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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에 관한 세 개의 글

115주년 맞이 세계노동절 대회가 '그냥' 지나갔다. 광화문에 도착하여 처음 쳐다본 무대 위 걸개그림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였다. 하얀 작업모 아래로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운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 '차라리 죽여라'라는 빨간 카드를 무섭게 치켜올린 덤프 노동자들과 그 무대사이에 늘어선 취재진들이 벽처럼 느껴졌다. 

이리저리 배회하다 돌아와 다음날 다소 의무적으로 글을 올렸다. 그리고 남바다 동지의 '사상 최악의 노동절 대회'라는 글이 올라왔다. 01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여의도에서의 웃지못할 광경이 떠오른다. 집회가 진행되는 중간에 한 쪽에서 노동자들과 전경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에 아랑곳 없이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이라는 휘장이 드리워진 무대 위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와 연사들이 능숙하게 혀를 놀리고 있었다. 집회대오는 대체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지몰라 어수선한 그  상황에서 열심히 싸우던 '서의노 동지' 한 명이 쓰러졌다. 

당연한 것을 이 글을 보고야 또 깨달았다. 05년 노동절 대회 무대아래서 느낀 그 울분과 비통함을 단지 패배의식과 주관적 인상으로 남겨두지 않고 집회에 '출근'하여 잠시 모여앉았다 흩어지는 그 모든 노동자들의 각성의 재료, 폭로의 소재로 삼아 역겨운 발언 한마디라도 똑똑히 듣고 기억하여 철저하게 그 계급성을 까발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지향해야할 다른 질의 운동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던져줄 수 있어야 함을. 

  

 

(※아래 굵은 글씨 강조는 모두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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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노동절 대회

 

남바다

 

 

제115주년 세계노동절대회와 그 전야제. 일상적인 과제이지만 그래도 이날 만큼은 노동자로서, 노동계급으로서, 살아움직이며 운동하는 주체로서, 2백여년의 자본주의 역사와, 수천년의 계급투쟁의 역사와, 그리고 60억 인류와의 연관 속에서 나와 우리를 생각하고,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이어야 할 그 시간과 공간, 그 주체들.

문화제로 치러진 전야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지하철역에서 집회장으로 오던 많은 사람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몸싸움을 하고 안하고 혹은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문화적인 의미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결코 부분적 사안이 아니지만, 그런 행태만으로 비난을 퍼붓고 싶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이 도발을 해와도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자"는 관료들에게 이런 비판의 의욕조차 상실했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실직 노숙자, 때로는 비정규직노동자까지. 노동자대회를 비롯한 수많은 행사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사회자나 연사들이 늘 한마디씩 “언급해주는” 이들. 도대체 어떤 기준이 이들을 같은 범주에 담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얼핏 계산해봐도 소수자 운운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들은 모두 따로 무대에 올라 특별한 환영과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놓은 의식, 그거야말로 차별의식이 아닌가. 이들은 그 자리에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 어떤 이유에서인가 보여주고 언급하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면에서만 동일하다. 내용적으로는 계급문제가 아닌 “합리적 자본주의”에서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불합리 문제로 인식한다면 더더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이들 문제에 대해 “차별철폐”라는 구호를 강요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차별은 이미 일어난 분리와 배제와 박탈과 폭압에 대한 사후반응에 가깝다. 중증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란 그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격리되고 박탈당해온 모든 기회들과 권리들에 의해 전적으로 사후적 반응에 불과한 것이다. 계급모순에 의한 충돌의 지점을 차별의 문제로 바꾼 그 의식이 역설적으로 개인적 의미에선 “차별의식”이며 사회적 의미에선 “개량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붉은 깃발로 채워진 문화공연. 이미 내용에 대한 "사전검열"로 인한 문선대의 거부가 있었고 투쟁의 현장에서 호흡하던 노동가수 한 명 없는 요란한 행사였다.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두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박준도, 인터네셔널가 하면 떠오르는 최도은도, 이주노동자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연영석도, 가장 많이 불러야 할 비정규직철폐연대가의 류금신도, 노래공장도, 지민주도, 몸짓선언도 없었다.
그 빈 공간들은 붉은 깃발로 요란하게 메워졌다. 현실의 투쟁문화를 상징적 승화로 대체했다고나 할까. 아마도 한장의 스틸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에게는 이런 표현주의적 기법이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요컨데 대중과의 호흡이 없는 보여주기 문화란 것이다.

한판의 잘 짜여진 행사. 지난 4월 1일 민주노총의 경고총파업 때도 그렇고, 한판의 잘 짜여진 문화행사를 감상했다. 집회란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고 호흡하는 역동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노동자의 역동성이 현장에서 모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이 경우 대중과의 호흡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기획하고 표현하는 몇 사람의 주체들이 얼마나 완성도 있게 표현하느냐의 문제가 일차적이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대중이 감동을 성공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이렇게 대중의 의지를 자극하고 높이고, 최고조에 올렸다가 그 자리에서 신명나게 감정을 해소하는 한판의 완결적 행사가 된다.

해프닝이 아닌 서글픈 현실. 투박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어서, 그 분노를 공유하고 그 투쟁의 과제를 전체적으로 받아안는 집회공간은, 이미 사전검열과 의도된 정치발언으로 인해 설 곳이 없어졌다.
심지어 사회를 본 민주노총 이석행 사무총장은 전비연 의장의 이름까지 몰라서 버벅거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8백만 비정규직노동자의 선봉에서 투쟁하는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회의 의장”이라며 거창하게 소개를 하고서는 정작 이름을 몰라서 옆에 보조진행자가 사태를 수습했던 것이다. 차라리 그런 소개나 말지, 8백만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을 대표한다면서 조직의 대표자를 모른다는 건 일개 조합원으로서도 창피할 일이며, 민주노총 지도부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 투쟁에 일상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 여실히 입증되는 것이기에 차마 웃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전비연 의장은 이날 특수고용의 “특”자도 말하지 못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 파견법을 유지하겠다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름뿐 아니라 이런 외침도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노총.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정치발언은 뜻밖에 이틀동안 열린 대회의 내용적 하일라이트였다.
한국노총 위원장은 아주 당당하게 정치발언을 했다. "민주노총과 투쟁도 같이 하고 합의도 같이 하겠다". 사회적합의주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와 관련하여 궁지에 몰린 민주노총 이수호 지도부를 정당화하기 위한 동지적 노력이다. "이제는 총칼들고 하는 투쟁만이 아니라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겠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총칼이 거기서 왜 나오는지, 아무 말도 안한 것과 정확히 동일한 "대화와 투쟁 병행“ 운운에다가 "이제는" 이라는 시기 기준과 의지표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총칼" 운운은 무장혁명운동에 대한 언급일텐데, 이런 발언 속에는 자신도 이런 지향을 갖고 있다는 거만한 과시가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전야제에 휘날린 붉은 깃발이 "우리도 혁명을 지향한다"는 과시이며, 그 추상성 속에 현실의 투쟁과제며 관료주의 문제며 기회주의 노선의 문제며 모든 것을 봉합하고 정당화하겠다는 기만이다. 그 사이의 간극은 “통큰 단결”이라는 구호와 지도부의 "절대권위"가 메워줘야 할 것이다. 노조탄압하는 한국노총 간부놈, 혹은 변절을 여러번 한 386세대 정치꾼이 "나도 굉장히 빨간 사람입니다."라고 자기 소개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기만인 것이다.

한국노총이 어떤 조직인가. 이승만 정권 때 만들어진 어용노조, 노동자 탄압하는 깡패노조, 노동자위에 군림하는 관료노조, 민주노조 못 만들게 하기 위한 구사대노조, 정권과 자본에서 구색 맞추려고 이용하는 사기노조, 효과적 노무관리를 위한 중간관리자노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노동자는 하나다" 라는 구호가 언제부터 대중을 기만하는 구호가 되었던가. 한국노총 위원장이 “통큰 단결”을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역겨운가.
민주노총 내부의 문제의식을 사전 검열하는 주최측이 한국노총 위원장은 왜 연단에 세워 이런 극단의 정치발언을 “허가”했을까. 심지어 “국가경쟁력을 키워 세계 10위권안에 드는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개소리까지 할 수 있게 허가했을까.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이 비정규직 노동유연화에 있다면 뭐라고 할 건가?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이 사회복지예산을 줄이고 삶의 모든 공간에서 시장경쟁을 극대화하는 길이라면 뭐라고 할 건가? 세계 10위안에 무장한 세계화로써 제국주의 아닌 나라가 있는가? 제국주의 국가들과 경제력, 군사력 경쟁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시민사회단체 대표라는 자격으로 나온 연사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안에서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노골적인 정치발언을 했다. 한국노총 위원장의 발언을 포함하여 결국 모든 발언은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하고싶은 말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건설플랜트노동자들. 그들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사생결단의 의지로 처절한 장기투쟁을 하는 많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대신 정치발언으로 채워진 노동자의 날 행사에서, 그나마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절절한 투쟁의 사연과 그 힘찬 목소리와 억센 분노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일깨웠고, 자신과 동지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단결과 투쟁과 연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이며 투쟁과정에서 가장 소중하게 체득한 가치이다. 그것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정치적으로 전진시키는 것이 노동절대회가 아니라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몫은 거기까지로만 의도되었다.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노사정간의 대화의 사실상의 결렬, 혹은 대화의 사실상의 의미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음에도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감정에 호소하는 문화적 가치만으로 의도되었던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에 대해 자신들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만, 정치와 현장의 문제를 분리하자는 정부와 자본의 요구에 양대노총은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에 극단의 분리와 분열을 조장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권위주의적 통큰 “단결”,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아닌 관객이 되어버리는 잘 짜여진 일방적 문화행사며 애초에 진짜 투쟁이라는 건 행사에 방해만 되는 “투쟁” 문화제, 이주노동자운동과 장애인운동에 대한 내용없는 기능적 “연대”, 이런 게 “단결”이고 “투쟁”이고 “연대”라는 이름으로 치장되었다. 때문에 115주년 세계노동절 대회가 사상 최악의 부끄러운 세계노동절대회이며, 정말로 최악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과 연대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대안이다." 이처럼 쉽고 당연한 말한마디 듣기 힘든 노동절은 다신 없어야 한다. 그 미래조차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몫이다.

메이데이는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축제의 날이자 투쟁하는 날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남성 여성, 고용보장 노동자와 해고노동자의 구분과 차이 없는 모두가 단결하여 투쟁하는 날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메카, 울산에 메이데이는 없었다. 4월29일 메이데이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대공장 조합원들이 중복 휴일로 메이데이 행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4월28일날, 노동부 항의 투쟁을 하던 건설플랜트 동지들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연행되었다. 경찰은 집회를 해산하고 가는 플랜트 조합원들을 골목까지 쫒아가 곤봉으로 개 패듯이 패서 실신시키고 거적대기 집어던지듯이 닭장차에 싣고 갔다. 내 동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가는데, 힘이 없다면 힘을 재정비하고 투쟁을 선포해야 하는 날, 울산에 메이데이는 없었다. 울산건설플랜트, 대덕사, 현자비정규직노조, 용인기업 지회, 현중사내하청지회, 우진교통, 그리고 미포 해고자들의 투쟁이, 효성해복투 동지들의 투쟁이 하나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개약진하고 고립되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지역 본부 운영위는 지역 투쟁 사업장의 투쟁을 하나의 지역 연대 총파업으로 집중시킬 계획은 부재하다. 울산노동운동의 현주소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자리이다. 개별사업장의 투쟁은 그 절박하고 고강도 투쟁에도 불구하고 고립되고 투쟁의 활력은 정체되고 있다. 메이데이115주년, 그러나 노동운동의 일번지 울산에 메이데이는 없었다.


사회적 교섭 - 자본의 유연화 공세의 문을 활짝 열다.


전비연 차원의 메이데이 서울 상경 투쟁이 있었으나 5월2일 직권조인이 예상되는, 국회일정에, 사회적 교섭에 목매달고 있는 무기력한 “행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4월19일, 총파업을 호소하기 위한 민주노총 임원 순회 간담회 울산 대표자회의에 참여했었다. 강승규 수석은 국가인권위 안이 “민주노총의 작품이다. 발표 시기까지 강제했다. 교섭 투쟁을 통해 현장 투쟁을 복원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 안을 발판으로 공세적으로 권리입법쟁취로 몰아가자. 총파업을 조직하자”고 국가인권위 안이 성과인 것처럼 말했다. 참 당당했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무참하게 짓밟고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파견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물량에 따라 이동하는 건설노동자, 조선업종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기간제 사유제한 예외조항에서조차 제외됨으로써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밖에 없는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는 아예 빠져 있는데 어떻게 국가인권위 안이 성과일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 했다. 강승규 수석은 “비정규직 대표자들도 동의해줬다”고 논쟁을 피해갔다. 비정규직 대표자가 문제제기하는데 비정규직 대표자들도 동의해줬다니? 말장난하나. 재차 물었다. 투쟁에 있어서 요구와 목표는 대단히 중요하다. 권리입법 쟁취를 명확히 하고 국회일정, 사회적 교섭에 목매달지 말고 국회 일정 밖에서, 사회적 교섭 밖에서 총파업을 조직하라. 조합원들은 커피자판기가 아니다. 사회적 교섭에 목매달라가 교섭을 강제하기 위해서 하루 아침에 총파업 지침 내린다고 해서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하게 답하라! 권리보장입법 쟁취를 위해서 총파업을 사수할 수 있겠느냐? 강승규 수석은 논쟁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 이렇게 전국을 발로 뛰고 있는 것이다. 총파업 조직화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했다. 단위노조 대표자들은 대부분 침묵했고 구호로서 간담회는 마무리되었다.


4월 총파업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총파업이 사라진 자리, 자본가계급과 정부 관료들과의 교섭 일정만이 잡혀 있고 교섭의 내용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장조합원들의 운명이 걸린 요구는 결코 위임되어 삭제될 수 없으며 교섭권이 위임되었다고 하더라도 요구안은 현장 조합원들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또한 협상의 전과정은 실시간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현장 조합원들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총연맹 지도부, 그것도 맨 꼭대기에 있는 위원장 개인에게 위임되어 있다. 총연맹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이수호 위원장에게 언제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넘겨 주었는가? 파견법은 교섭 과정에서 논쟁조차 되고 있지 않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몬 자본의 무기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논쟁조차 되고 있지 않단 말인가? 파견법이 살아 있는 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간제 사유제한 명문화는 공문구이다. 자본가계급의 립서비스일 뿐이다.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교섭 내용이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완전하게 공개되지도 않은 교섭 내용은 재앙적이다. 동일노동 동일 임금은 동등처우로, 고용의제(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조항은 고용의무(고용해야 한다)로 현재의 파견법 고용의제 조항조차도 후퇴시키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 직권으로 나올 합의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모는 자본의 칼이 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름으로 민주노조운동을 무참하게 유린하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투쟁 동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쟁을 확대할 의지도 없이, 어떻게 해서든 탁학수를 끌여 들여 “사내하청노조활동 보장”이라는 공문구라도 얻고자 했던 박일수 열사 투쟁의 결과물인 “합의서”가 완전히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것처럼 이수호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나올 합의안은 더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5월2일 합의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진행된 메이데이 행사는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수동적 관객으로 전락시켰다.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을 총연맹 꼭대기에 서 있는 이수호 위원장의 개인 결정에 맞겨 둘 수가 없다. 이수호 위원장은 현장조합원들의 “직권”으로 소환되어야 한다. 정부 관료들, 자본가들과의 밀실 협약 잔치는 끝장나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투쟁이 있는 곳,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투쟁이 있는 곳,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가고 싶었다. 김주익 동지, 최남선 동지와 함께 청주 하이닉스 매그나칩으로 향했다. 길을 잘못 들어 1시간이나 늦게 하이닉스 매그나칩에 도착했다. 이미 짧게 메이데이 집회를 마치고 공장 진입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측면에서 공격해들어오는 전투경찰들은 여성 동지들이, 심지어 아이까지 있는 여성 동지들이 선두에 연좌해 막고 있었다. 전투 경찰들은 사수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아 대고 소화기를 뿌려되고 폭력을 행사했다. 시야를 가리는 소화기와 물대포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사수대 동지들은 철망으로 된 담을 뜯고 공장으로 진입했다. 공장 진입투쟁은 한 번 밀어 보고 마는 관성화된 그런 투쟁이 아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공장으로, 내가 일했던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절박한 몸짓이었다.

공장 진입 투쟁에는 아주 특별한 중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전 충북 본부 민주노총 지도부였다. 하이닉스 동지들의 절박한 몸짓 만큼이나 진입 투쟁을 지도하고 있는 지도부는 하이닉스 동지들의 결연한 투쟁과 한 몸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사수대 동지들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머뭇거리고 있는 동지들을 독려하며 투쟁 대오에 결합시켰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지도부가 선두에 서서 사수대 동지들과 한 몸을 이루고 머뭇거리고 있는 동지들을 독려해서 투쟁을 완강하게 지속시키려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새로운 현실이었다.

현장 진입에 성공한 동지들을 따라 남아 있는 사수대 동지들은 볼트로 고정된 쇠창살 담벽을 뜯어 내고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눈 앞에 살인 무기로 무장한 전투 경찰 앞에 당당하게 섰다. 무장된 폭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한이 더 깊고 더 고통스럽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소박하지만 어떠한 폭력 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전투경찰들은 작정한 듯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발생하고 연행자도 생겼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정문 밖으로 밀려나왔다. 정문에서 경찰병력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연행 동지 석방을 외치며 공단 5거리로 집회 대오는 진출했다. 가두 행진 중 방송차량이 고립되고 마이크를 잡았던 한 동지가 방송차량 위헤서 폭행당한 뒤 끌려내려왔다. 하지만 투쟁을 통해 대오에 합류했다. 공단 5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도로를 점거하고 쇠파이프가 전달되었다. 사수대가 두 방향의 도로를 점거하고 저지선을 쳤다.

투쟁하는 지도부의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전술

하이닉스 동지들은 사수대로 투쟁의 최선두에 섰다. 충북본부 지도부는 에스케이 주유소를 배수진으로 쳤다. “너희가 폭력이면 우리는 죽기를 각오했다. 사수대 동지들을 죽기를 각오하고 저지선을 사수하라! 동지들 지도부가 먼저 죽을테니 함께 하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죽읍시다. 비정규직의 한 여기서 끝장냅시다. 죽기로 작정했다. 올테면 빨리 와봐라” 말통의 신나가 사수대에게 전달되었다. 불길을 솟아 올랐다. 신나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앞을 가리는 전선을 이영섭 충북본부장은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직접 돌면서 사수대 동지들을 격려하고 투쟁을 고무했다. 지도부의 결연한 의지와 과감한 전술은 사수대 동지들 뿐만 아니라 머뭇거리고 있는 동지들조차 안정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투쟁 의지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지도부가 싸울 의지가 없고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전술을 취했다면 집회 대오는 아주 간단하게 유린당했을 것이다. 적들의 침탈이 시작되고 1차 저지선이 무너졌고 사수대가 에스케이 앞까지 밀렸다. 그러나 곧바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투쟁을 지도하고 있는 동지는 결코 동요하지 않았고 투쟁을 고무했다. 투쟁의 배수진, 에스케이 주유소 거점으로 다시 힘차게 전진하여 나갔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300여명의 대오가 1,500의 무장된 전투 경찰과 맞섰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십여대의 앰블런스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끌려간 동지가 10명의 동지들을 죽음을 각오한 투쟁에 결합시키고 또 한명의 부상 당한 동지가 20명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에 동지들을 결합시켰다. 하이닉스 동지들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과 이 투쟁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도부의 결연한 투쟁 의지와 과감한 전술은 두려움을 잊게 했다. 마침내 전투경찰들을 퇴각시켰다. 전투경찰의 또 다른 침탈을 막기 위하여 사수대 앞에 한 동지가 웃통을 벗고 무릎 꿇고 안잖다. 웃통을 벗은 동지는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 사수대 동지들은 웃통을 벗은 한 동지를 살리고 대오를 사수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 지도부는 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메이데이 날 늦은 저녁 전투에 참가했던 모든 동지들은 계급투쟁의 전선에서 사상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파열구를 내며 민주노조운동은 청주 전투로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메이데이 정신은 과거의 문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청주 전투에서 살아 있는 실체로 등장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동지적 단결을 강화하고 죽음으로써 동지들을 지켜내며 자본과의 비타협적 투쟁 전선을 사수하기 위한 지역과 업종을 뛰어 넘는 계급적 연대, 그리고 결연한 투쟁 의지와 과감한 전술로 투쟁의 중심에 섰던 지도부. 메이데이 날 청주에서의 전투는 나에게 아주 뚜렷한 사상으로 남았다.


나는 단상점거 투쟁을 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은 한 시기가 마감된 줄 알았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주의의 파열구를 내며 민주노조운동은 청주 전투로부터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몫은 청주에서의 전투를 사회적 교섭틀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투쟁 사업장 연대를 강화하고 자본의 유연화 공세 맞선 투쟁 진지들을 사수하는 것이다. 투쟁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통, 투쟁하는 현장대표자 운동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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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며

  문국진

 

 

 

 

1. 8시간 노동제의 쟁취

노동절은 본래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근로자의 날”이라고 불리웠다. “노동자의 날”이라는 명칭을 획득한 것은 그리 오랜 날이 아니다. “노동절”은 본래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노동자계급의 대축제이다. “8시간 노동제의 전면 실시”를 획득한 것을 기념하여 노동절이 생긴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8시간 노동제”는 이후 전 세계에 파급되어 노동의 시간 단축이 보편화된 것이다.

2.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소외된 노동” 즉 자기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즉 주인에게 봉사하는 “노예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헤겔 및 포이에르바하의 “소외의 이론”에 근거하여 노동의 본질을 규명한 맑스에 이르러 정립된 사상이다. “노동의 자기소외”가 자본주의하의 노동의 본질인 것이다.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이해해 보자---

노예의 자기 시간의 쟁취는 바로 노예의 자기 해방과 자유의 획득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착취를 최대한 경감하고, 근로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자유시간”을 얻어내는 투쟁---이것이 바로 피로써 쟁취한 노동자의 시간 단축이다. 오늘날 유럽은 8시간노동에서 7시간노동으로, 다시 6시간노동으로 노동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있다. 어느 나라는 4시간까지 단축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80년대에 백원담 번역으로 나온 內海義父의 『노동시간을 중심으로 본 세계노동운동약사』(화다출판사)를 보면 노동시간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 간의 치열한, 그리고 피로 점철된 역사를 알 수 있다. (비매품. 연세대 도서관 소장서)
노동시간의 양은 바로 계급투쟁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3. 자유시간의 중요성

남한에서 토요일 격주 휴무가 실시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동안 치열히 전개되어 온 노동자계급투쟁이 획득한 역사적 떡고물이다. 지금 은행 등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한참 멀었다. 8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들이 태반이고 중소영세사업장들은 계급투쟁력이 약한 상황을 반영하여, 잔업, 특근, 철야가 일상적이다. 심지어는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 대공장에서도 잔업, 특근, 철야 등이 밥 먹듯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청 등에서는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 노동시간이 자본가의 맘먹는 대로 연장되기도 한다. 장시간의 노동시간의 결정은 여전히 자본가의 수중에 달려 있다.

오직 계급투쟁의 역관계만이 노동시간을 1시간이라도 단축할 수 있는 힘의 논리를 드러내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의 자유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노동자는 퇴근 후에야 비로소 자기 시간을 갖는다. 그전에 노동의 시간 내에서는 꼼짝없이 자본가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가 퇴근 후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생산노동시간 이후의 자기 시간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본의 유통과정의 시간, 즉 소비과정에 포섭되어 있을 따름이다. 식당에 가거나 술집에 가더라도 거기도 역시 자본주의사회 내부이고, 노동자는 소비하고 가두유통과정에 놓여 있음으로 해서, “자본의 실현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이로써 자본은 노동을 철저하게 착취한다.

퇴근 후에 자유시간을 갖게 된 노동자는 그러나 책을 읽는다든지,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낸다든지 해서 여유와 문화,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재충전의 시간은 어찌 보면 자본의 더 세련된 지배, 즉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기대효과, 그리고 노동자가 읽는 책에 따라서는 더 훌륭히 자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영어공부, 업무관련 서적, 컴퓨터공부 등으로 자유시간마저 자본을 위한 투자로 만들어버리는 기대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반면, 노동자의 더 많은 자유시간은 곧 계급적 의식의 강화, 주체적 집단 활동의 강화, 그리하여 변혁을 위한 노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무한정의 관철을 위해 장시간 노동이 강제되었던 시절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조금 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의 획득은 불가능하였었다. 모든 것을, 모든 시간을 자본과 국가에 바쳐 헌신한 선배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의 풍성한 경제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50대 이상은 바로 이렇게 살아온 세대이다.

오늘날 노동자의 더 많은 자유시간의 확보는 바로 선배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인해서 얻어진 것이지, 결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유시간은 노동자에게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다. 자기 자신의 개발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더 많은 지식과 문화로 노동의 피로(疲勞)를 덜어내고, 문화적 자유인으로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물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노동으로부터의 자유”야말로 노동자의 발전과 노동투쟁생활의 발전과 변혁적 노력의 축적을 가져오게 하는 “해방의 무기”이다. (제레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을 참조하시오)

4. 세계노동절은 “노동자 국제주의”를 말해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고-최후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레닌, 『제국주의론』)은 식민지/반(半)식민지들을 자본주의화시켰다. (조선의 ‘내재적 발전’을 억누르고 일제가 실시한 외재적 근대화에 따른 조선의 자본주의화의 기점이 1910년대부터인가, 아니면 1930년대부터인가에 관한 논쟁은 여지껏 끝나지 않았다. 참고로 북한역사학계는 일제에 의한 본격적인 중공업화를 1930년대부터라고 규정하고 있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반대하는 식민지자본주의론)

또한 1948년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반제/반세계화/반신자유주의운동의 담론들은 이미 맑스와 레닌 및 그밖의 맑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원초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로부터 인한 계급투쟁의 논리는 이미 1840년대, 1900년대에 이미 파헤쳐졌다. 그런데 맑스주의란 다름 아니라 “노동자국제주의”에 다름 아니다. 전 세계적인 통합성의 증대에 따라, 자본의 국제주의적 발전에 따라 ‘노동의 국제주의’ 역시 발전해 온다.

프랑스혁명은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베토벤의 웅장한 음악과 헤겔의 시대정신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러시아혁명은 이후 스탈린에 의해서 코민테른, 즉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의해서 전 세계에 스탈린주의적 공산당운동들을 파급-발전시켰다.

동유럽의 공산주의화, 북한의 김일성 집권 등은 소련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었다(혁명의 국제적 수출). 물론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맑스주의의 중국화”의 기치하에 “모택동사상”이라는 독특한 혁명이념으로써 소련식 혁명론으로부터 독립하고 1950년대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하였고, 북한은 중소로부터의 외교적-정치적 독립을 추구하면서 “주체사상, 즉 김일성사상”을 전개하였고, 전 세계에 걸쳐 “주체사상연구소”를 파급시키고 있다. 쿠바는 미국의 뒷 뜰에 자리 잡아 막강한 미국 군사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강대하게 생존하고 있다.

그런데 “일국사회주의냐, 국제주의냐”의 논쟁은 철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일국내 사회주의의 건설과 제국주의 반동에 대한 국제적 투쟁, 따라서 혁명의 수출---양자는 모두 다 필요하다. 그런데, 전자 없이는 후자는 불가능하다. 강고한 군사력, 내부의 정비, 노동독재정권의 강화 등 일국내 사회주의 강화 없이는 외부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지구화, 지구촌은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다. “노동자 국제주의의 옳은 노선”은 이제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다. 인터넷과 국제전화는 사회주의의 건설이 곧 “전기(電氣)와 공산주의의 결합”이라고 했던 레닌의 말을 현실화하는 과학적 수단이 되었다.

물론 레닌조차 1917년 러시아혁명 정권 수립 이후에 밑으로부터의 노동자 자주관리운동들을 억압하였고, 공장위원회와 심지어는 소비에뜨운동들을 탄압하기도 하였지만. (이정희 교수의 『볼세비끼 사회주의와 노동자자주관리운동』, 서울대 서양사 박사학위논문 참조) 그리하여 위로부터의 강력한 스탈린주의 독재의 초석을 제공했지만.

그러면 지금 현 시점에서의 “노동자 국제주의를 위한 실천”의 과제와 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내의 변혁주의운동의 원리와 유사하다---즉 전위들의 조직적 활동의 발전과 기층 대중의 투쟁적 활동의 발전이다.

 

 



국제적인 전위조직의 건설(오늘날 국제트로츠키주의적 전위운동의 건설이 활발하듯이), 국제노동협회나 국제노동기구, 국제노동운동의 교류 등이 현시점에서 가능한 운동들이다. 남한 정세의 특수성으로 인해 오늘날 남한과 북한 간의 교류 역시 국제적 운동이다.

결론: 전 세계의 개조(改造)를 향하여

민족과 인종, 국가로 분열된 세계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인하여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보편적 세계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것, 인간사회라는 사실 앞에서 이제 민족이나 국가가 따로 없고 동양과 서양이 따로 없다.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이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나라의 기본모순은 이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미제국주의와 피지배국가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전 세계에 있어서 “노동자는 하나다.” 모든 개별적 노동자, 모든 특수한 직종, 업종, 기업을 뛰어넘어 “노동자는 하나다.”

남한 노동자운동은 이제 전 세계 노동계급해방투쟁에 그 선두가 되어야 한다. 분열을 겪고 있는 전위들의 운동 역시 이제 화합과 통합을 향해, 분열과 반목대신, 정치력에 기초한 조직들 상호간의 유기적 협력과 일치의 강화로 나서야 한다. 개별화에서 보편화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운동의 유치한 단계에 머물지 말자. 전 세계의 개조는 바로 우리 노동운동 세력의 역사적 과업이고, 그것은 바로 “통 큰 정치”로써만 해결될 수 있음을 깨닫자.// 050430
 
(※굵은 글씨 강조는 모두 인용자)


 

메이데이 청주에서의 전투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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