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진 1 2012/01/19 20:10

아이들과 읽기 좋은 '좋은 칼럼'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면서도 마땅한 칼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칼럼'의 범위를 너무 제한했기 때문일까? 아이들과 부담없이 읽기 위해서는 현실 정치가 소재가 되면 곤란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문제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정치는 부담스러울 게 분명하다. 그러다 박노자의 칼럼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신문 칼럼은 정치적인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욱이 그 박노자가 아닌가?

박노자의 이 칼럼은 2007년 3월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이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한 글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28년전이나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문제의 원인을 짚기는 쉬우나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법. 그러나 박노자는 명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그런 방책을 말이다.

그러나 교육이 사라진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가 교육과 무관하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개혁이 사회개혁이라는 말조차 부질없어 보이는 시대에 교육을 둘러싼 문제들이 교육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도 당연한 일인가 보다. 그래서 제도를 혁파하자는 박노자의 방책이 방책으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칼럼] 아이들이 폭력화되는 이유(한겨레신문, 20070321 18:33)

폭력 관련 뉴스의 ‘선정성’ 때문인가? 최근에 하루가 멀다고 매체에서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의 잔혹한 친구 폭행 소식이 올라 세인들의 눈길을 끈다. 언론들은 뉴스의 충격성만을 부각시켜 폭력의 원인을 기껏해야 ‘폭력 만화의 영향’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고, 또 학교 폭력 관련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보면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다. 아이들이 왜 ‘고문 기술자’들을 흉내 내게 되는지에는 관심이 거의 가지 않는 모양이다. 폭력을 인간의 내재적 본능으로 봐서 그런 것인가?

인간에게 폭력 능력이 부여돼 있지만 폭력성이란 인성 발달의 당연한 결과라고 보기가 어렵다. 물론 사춘기에 들어 자기 과시 욕구가 강해지지만, 이 욕구는 교육자들이 얼마든지 비폭력적으로 분출하게 할 수 있다. 1921년에 영국에서 세워진 서머힐과 같은 대안학교에서는, 학교의 모든 사항들에 대한 결정권과 이성 교제의 권리 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폭력이 아닌 민주적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분출해 왔다. 그런데 일반적 근대 교육, 특히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과연 어떤가? 어른들을 흉내 내면서 자신들의 사회를 꾸미게 돼 있는 아이들에게는 학교는 ‘폭력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폭력이란 아직도 입시 위주 교육의 현장에서 ‘학급 통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 체벌이나 폭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자기 차별화 욕구를 억눌러 결국 그 욕구가 폭력을 통해 분출되도록 유도하듯 하는 두발 규제나 교복 착용 등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훈육주의적 제도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학교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간접적인 폭력들은 아이들의 폭력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학교에서의 전체적인 권위주의 질서와 출세주의, 철저한 위계 서열의 관계는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주먹의 서열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하려는 욕망을 갖도록 부추긴다. 예컨대 교장과 일선 교사 사이의 관계가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점, 일부의 평교사들이 교장에게 굴복함으로써 학교사회에의 ‘출세’를 꾀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학생들이 과연 눈치채지 못할 것인가? 군림·굴복의 현실을 목격하는 그들에게는 ‘힘’을 매개체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생기게 돼 있다. 이미 중학교부터 학생들이 성적순으로 위계·서열화된다면 암기력과 인내력이 부족해서든 가정이 어려워 학습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서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하위권이라는 이름의 ‘천민’이 된 학생은 과연 자신을 폭력적으로 하위에 배치시킨 체제를 두고 복수욕을 불태우지 않겠는가? 물론 친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지만, 낙오자·하위자의 복수욕을 키운 것도, 학교 현실 속의 체벌과 텔레비전의 온갖 폭력적 영상들을 통해 그 복수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바로 이 사회다. 생활과 무관한 지식들을 아무런 흥미 유발이나 개인적인 동기 부여 없이 주입시키고, 거기에다 주입 과정에서의 ‘약육강식’ 경쟁에서 하위로 밀려나는 이들을 가장 민감한 나이에 멸시의 대상물로 만든다면 이것은 폭력의 ‘부추김’ 그 자체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가르치는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을 폭력자로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망가진 인생들에 대한 책임은, 학교를 ‘우승열패’의 지옥으로 만든 학벌 카스트 제도와 이 제도의 폐단을 다 알면서도 혁파시키려 하지 않는 우리들 모두 같이 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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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9 20:10 2012/01/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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