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폭로에 의존할 것인가
category 靑羊  2015/06/20 16:02

황우석 사태 때도 그랬고, 작금 진행되는 신경숙 작가 표절 사태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폭로에 의해 양심과 성과를 알아야 한단 말입니까. 2000년대 초 경락의 실체를 입증했다며 마치 큰 혁명이라도 올 것처럼 세간에 이를 알리고 엄청난 연구비를 수령받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경락과 기의 실체를 밝혔다면 한의학은 그 자체로 발전이 시작됐을 텐데도 X-ray 사용 허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 건강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 건강을 그렇게 위한다는 한의학계가 어찌 약사들의 한약 취급에는 결사 반대를 했는지, 또 한의학의 큰 혁명을 일으킬 근거를 입증한 지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어찌 메르스 사태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한지 궁금합니다. 불과 한 달전까지만 해도 뜨거웠던 X-ray 사용 허가 논쟁은 메르스 앞에서 납작 엎드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를 풍미한 다문화 연구도 그렇습니다. 엄청난 연구비가 인문사회 전 분야에 주어졌고 엄청난 논문과 연구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대중들의 차별 의식과 제도적 문제점의 개선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양 철학 고전에도 다문화 관련 내용이 있다며 국가의 연구비를 받아먹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대중과 소통했단 말입니까? 읽히지도 않고 그냥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그 많은 연구 결과물들은 학자들의 연구 업적 집계용일 뿐이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그 연구비들은 대학과 학계의 권력자들이 학문 후속세대들에게 갑질하기 위한 근거로 쓰이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되돌아봐야겠습니다.

국가의 예산이 들어가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특히나 연구와 창작 관련해서는 전문 분야이다 보니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평가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가를 하려고 해도 끼리끼리 뻔한 얼굴들이 서로 좋은 평가를 내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치 문학평론계의 고질병인 ‘주례사 비평’처럼 말입니다. 또 평가를 해주는 사람들은 소위 권위자들이다 보니 연구비(또는 창작 지원금)를 신청하거나 그 결과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적 열세에 처하게 마련입니다. 이래서는 연구나 창작이 질을 담보하여 자유롭게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 오래된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개혁해야 합니다. 이것은 줄어드는 정부 살림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 세금의 문제입니다. 질에 대한 평가는 구렁이 담 넘듯 하면서 정량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첫째, 각각의 연구비(창작 지원금 포함) 중 약 30% 이상을 검증비로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 검증 위원들은 비밀 유지 서약을 하고, 그 비밀을 지키지 못하면 중징계를 해야 합니다. 셋째, 검증 위원회는 권위자와 신진 연구자들을 동수로 구성해야 하며 모여서 회의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신진 연구자들을 넣어야 하는 이유는 최신 연구 성과를 익힌 사람들이지만 아직 학계에 확고한 위치와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만큼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검증을 제대로 못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이처럼 검증은 연구비를 지원받는 각 프로젝트의 예산 일부로서 편성하여 신진 연구자들에게는 연구비 수령 못지 않은 소득원이 되어야 연구자들이 연구비 수령에만 목 매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학의 연구교수라는 것이 실은 연구비 신청하러 다니는 앵벌이잖습니까.

검증해야 할 것은 연구 윤리, 표절, 조작, 성과의 질적 수준 등등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까지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고 연구비를 수령한 쪽에서 대충 서류 꾸며서 제출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전공도 아닌 사람들이 연구비 때문에, 윗사람들 때문에 일을 떠앉는 구조였습니다. 한식 세계화 운운하며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그래서 우리 식품회사들이 전 세계로 한식을 팔아치우고 있지도 못한데, 그에 들어간 예산은 결국 우리 주머니에서 나갔습니다. 그런 일은 감사원이 그나마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연구나 창작 관련 지원금의 경우는 질적 평가를 관료들이 할 방법이 사실상 없으므로 여기저기서 줄줄 샌다고 보면 됩니다. 그걸 이제는 막아야 합니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기에 제도로 사람을 몰지 말아야 하지만, 제도 자체가 미흡하다면 제도를 당연히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해나간다면 반대로 규제를 줄여야만 합니다. 법과 제도가 단순할수록 자유가 늘기 때문이죠.

신경숙 표절 의혹의 건만 하더라도 출판사측에서 자체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익명으로 추상같은 검증을 했더라면 일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걸 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저작권과 그에 따른 손해 배상이라는, 전과는 다른 문제가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증을 통해 그런 문제에 대비하지 않으면서 세계로 나아갔다가는 외국에 돈만 퍼주는 호구가 될 것입니다.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락과 봉한학설이 입증됐다면서도 한편에서 한의원이 계속 망해나가는 현실은 결국 10여 년 전의 떠들썩한 보도가 진실성 부족한 연구에 기반했던 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할 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국가가 구상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연구비 뿐만 아니라, 잘못 집행된 각종 예산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계약서에서부터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야 합니다. 세수가 줄었다고 투정하지 말고 기업의 법인세와 그들이 할인 받는 공공요금 등등을 합당하게 올리고 줄줄 새는 각종 예산들을 엄정히 감시해야 합니다. 아마 10년 후에는 이런 일들이 적극 논의되기 시작할 겁니다. 국가 경제가 버티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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