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하늘 사진을 찍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혹은 신호대기 중인 차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하며 심지어 운전 중에도 하늘에 걸린 구름에 마음이 동하여 오른 손으로 가방을 뒤져 카메라를 꺼내 창문을 내리고 하늘을 찍는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 날은 거의 하늘을 보지 못하는 날이다. 그래서 하늘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노트북에는 하늘을 찍은 사진이 엄청나게 많다. 아마 현재 남아있는 사진의 두 배 이상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어제 우연히 리차드를 만났다. 리차드는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이탈리아 문학과 이탈리아어를 전공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외국인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항상 엄청나게 큰 트라이포드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닌다. 어제 그는 그동안 자기가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굉장히 자랑을 했는데 사실 그가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그동안 사 모은 카메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리차드는 수입의 대부분을 렌즈 구입에 쓴다고 한다. 그가 내게 보여주는 렌즈들은 50mm 표준렌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백만원 짜리다. 35mm 렌즈 하나가 1백만원이 넘는단다.
리차드가 주로 찍는 사진은 풍경화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이크로 렌즈로 거미나 잠자리, 꽃잎에 앉아 꿀을 빩고 있는 꿀벌, 배추벌레 등 곤충과 식물을 세밀하게 촬영한 것들과 자연이나 도시 풍경들이다. 나도 물론 가끔 풍경을 찍기는 하지만 내가 찍는 대상들은 주로 하늘의 구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용하는 카메라는 200만 화소의 폰카와 아이팟의 푸딩카메라, 작은 500만 화소의 니콘 카메라가 전부다. 그래도 나는 카메라를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 나는 꽤 괜찮은 카메라가 좀 있다. 니콘 FM2와 F4, 콘탁스G1. 이 카메라들은 모두 필름 카메라다. 콘탁스G1은 Carl Zeiss 렌즈를 달고 있어서 호기심에 구입한 물건인데 니콘 렌즈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뭐 혹자는 색감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이 카메라들은 모두 책장에서 휴식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나도 괜찮은 DSLR 카메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은 지난해 가을에 200만 화소 폰카로 찍은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