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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12
    Melodies of life(Asalama alaiku)(6)
    heesoo
  2. 2006/06/12
    칼 폴라니(1)
    heesoo
  3. 2006/06/12
    본능과 사고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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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6/12
    청년 맑스가 생각한 '직업'
    heesoo
  5. 2006/06/12
    Lenin과 Gorky의 Chess 대결
    heesoo

Melodies of life(Asalama alaiku)

 
 

 

                          Alone for a while I've been searching through the dark,
                          For traces of the love you left inside my lonely heart,
                          To weave by picking up the pieces that remain, Melodies of life... 
                          love's lost refrain...

 

                          Our paths they did cross, though I cannot say just why. 
                          We met, we laughed, we held on fast, and then we said goodbye.
                          And who'll hear the echoes of stories never told 
                          Let them ring out loud till they unfold.

 

                          In my dearest memories,
                          I see you reaching out to me.
                          Though you're gone,
                          I still believe that you can call out my name...


                          A voice from the past, joining yours and mine.
                          Adding up the layers of harmony...

                          And so it goes, on and on...
                          Melodies of life, To the sky beyond the flying birds...
                          forever and beyond.


                          So far and away, see the birds as it flies by.
                          Gliding through the shadows of the clouds up in the sky.
                          I've laid my memories and dreams upon those wings.
                          Leave them now and see what tomorrow brings.

  

                          In your dearest memories...
                          do you remember loving me 
                          Was it fate that brought us close and now
                          leave me behind...

 

                          A voice from the past, joining yours and mine.
                          Adding up the layers of harmony...

                          And so it goes, on and on...
                          Melodies of life, To the sky beyond the flying birds...
                          forever and beyond

 

                          If I should leave this lonely world behind,
                          Your voice will still remember our melody.
                          Now I know we'll carry on.
                          Melodies of life, Come circle round and grow deep in our hearts...
                          as long as we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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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책세상/ 2002년 7월)

 

 

 

   19세기 러시아의 혁명적 민주주의자이자 문학가였던 체르니셰프스키의 대표작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문학을 알기 위해 모든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고골리를 읽으면 된다.'  물론 이는 훗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19세기 러시아의 문학을 대표하기 이전의 말일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쓴 모든 글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40여권이 넘는 맑스나 레닌의 진집을 죄다 읽어야만 맑스나 레닌을 이해했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칼 폴라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거대한 변형 The Great Transformation》에는 그의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라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칼 폴라니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여기 홍기빈 님이 간편한 시추공을 하나 뚫어 놓았습니다. 아쉽지만 이를 통해서나마 그에게 직접 접근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몇년 전에 재판이 발간된 《사람의 살림살이 Ⅰ, Ⅱ》(칼 폴라니 지음/ 박현수 옮김/ 풀빛/ 1983)나 간접적인 통로이긴 하지만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J. R. 스탠필드 지음/ 원용찬 옮김/ 한울아카데미/ 1997)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은 크게 6개의 장과 옮긴이의 해제로 되어 있습니다. 1장 <낡은 것이 된 우리의 시장적 사고방식>은 폴라니가 1947년 《Commentary》에 기고한 논문으로, 시장 신화를 비판하는 그의 연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2장은 《거대한 변형》의 6장과 11장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이중적 운동과 자기 조정 시장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노트>는 폴라니의 강연 개요나 개인 노트 가운데 뽑은 글들로, '다시 쓰는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하면 출간된 적이 없는 글들이라고 합니다.

 

   4장 <우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은  폴라니가 1925년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기관지에 발표한 글입니다. 여기서 그는 중앙 계획에 의존하는 국가 사회주의 혹은 '관치 경제 모델'을 비판하는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의 단초를 밝히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외부적 조망'과 대비되는 '내면적 조망'에 착목해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곳에서 옮긴이가 산별노조를 '산업 결사체'로 번역한 것은 조그만 티로 보입니다.

 

   5장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는 1945년 영국에 머물고 있던 폴라니가 전후 자유주의적 세계 시장 체제의 복구를 추진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영국이 반대해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하려고 쓴 글입니다. 이를테면 폴라니는 자유주의적 세계 시장 질서의 보편주의에 맞서 지역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실천적인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만으로는 오늘날의 쟁점과 관련해 더 구체적인 고민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한편, 글 가운데 소련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다소간의 옹호는 현재 시점에서는 다소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6장 <칼 폴라니 약전>은 폴라니의 딸 등이 그의 삶과 사상을 개관하고 있는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홍기빈 님이 쓴 <해제 - 칼 폴라니의 시장 자본주의 비판>은 폴라니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3장에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독교적 관점 : 비판>은 1930년대 초반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매우 인상적인 대목을 여기에 옮겨 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처럼 통렬한 비판은 현재에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여러번 곱씹어 볼만한 글입니다.

 

                                                                                    

       "이 체제의 논리는 스스로 목을 졸라댄다. 더 효율적인 자본주의를 향한 무자비한 충동.

       보조금과 관세를 요구하며 정부에 퍼붓는 압력. '눈물 없는 자본주의'는 끝났다.

       이 단계의 유효성은 지나갔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이제 식인주의를 뜻한다.

       인간의 노동은 이제 골치 아픈 조건들이 모조리 떨어져나가고

       생활이라는 속성이 제거된 상품이 되었다.

       인간으로 희생을 치러야 이윤이 계속 늘어난다. 더 많은 사이비 인간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이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변장 따위는 찢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벗어던지고 있다.

       학생들은 '자유에 침을 뱉고', 투표는 코미디가 된다.

       소리 높여 이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 해도 곧 위험 인물로 몰려 투옥된다.

       인간들이 사이비 인간이 되듯, 공동체도 사이비 공동체가 된다.

       항상 사이비 인간들의 공동체를 지지해온 조직들은 이를 환영하고 합리화한다.

       보편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동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인격적 자아의 실현을 추구하려 들면

       공산주의 또는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낙인찍힌다.

       인체의 욕구 가운데 호흡 중추보다 위에 있는 부분의 욕구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못한다.

       두뇌 피질은 여기에 순응하지 못하고 미쳐간다.

       원래 멀쩡하던 모든 이들이 이제 제정신이 아니다. 전 세계가 정신병원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더 심각한 신경증 환자들이 나서서 덜 미친 대중을 이끈다.

       자기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유쾌한 안도감이 온 나라에 퍼진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사실은 전혀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작 미친 것은 세상이다.

       지구 곳곳에서 사악한 괴물들을 무찌르기 위해 십자군을 조직한다.

       보탄Wotan 숭배가 국가적 종교가 된다."(pp.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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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과 사고의 결합

  "마르크스주의는 스스로를 무의식적인 역사 과정의 의식적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역사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무의식적인' 과정이 그 의식적 표현과 일치하는 것은, 그것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즉 대중이 순전히 자연 발생적인 압력에 의해 사회적 인습의 문을 때려 부수고 역사 발전의 가장 깊은 요구에 승리의 표현을 부여할 때 뿐이다. 이런 순간에는 시대의 최고의 이론적 의식이 이론과 가장 거리가 먼 최저변의 피억압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과 융합한다. 의식과 무의식적인 것의 이런 창조적인 결합이 바로 보통 영감이라 불리는 것이다. 혁명은 영감을 받은 역사의 광란 상태이다.

   진짜 저술가라면 누구나 자신보다 강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인도하는 듯한 창조의 순간을 알고 있다. 또한 진짜 웅변가라면 누구나 평소의 자기 자신보다 강한 뭔가가 자신의 입을 이용해 말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것이 '영감'이다. 그것은 온 힘이 다 기울여진 최고의 창조적인 노력에서 태어난다. 무의식적인 것이 깊은 우물 속에서 솟아올라 의식적인 정신을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그것을 어떤 보다 큰 종합 속에서 자신과 융합시킨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도의 정신력이 이따금 대중 운동과 결합된 모든 개인적인 활동에 주입된다. 10월 혁명 기간 동안에 '지도자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유기체의 잠재적인 힘, 더없이 깊은 뿌리내린 그 본능, 동물이었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직감 - 이 모든 것이 솟아올라 심리적인 인습의 문을 때려 부수고, 혁명에 봉사하며 보다 높은 역사 철학적인 추상 개념들과 힘을 합친다. 개인과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이 두 가지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 즉 의지의 원동력을 이루는 본능과 보다 높은 사고의 이론의 결합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나의 생애(하)>(트로츠키, 박광순 옮김, 범우사, 2001), p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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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맑스가 생각한 '직업'

 "직업을 선택할 때 주요한 기준은 인류의 행복과 자기완성이다. 두 가지는 서로 엇갈리거나 적대적이어서 한쪽이 다른 쪽을 배제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비로소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만일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면 설령 저명한 학자나 훌륭한 현자 혹은 뛰어난 시인이 되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진정으로 완성된 위대한 인간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역사는 이 세상 전체를 위해 일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높여가는 사람을 위인으로 인정한다. 최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사람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기린다. 종교도 가르쳐준다. 모든 사람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물은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이런 생각을 섬멸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우리가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기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어떠한 시련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시련이란 그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잠시 동안의 희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사소하고 한정적이며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죽어도 우리의 삶의 자취는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며, 타고 남은 재는 고귀한 인간들의 반짝이는 눈물로 젹셔질 것이다."

 

- K. Marx,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 중에서

 

 

 

   1835년 8월 12일, 독일 모젤(Mosel) 강변 트리어(Trier)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김나지움 졸업반 학생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 날은 서른 두 명의 학생들이 졸업시험 과목 중 논문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변호사이자 법률 고문관인 하인리히 맑스의 아들 칼 맑스도 그 서른 두 명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막 17세가 된 젊은 청년이었던 그는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Betrachtung eines Jünglings bei der Wahl eines Berufes)>이라는 제목의 인상적인 논문을 작성했다. 이 논문 가운데 묻어나는 결기는 그의 평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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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in과 Gorky의 Chess 대결

Lenin과 Gorky의 Chess 대결  

 

 

                레닌(왼쪽)이 고리끼(오른쪽)와 함께 체스를 두고 있다.

                레닌은 망명지에서 종종 동지들과 함께 체스를 즐겼다.

                러시아 사람들은 체스를 즐긴다.

                체스세계챔피언도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많다.

                러시아어로 "샤흐마띠"로 불리는 체스.

                언제 한 번 배워보고 싶다.

                레닌은 체스를 두며 무념에 빠졌었을까?

                아니면 체스판을 혁명의 지도로 생각했을까?

 


              " 체스는 왕과 왕이 싸우는 게임이다.

                빛의 영과 암흑의 영의 갈등, 선한 영과 악한 영,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벌이는 천사와 악마의 싸움,

                적대적인 힘이 서로 겨루고 있는 싸움터로서의 현실세계를 뜻한다.

                현현顯現과 비현현非顯現으로의 회귀이다.

                흑색과 백색이나, 홍색과 백색으로 이루어진 체크 무늬 판은

                현현 세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이원 요소나 상보적 요소

                - 음과 양, 밤과 낮, 태양과 달, 남자와 여자, 모호함과 명확함,

                달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 시간과 공간 등 - 가 서로 밀어냄을 상징한다.

                흑백, 홍백의 체크 무늬 판은 또한 선과 악,

                행운과 불운이 뒤바뀌며 펼쳐지는 인생의 교착 상태를 뜻한다.
                체크 무늬 판에 그려진 64개의 칸은 시바신이 변신한 모습의

                만다라(MANDALA)이며, 사원이나 도시의 기본적인 형태인 8*8 이라는

                4배수의 상징에 근거를 둔것으로

                우주의 모든 가능성과 우주와 인간을 움직이는 지배력을 나타낸다.

                그래서 체크 무늬 판에는 우주의 완전함이라는 의미도 있다.

                인도의 둥근 체스판은 <무한 無限>과 <생사生死의 순환>을 상징한다.

                체스의 한번의 승부는 한 시대를 뜻하고, 말을 치우는 것은 비현현의

                시기를 상징한다.

                말의 움직임은 현현의 세계와

                그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모든 가능성의 실현을 상징한다.

                어떤 말을 움직일 것인지 선택은 자유이지만,

                말을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일련의 피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

                즉 여기에서는 자유의지와 운명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영혼만의 진리이며, 인간은 영혼 안에서만 자유롭고,

                영혼 밖에서는 운명의 노예가 된다."

                - 출처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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