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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매체 이론

아우라 개념을 중심으로 한 벤야민의 매체 이론

―문화정치와 매체 유토피아 사이에서―


윤   미  애



1. 들어가는 말

매체이론가로서의 벤야민의 면모는 30년대 이후의 논문들인 「생산자로서의 작가」, 「브레히트」, 「사진의 작은 역사」 및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이하 ‘예술작품’ 논문으로 축약)에 드러난다. 당대의 문화 정치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 의도에서 쓰여진 ‘예술작품’ 논문에서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기술매체를 통해 예술의 총체적 성격 뿐 아니라 인간의 지각양식 자체가 획기적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벤야민은 기술매체에 의해 야기된 모든 문화적 변화를 신비주의 전통에 기원을 둔 아우라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벗겨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현대의 지각방식이 지닌 특징이다”(I, 479f).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곳의 일회적 현상”(I, 480)으로 나타나는 아우라와는 달리 현대의 지각 방식은 가까움, 동일성, 반복성, 촉각성의 원리를 특징으로 한다.

아우라에 비해 현대의 지각방식은 경험의 빈곤으로 보일지 모르나 벤야민은 예술 및 문화 개념의 일대 변혁을 이러한 변화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그의 매체이론은 1920년대 진보적 아방가르드 운동과 같은 선상에 있다. 벤야민은 기술적 생산조건의 변화로부터 해방적 예술실천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예술의 정치화라는 테제로 요약한다. 그러나 이 테제는 서구 자본주의 영화 산업의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기술매체 자체의 고유한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 집중한다. 따라서 벤야민은 기존 문화 매카니즘의 인식과 거기에 대항하는 실천에 더 역점을 두는 브레히트와 비교된다. 예술 혁명은 사회 혁명을 전제로 한다는 입장에서 영화 이론을 전개한 브레히트와는 달리 벤야민은 현재의 사용논리에 의해 왜곡된 기술의 비억압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 그의 논의는 자연, 인간, 기술의 관계에 대한 보편사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특기할 것은 ‘예술작품’ 논문은 기술 매체에 걸었던 모든 아방가르드적 희망이 파시즘의 문화정책에 의해 좌초된 뒤인 3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담긴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테제들은 시대의 절박한 위기상황에 비추어 비현실적, 유포피아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술 낙관주의, 기술 물신주의라는 비난은 벤야민의 서술의도를 간과한다. 벤야민의 매체이론에는 파시즘의 대중조작에서 보듯이 기술의 왜곡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벤야민은 시계 톱니바퀴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다가 갑자기 시계를 돌려 지금의 시각을 보여주는 시계공처럼 기술의 잠재적 기능들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시간이 촉박함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70년대 독일의 벤야민 연구는 ‘예술작품’ 논문에서 제시된 벤야민의 테제들을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대안문화의 프로그램으로 환영하거나 혹은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부정성을 과소평가한 기술유토피아로 비판했다. 국내의 수용은 여전히 이러한 연구 시각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예술작품’ 논문을 해방적 예술실천을 위한 문화정치 프로그램으로만 읽는 독서방식은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성찰이 그의 다른 사상적 모티브와 관계에 대한 문제를 간과한다. 매체이론에서 벤야민은 전통적 경험양식으로서의 아우라의 붕괴를 역설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우라 비판적 태도는 벤야민의 독특한 경험이론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예술작품’ 논문을 읽고난 브레히트의 다음과 같은 소감은 아우라 소멸 테제를 벤야민의 사상체계 전반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암시한다: “모든 것이 신비주의일 따름이다. 유물론이 그런 식으로 소화될 수 있다니 놀랍다”. 여기서 브레히트는 예술의 역사적 변화를 아우라처럼 모호한 개념을 빌어 설명하는 주된 동기는 잃어버린 것을 향한 상실감이 아니겠는냐는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이는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벤야민의 매체이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를 벤야민 사상의 본질적인 다른 계기들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 아우라 개념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에 그의 언어철학적, 역사이론적 모티브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우라 개념의 애매모호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애매모호성을 억지로 해소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벤야민의 사상적 특징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우라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벤야민의 매체이론은 탈아우라 과정을 지지하는 문화정치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변형된 새로운 아우라를 지향하는 매체 유토피아 구상인가? 다음에서는 우선 아우라 개념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을 중심으로 현대의 아우라 소멸을 벤야민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아우라와 탈 아우라


2. 1. 유일무이성


벤야민의 아우라 정의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서 독특한 시, 공간적 거리감을 느낄때 우리는 그 대상이 아우라를 지녔다고 말한다. 무언가 근접할 수 없게 만드는 신비적 분위기, 설명하기 어려운 지각현상, 유일무이한 경험, 자아와 타자의 경계가 해체되는 경험,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의 갑작스러움 등 아우라는 여러 각도로 규정될 수 있다. 예술작품 논문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종교적 의식 가치(Kultwert)와 관련시키면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곳의 일회적 현상” 이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종교 의식의 숭배 대상에서 경험하는 이러한 현상은 예술작품에도 적용된다. 근대 이전의 종교적 예술과 근대 이후의 자율적 예술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벤야민은 예술의 종교적 기원을 강조한다. 종교의식에 기원을 둔 예술작품은 감히 근접할 수 없게 하는 어떤 분위기를 지니는데 이를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부른다. 예술작품이 종교적 의식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일무이한 작품이어야 한다. 아우라는 “지금, 여기”로 표현되는 원본의 현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르네상스 이후 예술이 점차로 종교적 기원에서 벗어나 세속화되면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예술가 혹은 에술가적 업적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뀐다. 근대의 세속적 예술은 중세의 종교적 권위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과거의 종교적 숭배는 미의 숭배로 대치된다.

예술의 이러한 아우라적 존재방식에 결정적으로 의문이 제기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 사진과 같은 새로운 복제기술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완벽한 복제품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시, 공간에서 원본이 지니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진품성이 결여된다. 원본의 유일무이성이 아우라를 경험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인 한에서 복제품과 아우라는 결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복제가능성이라는 예술생산의 조건은 수용 조건의 변화와 맞물린다. 즉 복제기술을 통해 대량생산된 복제품은 “사물을 공간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I, 477) 대중의 욕구에 부합한다. 유일무이한 존재이면서 시, 공간적 지속성을 지니는 원본에 대해서는 성찰과 침잠의 여유가 주어지는 반면, 관찰자에게 반복적, 일시적으로 다가오는 복제품(라디오 음악, 모나리자 사진판 등)에 대해서 관조적 거리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상의 설명에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원본성, 진품성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가능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벤야민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 그동안 제기된 반박은 대중적 복제품에서도 아우라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벤야민이 기술매체에 의해 복제되는 영상의 아우라를 부인한 것은 사진이나 영화의 영상미학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아우라를 대상의 물질적 조건에 좌우되는 객관적 현상으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1930년 하시시 체험에 대한 기록에서 벤야민은 ‘에술작품’ 논문에서와는 달리 아우라를 주관적 조건에 기인하는 미적 경험의 일종으로 아주 사소한 대상에서도 경험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예술작품 논문은 주로 에술작품의 수용을 중심으로 아우라가 소멸하게 된 객관적 조건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에술작품 논문의 역사적 배경을 참조할 때 비로소 밝혀진다. 


2. 2. 시선의 미메시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에서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시각적 경험으로 정의한다.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되돌려주는 능력을 그 현상에 부여하는 것이다”(I, 646). 이 정의에 따르면 아우라의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의 경험으로 규정되는 아우라는 예술작품 뿐 아니라 자연, 인간, 심지어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 대상이 우리의 시선에 응답하리라는 “기대가 충족되는 곳에서 우리의 시선에는 아우라의 경험이 풍요롭게 주어진다”. 시선의 교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30년대 초에 구상된 벤야민의 미메시스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미메시스는 “비감각적 유사성을 인식하거나 생산하는”(II, 211) 능력을 말한다. 미메시스 논문에 관련된 메모집에서 벤야민은 “먼 곳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별”이 “아우라의 원초현상”이라면, 시선이야말로 인류가 미메시스 능력을 배운 최초의 지각작용이라고 적고 있다. 시선의 미메시스는 순간적으로 발휘된다. 이렇게 보면 “순간”과 “시선”의 이중적 뜻을 지닌 독일어 단어 “Augenblick”는 미메시스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다. 아우라 시선은 별자리를 보는 것처럼 “꿈꾸듯 먼 곳으로 빠져드는 듯한” 시선 (가까우면서도 멀어짐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나와 너의 경계가 해체되는 상호주관성, 즉 미메시스적 유사성이 성립하는 시선이다.

현대에 이르러 인류의 미메시스 능력은 상당히 퇴화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옛날 사람들의 지각세계를 채웠던 유사성 혹은 마술적 교감은 현대인의 지각작용에서 극히 일부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벤야민의 미메시스 이론에 따르면 퇴화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미메시스 능력은 실은 퇴화된 것이 아니라 변형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언어라는 매체로 외화된다. 언어는 “비감각적 유사성이 결집된 완벽한 서고”(II, 213)가 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언어의 도구적 기능이 표현적 기능보다 우세해짐에 따라 언어의 미메시스적 능력은 회의에 부딪힌다. 벤야민을 비롯한 언어비판적 학자들이 제스처와 같은 비언어적 미메시스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어 위기에 대한 의식에서 비롯된다. 벤야민이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 것도 미메시스의 매체 변화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자본주의적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경험 및 지각양식의 획기적 변화를 겪은 현대인에게 “먼 곳을 바라보는 능력”은 점차로 사라진다. 벤야민은 “먼 곳의 매력이 꺼져버린 눈”(V, 396)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현대인의 눈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충격적 영상에 대한 방어적 기능에 익숙해 있다. 사회적 필요에 따라 조직화된 이러한 눈들은 상대방의 시선에 응답하는 대신 상대방의 상을 단지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러한 시선은 더이상  미메시스적 유사성의 매체가 되지 못하고 자기동일성을 고수한다.


2. 3. 아우라와 기억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은 그의 미메시스 이론 뿐 아니라 기억이론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다음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아우라에 대한 제반 정의들은 기억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근거한다. “한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 현상에 눈을 뜨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과 일치한다. 또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일회적인데, 다시 말해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두려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따라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기억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라는 아우라의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I, 647). 여기서 시각적 경험으로서의 아우라는 시각적으로 현존하는 대상이 불러 일으키는 기억의 이미지와 관계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곳”이라는 정의에서 먼 곳이라는 공간적 개념은 시간적 차원을 나타내는 비유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시간과 공간이 교묘하게 얽혀있는 거미줄”(II, 378)이라고 정의한다. 아우라 개념의 본질적 규정은 복합적 시간성, 기억에 있다. 아우라 경험에서 기억은 기억하는 주체의 의식적 노력과 무관하게 우연한 계기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즉 무의지적 기억과 동일하다.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프루스트의 개념을 통해 아우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는 무의지적 기억에 자리잡고 있는 지각대상의 주위에 모여드는 표상들을 그 대상의 아우라라고 부른다”(I, 644) 우리에 의해 눈을 뜨게된 현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시선은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로 충만해 있는 시선이다.

벤야민에 의하면 프루스트는 아우라 경험에 정통한 작가로서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아우라 경험의 거의 완벽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프루스트는 현대 기술 문명의 시대에서도 아우라 경험이 가능함을 보여준 증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 내던져진 그물을 걷어올리려는 이루 말할 수없는 엄청난 노력”(II, 324)을 기울이는 프루스트에게 감탄하면서도 이러한 노력이 전적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국한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양식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의 무의도성, 우연성, 감각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기존의 문자 매체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적 체험과 분리된 개인적 기억은 진정한 기억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벤야민은 집단적 기억과 개인적 기억의 분리는 근대 이후 경험구조의 변화로 보면서 양자의 분리를 극복하는 과제를 역사인식에 설정한다. 따라서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를 위한 메모집에서 벤야민은 무의지적 기억의 모델을 역사인식에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인식의 순간에 휙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이미지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기억의 이미지에 해당한다. 이 이미지는 위험의 순간에 처한 사람들에게 떠오른 그들 자신의 고유한 과거의 이미지들과 유사하다. 알다시피 이 이미지들은 무의지적으로 나타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 또한 무의지적 회상에서 출현한 이미지이다”(I, 1243). 역사의식에 무의지적 회상의 범주를 적용하는 것은 모든 역사가 전적으로 의식적으로 수행될 수도, 의식적으로 체험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역사는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에게 귀속되지 않는 무의식적 차원을 포함한다. 어떠한 역사의 논리에 의해서도 수렴되지 않는 무의식적 차원이 인식될 수 있는 유일한 지각양식은 무의지적 회상이다. 벤야민이 󰡔빠싸쥐 작품 Passagenwerk󰡕에서 사용한 “집단적 무의식”(V, 47)이라는 개념도 그와 연관된다.

기억에 있어 의도성과 무의도성의 구분은 정보가 지배적인 의사소통형식이 된 현대사회에 대두된 문제이다. 역설적으로 문화적 기억의 위기는 뛰어난 저장능력을 발휘하고 동시에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유통시키는 새로운 매체의 압력을 받으면서 더욱 첨예해졌다고 볼 수 있다. 통신제도에 의해 단순한 정보의 형태로 전달되는 사건은 센세이션에 대한 대중의 욕구에 부합할 뿐 경험의 내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경험이란 “기억 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기록된 개개의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하지 않은 자료들로 이루어진 종합적 기억의 산물”(I, 608)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정보의 형식으로 전달되고 상품 또는 대중적 소비품이 될수록 그것은 무의지적 기억의 내용이 될 수 없고 단지 의식적 체험의 자료가 될 뿐이다. 다시 말해 안전하게 저장되고 확실하게 해독가능한 자료가 된다.

벤야민은 엄청난 이미지 홍수를 쉴새없이 내보내는 TV나 어마어마한 저장능력과 통신기술을 지닌 컴퓨터를 알지 못했지만 기술매체로 인해 야기된 문화적 기억의 문제를 이미 사진에서 간파했다. 벤야민은 사진을 의도적 기억의 매체로 사진을 평가하면서 ”아우라 붕괴 현상에 결정적 몫” (I, 646)을 사진에서 찾는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는 문자 매체를 대체할 새로운 영상매체에 대한 기대감 뿐 아니라 사라진 것, 즉 아우라를 향한 상실감이 엿보인다. 이러한 이율배반성에서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낡은 것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3. 매체 유토피아와 아우라


앞장에서 드러났듯이 아우라에 대한 규정들이 벤야민 사상의 중요한 계기들을 함축한다는 사실은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 태도의 이율배반성을 암시한다. 아우라 경험을 극복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본 것인지 아니면 다시 회복해야 할 인류학적 경험포텐셜로 본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기능에 대한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성찰에서 다시 한번 제기된다. ‘예술작품’ 논문에서 기술복제 매체와 대중의 기능적 유사성에서 출발한 벤야민은 영화를 대중운동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파악했다. 영화는 개개인의 고독한 관조가 아니라 수용태도의 집단적 조직화가 가능한 곳이다. “영화관에서 관객의 비판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는 일치한다. 영화관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 개개인의 반응이 (...) 그 어느 곳에서보다 처음부터 집단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I, 497). 벤야민은 대중이 이처럼 스스로를 조직하고 통제할 가능성을 지니게 된 것은 예술사에서 처음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상적인 영화관객에게 비판적 태도만을 요구한 것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벤야민은 수용자의 비판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를 일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매체로 영화를 파악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비합리성과 합리성, 도취과 명철함, 상상력과 이성이라는 추상적 대립 모델을 적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메라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 공간과 관걕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벤야민이 사용한 “시각적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통해 주어진다.

벤야민은 일반적으로 육안으로는 포착되지 않고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의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술매체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 공간에 프로이트의 용어인 무의식 범주를 적용한다. 전통적인 화가의 시각과는 다른 카메라의 반(反)물리적 시각에 의해 열린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는 일상적인 것과 비밀스러운 것의 이율배반성을 지닌다. 지금까지 은폐되어있고 의식되지 못했던 영역이 기술의 영역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진은 “마법의 청산”(II, 213)이라는 미메시스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메시스의 궁극적 목표는 세속적 기능에 의한 마법적 기능의 소멸이 아니라 이 양자의 구분 자체의 소멸에 있다. 따라서 고도의 학문적, 정보적 가치를 지닌 사진의 영상이 동시에 신비 체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벤야민의 언급은 이상적 미메시스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미지의 환상적 성격을 인위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이미지의 매체성을 은폐하는 기법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는 영화라는 기술매체에 내재한 형식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매체이론이란 “기술적 도구로부터 그 자연적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는 지침”(II, 1506)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성찰은 매체의 현실적 발전상황보다는 기술에 내재한 자연적 형식에 대한 질문에 집중하는 경향을 지닌다. 사회비판적이기 보다는 유토피아적 경향을 띤 벤야민의 매체이론에서 영화는 ”새로운 집단의 제 2의 기술“로 파악된다. 또한 미메시스의 관점에서 영화는 더이상 자연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자연과의 유희적 관계에 있는 기술, 즉 “제 2의 기술”에 속한다. 여기서 영화 혹은 사진의 이미지 공간은 현실의 가상 공간이 아니라 유희 공간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현실과 닮으면서 동시에(확대, 축소, 저속,고속 촬영 등을 통해) 현실을 변형시키는 유희 공간을 창출한다. 새로운 기술매체는 종교적 가상이나 미학적 가상이 물러난 자리에 엄청난 유희공간을 확보해준다.

영화에서 창출된 유희공간에 부합하는 수용태도는 관조적 침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브레히트가 서사극의 관객에게 요구하는 비판적 태도와도 다르다. 그것은 산만함 속에서의 충격체험이다. 충격이란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로 일어난 현대인의 대표적 경험방식으로서 과도한 자극으로 인해 심리적 기관의 평형이 깨어질때 일어난다. 충격체험의 특징인 불연속성, 순간성은 바로 영화의 몽타주 기법에 상응한다. 충격체험은 아무런 의미 연관을 세울 수 없는 불연속적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경험 빈곤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충격은 심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주요 모멘트로 작용한다. 벤야민의 역사 인식 방법론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벤야민은 브레히트 연극의 제스처에 대한 분석에서 충격과 순간성을 특징으로 하는 변증법을 도출하고 이를 역사 경험의 방법론으로 확대했다. 연속성 보다는 불연속성, 운동보다는 정지에 더 비중을 두는 벤야민의 변증법적 사고에서 충격은 인식에 도달하는 중요한 계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보면 벤야민이 영화를 충격체험과 관련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가 제공하는 영상의 충격효과를 강조한다. 충격적으로 밀려오는 영상은 마치 관찰자의 눈 표면에 직접 부딪히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충격체험에 익숙해진 눈은 촉각과도 같은 기능을 지니게 된다. 사진의 영상은 전통적 미술작품처럼 총체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단편화된 상으로 그 상은 마치 탄알처럼 관객을 습격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와 같은 영상적 충격에 대해 관객은 더이상 관조적 태도로 임할 수 없다. 영화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심화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충격적 이미지를 재빠르게 정복하는 자발성이다. 관객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갑작스러운 현상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올리니스트가 번개처럼 빠른 솜씨로 현을 골라 잡는 순간처럼 사진사는 대상과, 관찰자는 사진의 영상을 마주 대하고 있다.

영화의 혁명적 포텐셜은 단지 충격효과의 형식적 복구가 아니라 충격효과를 일으키는 요소들의 미메시스적 능력에 달려있다. 사진과 영화의 이미지 공간을 구성하는 이 요소들은 현실의 단편적 이미지들이다. 이는 문자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 자취, 아직 코드화되지 않은 삶의 흔적들에 해당된다. “건축이나 일시적 유행에 이르기까지 삶의 수많은 형태들”(V, 47)에서 지난 시대의 자취를 찾는 거리 산보자 혹은 문화사가처럼 영화의 관객에게도 시대의 무의지적 자취를 찾아나서는 역할이 주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코드화될 수 없었기 때문에 고착될 수 없었던 것, 즉 어떤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사소한 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집중적 현실접촉의 이 순간은 무의지적 기억이 활성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에서 무의지적 기억을 촉발하는 계기가 사소하고 우연한 대상이듯이 영화의 한 장면, 사진 한 장에서 영화의 관객은 지나간 집단적 삶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미메시스와 무의지적 기억, 다시 말해 변형된 아우라 경험이 영화의 잠재적 포텐셜로 인정된다.  

변형된 아우라가 귀환하는 곳에서 영화는 문화정치적 맥락을 떠나 매체유토피아적 기능을 담당한다. 물론 벤야민은 영화수용에서 비판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를 결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영화의 정치적 기능과 유토피아적 기능도 서로 매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매개가 성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영화에 대해 변형된 아우라 경험을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결국 벤야민의 이율배반적 사상에 관한 질문으로 귀착된다.



4. 나오는 말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벤야민의 매체이론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 이론이 더 설득력을 지닐지 모른다. 벤야민이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적 매체 발전은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기대를 반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매체에 걸었던 기대는 다분히 유토피아적 성격을 지녔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의 매체이론은 오늘날 상당한 수준으로 세분화, 전문화된 매체이론적 논의에 비추어 투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벤야민의 매체이론적 성찰의 현실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벤야민의 심오한 매체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벤야민은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과 자연의 화해에 있다는 근본적 입장에서 매체의 혁명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여기에 따르면 매체는 단순히 오락의 도구나 정치적 계몽의 수단이 아니라 자연과의 미메시스적 유사성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인류학적 경험 포텐셜의 관점에서 매체에 접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벤야민의 매체이론은 우리에게 여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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