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당의 정당’ 기치… 탈핵·실질적 민주주의 중시
/경향신문, 2012. 3. 24


단 200여 명이 모였다. 지난해 10월30일 서울 선유도공원에서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이들에겐 넉넉잡아 서너 달 안에 5000명을 모아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녹색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굳이 정당까지 만들어야 하느냐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12월까지는 전망이 잘 안 보였어요.” 하승수 녹색당 사무처장의 말대로 두 달이 지났지만 당원은 1000여 명에 머물러 있었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 등록을 하려면 5개 광역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 5000명의 당원을 모집해야 했다. “그래도 두 달 동안 200명에서 1000명으로 5배 늘었으니까 남은 두 달 동안 또 5배가 늘면 5000명이 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요.”

바람은 어느덧 현실이 됐다. 2월 중순쯤 기적처럼 5000명이 넘어섰다. 경기·서울 지역에서 시작된 녹색당 창당은 부산·대구·충남으로 이어졌다. 지난 4일에는 마침내 창당대회를 열어 당헌과 강령을 채택했다. 현재는 당원이 7000명에 육박했고 제주·인천·경북·경남에도 창당 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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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여성당원들이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홍대 앞 ‘카페 슬로비’에서 녹색당 이름이 새겨진 카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번번이 실패했던 녹색당 창당 시도를 떠올리면 감격스러울 만도 하다.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정치 세력화를 시도했던 초록정치연대는 당원 부족으로 정당 등록을 못했고 무소속으로 나선 선거 결과도 좋지 못해 곧 해산됐다. 회원 일부는 ‘초록당사람들’로 남아 다시 녹색당 창당에 나섰다. 이번에는 달랐다. 무엇보다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이 컸다. 하 처장은 “살아온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이때까지 환경·시민운동가들은 중립을 표방하며 정치 활동을 꺼렸다. 일정 정도 체념하며 지역에서 풀뿌리 공동체를 일구고 훗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며 끓어올랐던 답답증은 후쿠시마 사고에서 터져 나왔다. 그간 정치와 거리를 뒀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녹색당 상임강사’를 자처하며 창당에 앞장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녹색평론 20주년 기념호에서 1983년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한 뒤 30년 만에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가결한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현행 제도 내에서 최대한 민주주의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에 제동을 건 나라들에는 모두 녹색당이 있었다. 세계 2위의 핵발전 밀집국인 벨기에, 핵발전이 전기의 75%를 차지하는 프랑스가 그랬다. 결국 핵발전 문제를 ‘정치’의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미 한국의 핵발전소는 21개가 가동 중이고 7개가 건설 중이며 6개가 계획 중이다. 더구나 최근 삼척·영덕에 8개를 더 짓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지금’ 녹색당이 국회에 교두보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한숨이 나왔다.

녹색당은 “2030년까지 핵발전을 중단하자”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친환경농업이 발달한 충남 녹색당이 다섯 번째로 빨리 창당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농업’을 중시한다. 근본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지속가능한 문명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고 생태·환경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녹색당이든 가치의 핵심은 실질적 민주주의다. 지난해 7월 녹색당이 창당 첫 제안이 나오기도 전에 개설한 것이 ‘페이스북’이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당원 모두가 함께 취지문과 강령을 만들어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녹색당 강령에는 비폭력과 평화, 다양성 존중, 노동권 보장 등 폭넓은 보편적 가치가 담겨있다. 여성 당원이 절반을 넘는데다 상근 직원도 8명뿐인 전국당도 중앙집권적인 기성정당의 틀을 깨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추구한다.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녹색당의 기치는 기성 정당과 다른 철학과 실천을 추구하지만 현실 정치에서의 발언권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흔히 ‘환경보호는 배부른 소리’라며 녹색당이 ‘중산층 정당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녹색당을 괴롭히는 화두는 특별당비 모금이다. 선거운동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 처장은 “형편이 어려운 농민·청년·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1만~2만원의 후원금이 바로 녹색당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고스란히 내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본래 뜻을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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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5 18:40 2012/03/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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