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에 관하여
category 靑羊  2015/05/13 17:30

중년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들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어찌어찌 인연으로 강연을 부탁받아 하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 총 3시간에 10분씩 두 차례 휴식을 주는 일정을 제시하더군요. 저녁 7시부터 시작한 것이라 끝나면 대략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 될 듯하여 강연 시작 전에 청중에게 쉬는 시간 없이 대략 140분 정도 강의를 해도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강연 중이더라도 각자 알아서 강연장 바깥에서 자율적으로 쉬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에 다들 좋아하며 흔쾌히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강연을 시작했고, 간간히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에 강연을 하는 입장에서 즐거이 몰입할 수 있었지요. 거기까진 좋았습니다.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중간에 쉴 시간을 달라는 겁니다. 아까 합의한 대로 자율적으로 다녀오시라고 말을 했지만, 청중 대부분이 10분을 쉬어 가자고 하더군요. 강연의 주인이 청중이니 쉬게 해달라고 하면 쉬게 해줘야지 별 수 없죠.

문제는 왜 1시간 뒤에 뒤집을 약속을 하느냐는 겁니다. 화장실을 못 가게 한 것도 아니고, 자율적으로 다녀오는 대신 두 차례의 쉬는 시간 20분만큼 일찍 끝나서 집에 갈 수 있다고 청중 본인들이 환호를 했으면서 합의를 불과 1시간만에 뒤집자는 겁니다. 40대 이상 60대까지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분들이므로 자신의 1시간 뒤의 몸 상태를 모를 리 없습니다. 못 지킬 합의는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함에도 그냥 생각 없이 환호하고 생각 없이 좋다고 하는 겁니다. 그나마 뜻이 있어 배우겠다고 모인 사람들임에도 이런 일을 몇 차례 겪었지요.

그 사람들을 흉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이란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학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깊이 생각 없이 그저 당장의 느낌으로 이리저리 쏠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투표를 해놓고 욕을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1시간 앞도 못 내다보는 사람들이 4년 뒤를 생각해서 투표를 할 리는 만무합니다. 생각 없는(혹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그렇게 가르쳐서 신중하고 깊이있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사회문화적으로 습득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성급하고 경솔한 사람들이 점차 도태(?)될 수야 있겠지만요.

선택과 합의는 결국 그에 응답한 개개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에 대한 고민 없이 돈 벌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며 달려온 대가를 치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결국엔 그로 인한 부담을 다음 세대가 지게 될 것입니다. 제 자식만 성공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투자해 봤자 사회와 함께 가라앉게 됨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학자도, 정치인도, 그리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괴물을 마주해서 근본적인 인간관을 새로이 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이끄는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개인들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실천하며 스스로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밖엔 없습니다.

 

2015/05/13 17:30 2015/05/13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