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얼굴들

사진 1 2012/03/27 18:23

공적 영역에서 정당화된 가치는 언제나 사적 영역에서 개인들의 행위 규범으로 내면화되기 마련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나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말도 모두 한 사회에서 정당화된 가치규범이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뿐만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대학에서 전임교수가 아니라 비정규교수로 강의하다보면 여러가지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일들이 생긴다. 한국의 대학은 전임교원이 아니라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시간강사부터 겸임교수, 대우교수 등 비정규교수들이 대학 전체 강좌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고, 비정규직이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곳이다. 물론 당연히 대학 비정규직의 역사도 가장 길다.

학생들은 대학 내 전체 강좌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교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몇 년전 잘 알고 지내는 한 학생에게 들은 이 말이 대학 비정규교수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학생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학과에서 시간강사가 강의를 빡시게 하면 학생들은, "와 시간강사면서 강의 진짜 빡시게 하네." 그리고 강의를 대충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말한단다. "와 시간강사라고 강의 진짜 헐렁하게 하네."

나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학생은 아직 대학 비정규교수 문제가 와닫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시간강사는 전임교수가 되기 이전에 거쳐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정도 경력이 쌓이면 전임교수가 된다고 말이다.

대학에 시간강사가 하나의 제도가되면서, 실제로 하나의 직업으로 굳어지면서 다른 영역, 특히 초,중,고등학교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기간제교사를 채용하던 학교가 어느새 기간제교사를 줄이고 시간강사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교육 이전에 많은 학생들이 시간강사와 기간제교사를 한 축으로, 정규직 교사를 한 축으로 놓고 편을 가르고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별의 구조를 익숙하게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학교는 교육기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차별을 내면화하고 억압과 강제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학습한다. 만약 이것도 교육이라면 말이다.



[교단에서]“정교사도 아닌게”…잔인한 차별을 누가 만들었을까
김행수| 서울 동성고 교사(경향신문, 2012. 3. 27)

지난 2일 서울 어느 사립고의 입학식이다. 새로 채용된 신임교사들이 까만색 정장을 입고 연단에 섰다. 마이크를 잡은 교감선생님이 한명 한명 소개한다.

“국어과 ○○○ 선생님, S대를 졸업하셨습니다” “영어과 △△△ 선생님, K대를 졸업하셨습니다” “수학과 ◇◇◇ 선생님 S대를 졸업하셨습니다”…. 이렇게 10여명의 신임교사 소개가 끝나고 교감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한 마지막 말은 “우리 학교는 올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최고 중의 최고) 교사들을 뽑았습니다”였다.

순간 연단에 서 있던 신임교사들도 얼굴이 붉어졌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동석하였던 동료교사들은 굉장히 민망했다.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강북의 어느 자율형사립고는 학교 홍보 자료에 교사들의 출신 대학을 올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S대, K대, Y대 어쩌고 하는 그 명문대를 나온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그 교사들이 전부 기간제 교사이다. 정교사는 한 명도 없다. 거의 모든 학교가 비슷한 현실이다. 학벌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차별이 아닌 평등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학벌에 대한 선입견을 그렇게 심어주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은 교실에서도 벌어진다. 한 신임 교사가 “한 학생이 기간제냐고 묻는데 어떻게 답해야 하지요?”라고 물었다. 또 다른 신임 교사는 “A선생님은 S대 나왔다고 하던데 선생님은 어느 대학 나왔어요?” 하고 묻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랬다. 학생들도 교사를 기간제냐 정교사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구분하려 한다. 기간제 교사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는 그 교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 앞에 교사들은 너무나 당황스럽다.

천재까지는 아니라도 수재라는 소리를 듣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꿈꾸며 사범대나 교대를 간다. 그렇게 어렵게 입학하여 졸업한 친구들의 대부분은 선생님이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국가자격증 중에 운전면허증 다음으로 많은 것이 교사자격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되고 싶어도 교사가 되지 못한다. 더 황당한 것은 어렵게 교사가 되는 이들의 대부분은 또 기간제나 시간강사 같은 비정규직이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정교사를 뽑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교사가 된다. 1년이 지나면 학생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그 학교를 떠난다. 기간제 교사인 것을 몰랐던 학생들은 “그 선생님 어디 갔어요? 그 선생님 기간제였어요?” 하고 물어본다. 그 질문도 남아 있는 교사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이, 특히 우리 교육계가 젊은이들에게, 예비교사들에게, 학생들에게 참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립학교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 어쩌고 하면서 정교사를 뽑지 않고, 사립학교서는 월급 올려주기 싫고, 통제가 쉽다는 이유로 정교사를 뽑지 않는다. 여기에 각종 차별까지 이래저래 예비교사들은 너무나 서럽다.

거기다 학생들까지 이런 세태에 물들어 기간제 교사인지 정교사인지를 캐묻고, 작은 다툼만 생겨도 “교사도 아닌 게…”라고 눈을 흘긴다. 참 잔인한 일이다. 이런 교사라도 되겠다는 예비교사들에게 어떤 사립학교에서 수천만원, 수억원을 받아먹었다는 뉴스가 더욱 슬프게 한다.

학벌을 따지지 않는 학교, 비정규직 교사(차별) 없는 학교…. 적어도 학교만이라도 이렇게 만들 수 없을까? 학벌과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 학교의 존재 자체가 인간 평등과 차별 금지라는 소중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일 것이다. 교육당국과 사립학교들의 대오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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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8:23 2012/03/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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