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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5월 1일 어수선한 광화문에서 무대 옆에 서있던 땅콩같은 언니를 스쳐지나갔다.

00년, 종로거리에서 새내기인 나의 손을 잡고 대오사이를 비집고 지하도 아래로 뛰어내려갔던 나보다 키가 작은 언니. 그 언니와 동년배 선배들의 걸음은 이미 서른줄 위에 있고 어느새 나는 그때 언니들의 나이가 되었다. 

서른을 지나온 사람들은 만약 그때 개피를 봤더라도 이십대에 그걸 해봤어야 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곤 한다. 개피를 흘린 경험이 그 이후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심리적 거리상 수킬로 떨어진 곳에서 서른살을 바라보는 한 사람은 고맙게도 나더러 서른이 오기 전에 뭔가를 해놓아야 하지 않겠냐고 점잖게 충고를 했다. 어떤 불가피한 상황과 그 상황 앞에 놓일 자신의 모양새에 대해 미리 걱정하면서. 항상 앞날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라는 말로 대충 알아들었다.   

완강한 현실 앞에서 나의 버팀목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대답할 용기가 있다면, 나머지가 한참 부족하더라도 끔찍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 최승자 시는 다시 읽어도 참으로 가학적이다.   

먹을땐 그저 그런데 잠시 후면 손떨리게 비위가 상하는 각성제 같은 느낌.    

   

 십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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