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구라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9/28
    변명1
    구라
  2. 2009/09/28
    중국식 화장실에 싸놓는 소리
    구라
  3. 2009/09/20
    허름한 별명 '혼이 담긴 구라'(3)
    구라
  4. 2009/09/19
    어젯 밤 술자리
    구라
  5. 2009/09/19
    실없이 만드는 불로그
    구라

변명1

 

6개월째 목소리가 쉬어 갈라진다.

말이 너무 많았나 보다.

소리를 너무 질렀나보다.

아니, 담배를 너무 오래, 많이 폈나보다.


마이크를 달고 수업하는 몰골이 우습지만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했다.

역시나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니 기계음이 애들 신경만 자극하는 것 같다.


급기야 목이 아파서 더 이상 수업은커녕 말이 하기 싫은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 꼬라지가 새삼 부끄러울 것 없는 한 명을 대동하고 병원을 찾았다.

불안이 같잖은 품위마저 부숴버린 한 시간여를 버텨 받은 진단.

성대물혹이랜다.

목소리를 혹사해서 그런단다.


불안에 떨던 꼴이 무색하다.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반 위로를 받으며 소용없을 것 같은 약 붕투를 받아

돌아왔다.


과연, 약은 소용이 없나보다.

여전히 쇳소리가 거슬린다.

담배를 줄였다.


말이 많았나보다 하는 대목에서 영 불편한 심정이 올라온다.

그렇게 많이 뱉어 낸 말들이 흙먼지가 되어 어딘가 내려 앉아 있으려나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디 산 속에라도 가서 내가 하고픈 속 얘기들 한 번 시원하게 하고 싶다는 절절한

욕망을 본다. 그 아이러니가 보인다.


난 도대체 무슨 얘기를 못다 했다고 이리 절절한 것일까?


어쩌지 못한 것들에 대한 억울함??

싸가지 없는 것들에 대한 제대로 된 분노?

변명?


그 대목이 적절하다.

변명!


변명이 하고픈 것 같다.

내 몰골에 대한

내 부조리에 대한

내 무거운 딜레마에 대한

구슬픈 변명을 하고픈 모양이다.


아이들 앞에 서면 내가 보인다.

모순 덩어리, 포장된 부조리, 허접한 양식 그런 것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조롱하기도 한다.


‘너희들도 살아봐라. 살다보면 정의도, 진실도, 도덕조차 귀찮아질 때가 오지’하면서 뇌까리지만 날 속일 수는 없지.

멀리 있는 것들에 대해 정의롭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난 늘.....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규탄하지만

정작 가까운 문제들에 대해선 관성과 버릇을, 취향을 내세우기도 하지.

그러다가 목소리가 맛이 갔다.

정작 난 할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을 줄여야 하나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국식 화장실에 싸놓는 소리

친구가 내 블로그를 보고 평해주었다.

'중국식 화장실'이라고

적당히 가려져 있는데 보일 건 다 보이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난 혼자이기를 원하지만, 또한 소통을 원한다.

이 중국식 화장실에서 낯선 사람들을 향해 배설하지만 그 배설물이 곧 '나' 인 것을 안다. 그래서 소통도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몇 년전 아이들을 인솔하여 중국 기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2년 연달아서.

그곳 화장실에서 눈에 띈 것은 노랑, 분홍의 질 나쁜 휴지였다.

한국의 70년대 풍의 한적한 시골, 허술하기 짝이 없는 회색의 화장실에 뜻밖에도 노랑, 분홍의 휴지들이 미친년 머리처럼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괴이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은, 어릴적 무당집 벽 여기저기에서 울긋불긋한 천들이 풍겨대던 괴이함과도 통하는 것 같았다. 

난, 무당 옷이나 그 원색의 천들이 전하는 강렬한 메세지앞에서 늘 공포를 느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음을, 그 앞에서 벌거벗은 채 심판받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은 힘 그런 것들이었다.

특히 나의 유년시절,  옆방 박수무당이 들려주던 징소리와 구슬픈 주술소리는 중년의 정서 어딘가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중국식 화장실에서 너무 나갔다. 요즘 이렇게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흐른다.

중년의 푸념인가 아니면 맥락의 상실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허름한 별명 '혼이 담긴 구라'

아이들이 내게 붙여 준 별명이

진로 브로커!

혼이 담긴 구라

 

 진로 브로커는 나와 진로 상담만 하고 나면 

 비현실적인 생각들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꿈을 꾸어야 한다는 등

 여행을 떠나야 겠다는 등

 

 고3담임, 

 물론 적성과 취미를 묻는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인생에 대해 설을 풀고

 학벌이니 4년제니 개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어차피 우리 학교의 많은 아이들은 그런 곳에 들어가기 힘들다)

졸업 후 생계를 유지할 자격증이라도 확보하고 

그리고 스스로 먹고 살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해보라는 등

 

단, 습관적인 꿈들을 버려라. 

지금 누리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쉽게 생각하면서 당연시 하는 ,

당연한 메이커 옷, 해마다 바꾸는 40만원 호가하는 핸드폰, 10만원 훌쩍 넘는 운동화,

노릇노릇한 삼겹살을 배불리 지금처럼 먹는 것, 꽃등심을 먹고 싶다는,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별 문제되지 않을,

 

그런데 정작, 아이들 보다 내가 불안하다.

나야 대한민국 교사이니 굶어죽을 가능성도, 지금정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잃을 가능성도 애들보다 훨씬 적은데 난 아이들을 보면서 불안해 죽겠다.

개념도 없고, 마냥 순진하고, 돈없는 신세를 가장 공포스러워 하고,

그러면서도 누구와의 연대는 커녕 우정도 나누지 않고, 자기 세대를 전혀 믿지 않으며

날이 갈수록 무식할 정도로 보수화되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불안해 미치겠다.

 

그 아이들은 내 구라를 듣고 때로 감동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믿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은 지네들 보다 순진하다고 혀를 차며

'혼이 담긴 구라'라고 맥빠지는 허름한 수식어를 붙여주며 웃는다.

 

햇살이 좋다.

어제 한 놈이 면접에서 개판을 치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저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나보구 어쩌라구?

 

"고생했다. 학교와서 또 찾아보자"

 

섀끼들, 지네들 인생인데 왜 그렇게 대책이 없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젯 밤 술자리

 그래도 좀 젊은 사람이 물었다.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았던 양반에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파업 때 어떻게 생각했냐고?

 

 아무 생각 안했다고 그 양반이 대답했다.

 

 나 한테도 같은 질문이 돌아 올까봐 그랬을까?

 배가 막 아퍼왔다.

 

 나도 나이가 좀 든,

 젊은 날 세상을 주무르겠다고 객기도 좀 부린,

 감방 정도는 추억으로 얘기하기도 하는

 후회없다고 대충 폼도 잡으며 과거를 들먹이기도 하는

 

 그러나 지금 신문 한 번 읽기에도 시간도, 열의도, 기력도 없는 듯한

 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파업할 때 무슨 생각을 했지?

 

 도대체 용산 참사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지?

 

 염병할! 요즘 이슈가 도대체 뭐야?

 

 속이 탄다.

 아니, 담배가 피고 싶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

 생각은 분명히 하는데 맥락은 어디다 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토요일 오후,

어젯 밤 술자리가 참 불편하다.

당직 서며, 까르륵 거리는 학생들 보며,

맥락도 없는 구라를 친 오전 수업 기억이 난다.

 

평등이 어쩌구 저쩌구 했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없이 만드는 불로그

세상에나!

나 같은 사람마저 블로그를 만들어대다니!

쓰레기 천지 인터넷 바다에 찌그러져 요란스런 깡통 하나 던지는 심정으로

오늘 실없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나이들수록 시끄러운 내 속!

무지막지하게 긴장하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실없을 필요가 있다.

 

실없이 웃고,

실없이 울고

민망할 정도로 실없이 사표도 썼다 지우고

거친 숨소리로 당장 뒤집겠다고 소리쳤다 슬그머니 숨어들기도 하고

 

너무 잘 살려고, 너무 반듯하려고, 너무 착하려고, 너무 열심히 살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아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