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대학의 공부벌레들

2012/02/02 21:42

요즘 방송통신대학TV에서 '하바드...벌레들'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한다. 1978년 제작된 시즌1이다. 우리나라에 첫 방송된 적은 80년? 81년? 82년? 잘 모르겠다. 대략 그 언저리다.

 

어쨌든 요즘 다시보는데 30년 훨씬 넘은 시기에 만들어진 드라마치고는 볼만하다. 보면서 느끼는 것은 교수와 학생이 대화하는 모습이 참 부럽다는 것이다.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쓸데없는 존칭, 겸손, 딱딱한 자세..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냔 말이다.

 

눈의 띄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1978년 베키라는 여성과 관련된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법원판결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당시 미국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주제를 당시의 드라마가 소재로 삼았고 그것도 진보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다. 우리로 치면 '부러진 화살'이 텔레비젼드라마를 통해, 그것도 몇년이 지나서가 아니고 당대에 전파를 타는 것이다. 무척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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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신문기사 : "...김대중대통령은 이명박전서울시장과 박근혜전한나라당대표를 만났고 이자리에에는 김영삼전대통령 시절 청와대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재동(가칭)전수석비서관이 있었는데.....이날 박전한나라당대표는 이전서울시장과...또한 이전수석비서관은 김전대통령의 뜻을...김대통령은..." 뭐 대충 이렇다. 기사 뒤에 가면 성에 직함만 붙어 나온다. 정말 헛갈려 돌아버리겠다.

 

그런데 일반인들에 대한 기사는 이렇다. "...홍길동씨는...고길동씨를....이에 고씨는 홍씨를...."

 

일단 첫째 : 일반인들은 그냥 씨라 부르고 윗넘들은 다들 직함을 붙인다. 씨바 이게 말이되냐? 일반 시민들은 하대해도되고 관료들은 깍듯이 직함을 붙인다? 좃도 이건 말이 안된다. 이런 구역질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

 

두번째 : 애시당초 윗대가리넘들을 무슨무슨 직함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바꿔야 한다. 뭐? 우리말의 특징이라고? 좃을 까라! 그따위 특징은 버려도되지 않을까? 직함으로 부르는 관습을 혁명적으로 때려부숴야 할 때이다.

 

이게 일반인들의 삶에서 실현되기는 매우 어렵다. 언론이 앞장서서 바꿔야한다. TV, 신문 등의 모든 공식 문서에서 관련된 사람을 씨로 불러야 한다. 직함이 필요한 경우는 이름 앞에 적으면 된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아니라 전대통령 김영삼씨로 불러야 한다. 이건 가능하다. 그리고 두번째부터서는 그냥 김영삼씨로 부르면 된다. TV토론등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차츰 일반인들의 삶으로 퍼질 수 있게 된다.

 

또하나,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드라마 등에서 이런 호칭을 쓰도록 권고하는 방법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나 쓸 수법이긴 하지만 드라마의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나는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사장을 홍사장님!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홍길동씨! 라고 부르는 장면. 물론 처음에는 매우 낯설것이다. 당연하다. 수백년을 지켜온 버릇인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바꿔야 한다. 1945년 이후, 우리말에 대한 전략 부재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Better later than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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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생각해보는 영어공영어론

2011/10/09 19:50

90년대 후반에 영어공영어논쟁이 있었다. 복거일씨가 문제를 제기해서 발생했는데 찬성진영의 요지는 대략, 영어 잘해야 경제활동이 편해지고, 세계와 의사소통이 편해지고, 영어로 된 지식.정보를 좀더 쉽게 습득할 수 있다...뭐 대충 이런 것이었다.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영어를 첨부터 모국어로 습득시키자는 주장인데, 영어로 된 텍스트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오리지날 텍스트가 영어인 것만 따지자면 조금 계산이 달라진다. 즉, 원 텍스트가 프랑스어이고 그걸 영어로 번역한 텍스트가 있다면 그건 프랑스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영어사용자가 이해한 것이다. 영어로 쓰여진 그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과 원래의 프랑스어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다시 말해, 영어로 쓰여진 그 수많은 텍스트는 영어사용자가 이해한 세상이지 세상에 대한 그 자체의 지식은 아니다. 물량공세에 현혹되어서는 안되는 법. 난 오히려, 영어로 된 텍스트를 잘 이해한다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사용자보다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약간의 역설이지만, 내 똥냄새를 맡아본 사람이 남의 똥 냄새도 더 잘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반대로 남의 똥 냄새를 맡아봐야 내 똥 냄새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뭐 이런 세세한 내용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난 영어공영어론에 찬성하지도 않지만 발악발악 반대하지도 않는다. 뭐 우리가 한글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당시 복거일씨가 좀더 근복적인 문제제기를 했기를 바랬다. 지금 대충 찬성론자의 말을 훑어보면 문제의식이 얼마나 얕은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그럼 내가 바랬던 그 '근본적'인 문제제기란 무엇인가? 영어공영어론이 우리말의 약점을 공론화했다면 민족주의니 뭐니에 휩쓸려버리기보다는 좀더 우리말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이다.

 

1945년 소위 해방이후 우리말에 대한 전략부재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현대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어법의 개발을 하지 못한 것이다. 아다시피 존칭은 우리말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부분이 비산업사회에서 발생한 것이고 이는 현재의 산업사회에서 너무나 큰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이 부분을 국가와 국어학계가 개입해서 좀더 간편한 존칭어법을 개발하고 보급했어야 하며,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극단적으로 반말을 표준으로 삼는 한이 있더라도 존칭때문에 우리 내부의 의사소통이 걸리적거려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생면부지의 상대방을 부르는 2인칭대명사의 부재도 문제다. 심지어 남영신씨는 영어의 '유'를 도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녀노소가 같이 쓸 수 있는 2인칭대명사의 개발을 요구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참고로 남영신씨가 쓴 국어사전 정말 강추다. 왜? 그 사전에서 '껍데기'라는 표제어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아마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철자법을 보자.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ㅔ'발음과 'ㅐ'발음을 귀나 입으로 구별하는 사람이 없다.(글쎄..몇명은 아직 가능할까?ㅋㅋ)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당연히 양자의 발음이 구별되었다.(구별되니 구별해서 썼겠지~) 그러나 지금은? 다른 예를 들어보자. '부부'의 경우, 앞의 ㅂ과 뒤의 ㅂ이 발음이 다르다. 귀는 구별못하지만 입은 구별해서 발음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달리 발음한다는 뜻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달리 발음된다는 뜻이다. 뒤의 ㅂ은 순경음ㅂ이라고도 한다. 유성음과 유성음 사이에서 무성음ㅂ이 유성음화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음이 구별되지만 우리는 굳이 구별해서 쓰지 않는다. 그런데 'ㅔ'와 'ㅐ'는? 귀도 입도 구별못하는데 굳이 구별해서 써야할까?

 

이런 등등의 문제에 대해 해방이후 우리사회는 아무런 해법을 고민하지 않은 채 지금껏 흘러온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영어공영어 논쟁이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영어공영어 진영에서 좀더 정확한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말이다. 봐라. 우리말 존칭때문에 좃나 피곤하다. 영어쓰면 지위 고하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우리말 씨바 호칭때문에 좃나 피곤하다. 영어를 쓰면 아무나 상대방을 이름이나 '유'라고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 뭐 대충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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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어미 '시'를 폐지하자.

2011/08/18 19:35

좀 과격한, 또는 황당한 주장 되겠다.

 

"아~ 이 제품은 만오천원 되십니다." 뭐 이런 말 많이 듣는다.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한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저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사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습관처럼 나오는 것일 뿐. 그래, 습관이다. 사람하고 바쁘게 이런저런 말 하다가 혹시라도 반말할까봐 두려워 그냥 전부 존칭을 써버리는 것이다. 저런 표현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 한번 가상 실험해봐라. 천천히 생각하면서 말 할때는 괜찮지만 바쁘게 수시로 말할 때 은근히 신경쓰인다. 결국 일종의 risk 관리 되겠다. 존칭과 비존칭을 정확히 구사하는데 수반하는 골치아픔과 깐딱 실수해서 존칭을 써야할 때 하대를 써 버림으로써 발생하는 치명적인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그~냥 전부 존칭으로 씨부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최악의 경우(존칭을 써야할 때 하대해버리는 경우)는 피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예 들어보자 :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을 보자. 체언+조사, 용언+어미의 형태이다. 죄다 존칭이다. 좀 너무하다는 느낌이다. 꼭 저렇게 모든 음절을 죄다 존칭으로 해야 하나 싶다.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천천히 움직이던 시절에는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사회다. 아, 산업사회라 해서 인간관계의 기본이 무시되도 괜찮다..뭐 이런 주장하는 것 아니다. 다만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을 정립하자는 것이다.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 이 문제에 대해 국어학자들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그들의 책임이 절반을 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글이 우리의 말과 글을 지배하기 시작한 게 대충 백년이라고 보았을 때 처음 절반은 일제 강점기의 수렁이었고 뒤 절반은 미군 강점기, 전쟁, 굶주림, 독재 등등으로 점철되면서 우리 말에 대한 어떤 정체성 혹은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혼란스럽고 어찌보면 사치스러웠을 것이다. 한다는 것이 고작해야 소위 이미 굳어진 말들을 어거지로 우리말로 바꾸자는 식이었다. 70년대 잠깐 그런 적이 있었다. 또 국어학자들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하면 거의 무조건 "원래 우리말은..." 뭐 이런 식이다. 원래 이러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기준을 잡고 중심을 잡는 것,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 언어도 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1945년 이후 국어학자들이 뭐 이런저런 주장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게 관철되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건 45년이후 우리는 우리말에 대한 어떤 전략적 대응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45년 이전 상황이 일제 강점기라는 너무나 혹독한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적절한 전략을 갖지 못했다. 예를 들면 보자. 45년 이후 우리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근 영어다. 즉, 영어가 우리말에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목은? 그래. 영한사전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상당한 기간동안 우리나라 영한사전은 영일사전을 그냥 뺐겼다. 참 쉬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이야 일어는 외국어도 아니었을 터이니 조일사전놓고 순서하나 빼먹지 않고 그냥 한글로 옮기면 되는 거였다. 이과정에서 일본식 한자가 해방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도 학습된다. 아.. 너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이건 나중에 다시 쓰겠다. 존칭, 호칭, 인칭대명사, 맞춤법 등등...

 

내가 말한 적절한 전략이란 해방이후 우리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걸맞는 문법, 어법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중 지금 말한 존칭의 문제도 포함된다. 존칭을 줄이자. 이게 내 주장이다. Better later than never다. 각급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언론등을 통해 홍보 및 실천을 하면 개선할 수 있다. 처음에 예로 든 문장에서 존칭과 관련한 조사 및 어미를 제거하는거다. "아버지가 말씀했다" 뭐 이렇게 되겠다. 물론 어감상 '시'를 안쓰면 이상한 경우도 있다. 다만 큰 줄기에서 '시'를 쓰지 말자는 거다. 그렇게 교육하고 공공매체를 통해서 실천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우리말에서 존칭을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말. 존칭이 너무 많다.

 

한사람은 하대하고 한사람은 존대하고. 이렇게 해서 제대로 대화가 되겠나? 호칭도 없애거나 방식을 바꿔야 하고, 적절한 2인칭 대명사도 도입해야 하고, 입과 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맞춤법도 손질해야한다. 그냥 저절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저 거대 중국의 글자도 바꾸는데 이건 아주 약과다. 무슨 글자 모양을 확 뒤집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표기와 어법을 바꾸는 것인데 나는 결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 하나만 들자.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명박대통령은..." 뭐 이런다. 이것을 "대통령 이명박씨는...."으로 바꾸자는 거다. 이게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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