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의 사회
category 靑羊  2015/06/03 18:35

최근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작년의 에볼라 창궐로 인한 비이성과 광기가 떠오릅니다. ‘공포의 사회학’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연구 소재들이 매일매일 생중계되는 것이 대중사회의 특징인 것 같군요. 음식물에 대한 공포부터 동일본 대지진 이후 등장한 ‘백두산 대폭발설’, 또는 도시괴담의 변형판인 ‘사이코패스와 잔혹범죄’, 그리고 이제는 좀 구닥다리 소재이긴 합니다만 전염병에 대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공포가 있습니다. 물론 전염병은 무서우며, 그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대중의 반응과 담론을 성찰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입니다.

작년 한국의 대중은 에볼라 발병국에서 오는 국제 행사 참가자들의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아홉 달이 채 안 되어 우리가 그 입장이 되게 생겼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만약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거부한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님들’은 무척이나 불쾌해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며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여론이 드높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고소한 느낌마저 듭니다. 정신 못 차리고 무조건 1번 찍고, “그 분과 닮아서”, 혹은 “그 분의 딸이니까” 등의 이유로 타인의(자신의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미래와 행복을 투표라는 행위로 박탈하는 인간들은 당해도 싸지요.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드는 공범에 불과하므로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식이 아무리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 정규직 되어 아파트값 수직 상승으로 떼돈 벌면 뭐합니까? 사회가 망가지면 아무 소용 없는데도 다들 돈 벌어 보험 들면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한국 초등학생의 행복지수가 에티오피아 보다 못하고, 1년의 자살자 수가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에서 1년간 전사한 수를 능가한다는 얘기에는 별 반응도 없을 정도로  둔감, 아니 무감해졌습니다. 여기서, 소위 명문 대학이라는 곳에서 강의 중에 겪은 사례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번은 비정규직 문제가 하도 심해서 그걸 가지고 토론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한 학생님께서 “한국사회는 경쟁사회다, 그것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고 경쟁이 붙어야 물건 값도 싸지고 기업도 양질의 노동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다, 비정규직 비율을 오히려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습니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명문대가 되려면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서 나도 이 과목에서 A를 딱 한 명만 주겠으니 여러분들끼리 열심히 경쟁하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아차 싶었는지 구구절절 자신이 장학금을 타야 하는 이유를 들이대는 바람에 토론이 산으로 가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보편적 복지를 토론하는데, 한 학생이 “복지 예산이 적다는데, 돈 내고 지하철 탈 수 있으신 노인들은 돈 내고 타시는 게 맞다고 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동의합니다. 따라서 대학생들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각종 대학생 할인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아무 말을 못하더군요. 불과 3초 뒤에 자기 논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 못해서야 어찌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떠벌이는 ‘명문대생’이란 말입니까.

어떤 논리를 펼 때에는 자가당착이 되지 않을지 신중해야겠습니다. 에볼라 발병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나라 사람의 입국을 거부하기 보다는 해당 질병에 대한 연구와 방역 체계를 더 갖췄어야 했습니다. 그냥 입국하지 말라는 여론은 사스 유행에 국경 폐쇄로 맞선 북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여론은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이나 관료 조직을 문제 삼지만, 아파트값과 한달 20만 원 용돈에만 정신 팔려 투표를 했으니 그 값을 당당히 치르길 권합니다. 북한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그들의 특수한 상황이라도 있었죠, 한국사회는 당장의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기초 연구나 사회안전망에 투자 안 하고 부동산으로 떼돈 벌 생각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해왔으니 지금의 사태를 당연한 귀결, 인과응보가 아니면 달리 뭐라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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