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짜증의 날
category 朱鷄  2017/06/03 18:45

살다보면 헉 소리 나게 만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동창 모임, 거기서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어이구, 얼마만이야, 전화 좀 하지~”

그냥 넘어가도 무방한 말이지만, 같이 앉아 있는 동안 내내 뭔가 찝찝합니다. 딱히 살갑게 친하지도 않았고, 먹고 살다 보면 딱히 전화할 일도 없는 게 동창들이라는 존재이니, 먹고 살 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은근히 누구누구는 인생이 안 좋게 풀렸다더라는 식의 얘기나 하러 모이는 그런 자리가 아닌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리일 텐데 꼭 저렇게 연락 두절의 상황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네가 좀 연락하지, 너는 왜 안 했냐”라고 대꾸를 하기에도 좀 그렇고, 아무래도 “연락 좀 하지 그랬어~”라는 말은 먼저 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말인 것 같습니다.

더 웃기는 건, 설거지를 해주느냐로 화제가 옮겨가서 그게 마치 성평등한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는 증표인 양 서로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누가 하는지 캐묻기 시작한 데서 이 나라 속물들과 언제까지 부대껴야 하는지 암담함을 느끼게 된 자리였다는 겁니다. 남편이 설거지 안 하면 집안일도 같이 안 해주는 사람으로 그냥 단정을 해버리고 핀잔들을 늘어놓습니다. 남편이나 시댁 흉볼 계기를 누군가 쏟아놓길 간절히 바라는 거죠. 설거지만 안 하고 요리부터 모든 가사를 남편이 전담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도 어째 그런 사람이랑 사냐는 식으로 은근 빈정댑니다.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른데, 사유의 깊이가 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적당한 핑계와 함께 기분 좋아질 말 몇 마디 던지고 일어났지만, 정말 그 시간에 설거지나 하고 있을 걸 그랬습니다. 그렇게 모이면 뭐합니까, 모임 끝나고 저마다 가장 친한 친구와 다시 전화하면서 뒷담화하기에 바쁜 게 우리네 모임의 속내인 것을.

 

2017/06/03 18:45 2017/06/03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