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연구자라는 생소한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조금 의아했다. 독립영화라는 말은 알고 있지만 독립연구자는 처음이었다. 나는 독립영화 감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지금도 독립영화라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독립영화는 거대 자본(투자자)의 투자를 받지 못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나 아주 적은 돈으로 만드는 영화를 말한다.

독립영화나 독립영화 감독이란 말은 자조적인 표현인 셈이다.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지 못한 무능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거대 자본의 투자를 거부하고 적은 돈으로 "독립"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독립영화 감독이지만 곧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아 상업영화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 감독이 되어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독립연구자는 독립영화 감독과 사정이 좀 다르다. 독립연구자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대학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대학에서 비정규직이라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대학 바깥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대학 밖에서 개별적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에서 강의는 연구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연구와 강의는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 연구의 과정과 성과가 강의를 통해 표현되고(또는 강의 과정에 스며들고) 강의와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가 연구 결과물로 형성된다. 물론 이 두 과정이 반드시 인과적인 것은 아니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 않는 독립연구자가 연구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구는 어떤 면에서 자발적이라기보다 비자발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말하자면 대학에서 연구자들은 정규직 교수든 비정규직 교수든 연구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에 의해 마지못해 연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 교수는 특히 연구 성과가 계약과 재계약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양적으로 연구 성과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는 비정규직 교수와 사정이 좀 다르지만 연구 성과에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타율적인 연구가 오히려 연구를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면이 크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에 쫓기면서 여러 책을 읽고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 성과물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쓰기보다 읽기가 쉽고 쓰는 것보다 읽는 편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모르는 연구자는 없다. 그래서 독립연구자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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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21:21 2024/05/1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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