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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9
    중국인과 남한인의 차이
    habia
  2. 2008/09/18
    먼지와 예술적 힘
    habia
  3. 2008/09/02
    식인자적 아구리
    habia

중국인과 남한인의 차이

올림픽에서 보여진 중국인들의 반 남한 감정을 남한인들에대한 총체적 분석에서 찾아보려 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의 지역 별 인간성을 생각하여 보았다. 섬나라인 제주도인은 나라 전체가 통일되여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북부 조국의 인민들 역시 우리들이 외세에서 독립되어 서로 화목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쪽의 각 지역을 분석하여 보면 틀리다. 지금 해외는 남쪽에서 빠져나온 탈남자들로 각 대도시가 넘쳐나고 있다. 700만 해외 거주 한인들은 세계 대 도시 어느 지역이건 한인 ‘사회’를 만들지 않은 데가 없다. 아니면 더 멀리 도망가서 숨거나 아니면 끼리 끼리 ‘지방화’ 하고있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럴까?
이것은 해외 중국인과 해외 우리 교포를 비교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하다. 나는 미 대학원의 기숙사에 머무를 때 대만 태생과 중국 본토에서 태어난 후에 대만에서 자란 중국 사람들을 비교 할 수 있었다.  대만 태생은 일본인이나 우리나라 남쪽 사람들과 비슷하다면 본토사람들은 조금 통이 더 커 보였다. 우리 조상들이 몽골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도 중국인 처럼 통이 커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문화중에 우리의 글자는 4천년 동안 중국의 글자를 사용하였고 무수한 문화를 수입하여 지금도 사용하는 것을 잊은 듯 중국인을 대한다.  불교와 유교사상은 물론 하다 못해 천주교 마저 중국을 통하여 받아 들였지 않았나!
그럼 소위 해외 한인들의 작태를 말해 보겠다. 왜 그렇게 얼굴 내놓고 거짓 말을 하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지를 모르겠다. 힘든 일은 하지 않고 숨고 피하다 남이 다 하여 놓으면 모두 자기가 했다고 나선다. 즉 꼴깝을 떠는 폼잽이들이 너무 많다. 시카고에서 몇 몇 사람과 함께 남한 민주화 운동을 어려운 조건을 딛고 일으켰고 발전시킨 후에 많은 우스운 사람들을 만나 본 사람으로써 나는 한인들의 잘 못난 됨 됨을 말 할 수가 있다.
수 많은 단체가 있지만 년중 행사 위주의 공동체를 조금도 더 발전시킬 줄 모른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좀 잘 발전한 듯 싶다. 남한 거주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통일이 된 후에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남을 존경할 수 있고 남을 염려하며 잘 난체 하지 않는 것을 교육의 핵심으로 하였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 나라의 통일에 도움이 되는 재 미 단체가 한 두 손꼬락으로 세기도 힘들지만 교회의 수는 타 민족 과 흑백을 합친 미국인의 교회수 만큼 많은 미국 대 도시의 한인 교회 숫자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나?  자기 것은 버리고 남 흉내 내기에 바쁜 남한 사람들과 이곳 중국인들이 수수한 모습으로 서로 어울려 다니며 이룩한 정치력과 교민 시설들의 웅장함은 이미 2008 올림픽의 성대함을 예측하게 끔 한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아래 그림 수채화와 나의 사진 작품 둥근 빛을 거대한 동양의 큰 문화의 발상을 이루어 영국 일본 제국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였고 자본의 노예 미 제국주의를 견제하고 있는 우리 조상의 형제 중국인들에게 드린다.

Copyright(c) Ik Kil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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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예술적 힘

나는 결혼 후 계속 집안 청소를 도 맡아 하여 오고 있다. 또한 집안 냄새를 항상 깨끗한 아무 냄새 없는 공기로 하루에 몇 번씩 갈아 주곤 한다. 아내는 힘이 없어서인지 성의가 없어어 인지 잠깐 문을 열어 놓아 달라는 부탁도 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청소와 냄새의 전문인이 된 듯 싶어 경험을 적어 본다.
시카고에 살든 30여년은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청소하고 난후에 물 걸래질 하여 부엌을 닦는 것이 전부 였고 젊었었기에  그랬는지 앨러지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이곳 쌘프란시스코에 온후에 점점 앨러지가 생겨 3년 되든 해엔 눈물 콧물을 많이 흘리게 되었었다.  그래서 이곳은 앨러지가 심한 도시인 것을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당시 해결방법은 나에겐 없어 보였다. 
최근 2년 동안 알러지 없이 지내게 되니까 내가 무엇을 해서 없앴는가를 두서 없이 적어 발표하기로  한다.
사람의 분위기는 냄새로도 알아 차릴 수 있다. 15미터 반경 거리를 즉시 오염 시키거나 순화 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옷은 자주 빨아 입거나 빨래 말리는 드라이어에 넣어 냄새를 제거 해 주면 좋다. 손을 자주 물로  씻어 준다. 샤핑후에 운전하기 전에 또는 운전도중이라도 동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곳을 지난 후에 잠간 서서 손과 얼굴을 물로 약식으로 적신후 코로 숨을 내 불어 티어주고 닦는다.
골이 아플정도로 피로하여 지면 두눈섶 사이로 부터 약 2센티미터 떨어진 눈섶위를 엄지 손가락이나 뾰죽한 나무 모퉁이로 지긋이 눌러 주어 코가 막히지 않게 하여 준다.  알러지란 코가 막히면 이것을 뚫고자하는 자동 반사적 행태인 것 같다. 목욕은 귀가 직후에 하는 것이 집안을 더 깨끗하게 한다.  샴푸는 citric acid 와  coal tar 가 섞인 것을 사용한다. 각각 살균작용과 비듬을 없애 주는 것 같다.
대부분의 인위적 향수들은 서로 만나면서 돌연변화 되어 조류의 털을 더러운 냄새로 오염하는 것 같다.  냄새가 시각적 자연변화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예술적인(색갈 음미적) 눈이 자연(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의문을 갖고 탐구하고 있다.  나의 그림이 약이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상상 하여 본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아내의 머리 의 독특한 체취는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느낄 수 있다. 자연 속에서는 Eucalyptus 나무의 향내가 나의 선호 1번이다.
음식을 기름에 볶기 전 그러니까 기름을 넣기 직전에 문을 약간 열어 놓고 시작하고 불을 작게 할때 쯤에 닫는다. 이때 바람이 잘 통하도록 마주 보는 창문을 동시에 열어 놓아야  통풍적 효과가 있다. 그러면 기름이 바닥에 덜 떨어진다.
마루 먼지를 없애는데는 얇은 샤모아 가죽( 가로세로1미터) 2개를 약간 적셔서 짜낸 후 2미터 작대기 끝에 매달고  던져서 끌면서 쓸어 내면 머리털 등의 쓰레기와 함께 거두어 버릴 수 있다. 이때 작대기 끝을 손으로 잡아 줘야  벽을 다치지 않는다. 청소 후엔 반드시 빨아 말린다. 거의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닦아 낸다.  그러면 나의 아침 손님인 손녀 손자의 맞을 준비가 끝난다. 빨래 비누 대신 나는 자동차 닦는데 쓰는 무공해 기름 제거액을 2-3 그램정도 약간을 한 바켙 물에 넣어서 위 아래로 헹구어 빨아 그늘에서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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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자적 아구리

나는 어렸을 때에 철민이의 모험이나, 까만 식인종이 산다는 무서운 정글을 그린 만화를 즐겨 읽었다. 그러나 아무도 제국주의 자들이 식인자들인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 자식이나 다름 없는 나라의 젊은이 들을 전쟁에 내보내어 남의 나라 인민들을 죽이고 이득을 챙기는 데에 주저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라고 할진대 남을 죽여 자기가 먹고 사는 식인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체는 종교 단체이며 연약한 사람들을 포섭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여 ‘간첩’사건을 꾸며 신문 아구리들을 이용 나팔 불게 하는 것을 보면서 70년 전 부터 시작한 가난한 식모들과 고아등을 이용하여 자기 미국의 에이전트로 사용하고  남한 정권이 간첩으로 몰고가면 안 도와주든 선교사들과 미 군정 놈들 생각이 난다. 이들은 지금 제일 만만한 탈북 난민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정착금을 상당부분 미리 가로채이고 팔려온 교포들로써  기독교의 반북 선전자나 군의 안보  선전 정보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큰 감옥과 같은 남한 내에 갖힌 연고 없는 가련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해외에 다닐 수 있었든 사업가를 왜 계속 안보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이것은 한번 정보원으로 사용되면 풀려 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마 보수를 거절하였을 것 같다.
과거에 시카고에 파견되는 정보요원 출신 기자들은 영주권이 해결되면 과거를 씻고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그러나 탈북인과 기독교와 정보 하수인들의 앞날은 막연하다.
아래 사진은 천진 난만해 보이는 김수임씨의 70년전 사진을 신문에서 스크랩한 것을 스캔한 것이다. 아래 나의 셔쓰위에 그려진 수채화 들을 여자 에이전트에서  ‘간첩’들로 둔갑된 여인 들에게 드린다. 이승만이가 김수임씨를 잡아먹었고 언론과 이명박의 아구리들은 국가의 '안보'를 빌미로 권력의 향상을 위해 원 정화씨의 목을 조이고 있다. ‘반갑습니다’를 거두어 가세요….그리고 늑대 처럼 말을 기정화하는 앵무새들 위로 나르세요…

세브란스 병원 교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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