님을 뵌 뒤 다음날인 27일 강릉에서 교육을 마치고 또 잇달아 잡혀있는 공공연맹의 교육담당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우습게도 ‘노동해방’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그의 ‘육체’를 늘 피로하게 했고, 피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나태하지 않았던 그의 ‘건강’한 품성이 그를 느닷없는 사고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무엇으로 우리가 그를 추모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아직 살아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닥칠 지 모르는 안락함이나 타협의 유혹 앞에서 김종배동지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아까운 동지가 떠났기에, 그냥 그대로 잊을 수 없기에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는, 단지 김종배동지를 좀 더 알았던 사람들 몇몇이 모여 지난해 10월14일 추모사업회를 만들었습니다. 추모사업회는 김종배동지의 뜻을 품어 그가 생전에 온 몸을 던져 벌여왔던 사업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노협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입니다. 전노협 백서 완간과 노동운동사 및 전노협 관련 연구사업 등이 그것입니다. 이 밖에도 노동운동가 고 김종배동지의 뜻을 기리는 사업을 계속해서 벌여나갈 계획입니다. 물론 그 일들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추호도 고인의 뜻에 누가 되지 않도록 힘 쓸 작정입니다.

 

아직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김종배동지의 1주기를 맞게 된 점을 고인에게, 그리고 추모사업회에 관심을 가져주신 여러 동지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모식에서 동지들로부터 사업을 승낙받고 보다 힘있게 추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 김종배동지는 어느 한순간에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간직했던 정신을 버리거나 놓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바로 그 전노협 정신은 투쟁성과 계급성과 전투성일 것입니다. 오는 기일에 우리는 '김종배'라는 한 인간을 기리는 동시에, 우리가 혹여 놓쳐버리고 있는지 모를 '노동자'다운 정신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자 합니다.

 

오는 8월27일 김종배동지의 첫 기일에 동지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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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0:29 2005/06/05 00:29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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