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부터 가끔식 들러곤 하던 떠돌이의 노래_오도엽 블로그에서 살짝 가져왔다. 한동안 어디를 가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런 현수막이 곳곳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의 논두렁에조차 "기업하기 좋은 마을" 이런 식으로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건 사실 대놓고 "착취하기 좋은 도시", "착취하기 좋은 마을"이라고 내 거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 사진의 구호인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왠지 중의적인 느낌이 든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는 곧 '착취하기 좋은 나라'처럼 들리기도 하고 '일하기 편한 나라'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마 노동과 착취를 연관시킬 수밖에 없는 이 체제를 민감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고, 노동이 곧 착취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하기 편한 나라'도 그러고 보면 중의적이다. 일하기 편하다는 것은 일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하기가 쉽다는 뜻도 되지만 일이 억압적이거나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이 편하다는 말은 더 가혹하게 들린다. 노동이 곧 강제이고 억압인 사회에서 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편안한 일을 하는 동안 타인은 거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행복이 나에겐 불행인 나라. 나의 이익이 곧 타인의 불이익이요 나의 부가  타인의 착취를 댓가로 해서만 가능한 사회에서 편한 노동,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일과 놀이가 같은 단어이고 싫은 일을 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로 지탄받는 나라. 그런 나라는 어디에?

 

하나 더, 하필이면 저렇게 헐벗은 여자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을까? 이 사진을 하나의 문화 텍스트로 분석할 수도 있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2/03 00:03 2012/02/03 00:03
http://blog.jinbo.net/greenparty/trackback/213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