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1997년이었나?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는지, 아니면 학과 영상실에서 비디오 모니터로 보았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전체 내용보다 어린 소녀가 비행기로 거위를 남쪽으로 보내 준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영상이 아름답고, 뭐 보고나면 훈훈한 그런 인상.

오늘 우연히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것도 밥을 먹으면서 케이블 TV를 통해. 그리고 조금 전 다시 봤다. 자연과 인간. 이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의 문명이 말처럼 자연을 탈자연화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문명이란 결국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이고, 인간의 문명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이다.

13살 소녀 에이미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아버지와 여자친구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온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외롭게 지내던 에이미는 어느날 개발업자에 의해 부러져 쓰러진 나무들 아래서 거위의 알들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온다. 알이 부화하고 17마리의 거위가 에이미를 엄마처럼 따른다. 그러나 야생거위를 집에서 키울 수는 없는 법. 거위는 가을이 지나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야하는 철새다. 에이미와 아버지는 야생거위들를 남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거위모양을 한 경비행기를 만들어서 거위들을 남쪽으로 이동시킨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에서 내가 감동한 것은 에이미와 거위들의 관계나 에이미의 비행기를 따라 함께 이동하는 거위들도 아니었다. 개발에 의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철새들의 서식지 문제도 아니었다. 그리고 철새를 이동시키기 위해 애쓰는 에이미 아버지의 동료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아니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다. 나를 눈물나게 감동시킨 것은 다름 아니라 에이미의 아버지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 정말 아버지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꼭 보아야 할 영화다.

나는 일년에 한 번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없다. 나이든 사람들만 마치 마을의 무너져가는 담벼락처럼 무너져가고 있는 그런 풍경. 아마 사촌형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신문에서, 방송으로.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벼를 베다, 모를 심다 아주 우연히 논 한가운데에서 알이 있는 새집을 발견하기도 한단다. 그러면 농부들도 예전같지 않고 알이 부화되기를 기다리며 며칠 농사일을 쉰단다. 요즘은 새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한다. 70년대 중반이었나. 그때 나이든 형들은 겨울이면 산에 덫을 놓아 토끼며 노루를 잡았다. 노란 콩에 구멍을 내고 약을 넣어 아침에 밭에 던져두고 오후에 가면 근처에 죽어 있는 꿩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오곤 했다. 지금은 어디를 둘러봐도 꿩도 없고 새도 없고 토끼도 없고 노루도 없다. 휑한 마을에 나이든 노인들 몇몇이 낫을 갈고 담배를 피고 하늘을 쳐다본다. 우리의 슬픈 고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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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22:10 2012/03/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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