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감싸는 문단 권력
category 靑羊  2015/06/18 19:33

먼저 기사 하나 링크합니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도 표절? 문인들 견해 엇갈려 (권영미 기자, 20150618, 뉴스1)

 

문학에 문외한이라도 수긍할 만한 표절 의혹을 받는 해당 소설가의 작가 윤리 뿐만 아니라 그녀를 감싸고 있는 일부 문인들과 거대 출판사의 작태가 너무나 어이없습니다. 아니, “만들어지는 데에 엄청난 공이 든, 세계에 알려진 우리 귀한 작가를 배려하자”니요? 결국 국익을 위해 황우석 사건을 덮자던 맹목적인 애국 네티즌들과 다를 바 없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맥을 잇는 단체의 사무총장이라는 사실이 표절보다도 더 참담한 심정입니다.

그의 말은 마치 우리 경제에 끼친 공로가 있으니 기소 유예하겠다는 것과 익숙한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지라, 이런 식의 논리는 우리에게도 좋은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한국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 만큼의 죄는 짓고 살아도 떳떳하게 살아가게 해줍니다. 그들이 잘나신 것은 우리가 못난 척을 해줬기 때문이고, 그들이 부자인 것은 노예를 낳아서 노동 착취 당해줬기 때문입니다. 봉의 입장에서 같은 제품을 외국보다 비싼 값에 소비 해줬고 세금도 내줬습니다. 선거 때는 열심히 투표도 해줬으며 군대도 가줬지요. 자, 이제 우리도 한국사회에 기여한 만큼 우리 맘대로 살아갑시다. 이 사회의 존립에 기여한 만큼의 죄는 지어도 되는 겁니다.

더 황당한 것은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출판 권력 창비의 같잖은 입장 표명입니다. 소설 전체에서 큰 의미도 없는 부분을 거론하며 표절 운운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표절은 큰 의미 있는 부분을 베꼈느냐로 결정된다는 그 논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돈 문제와 권력욕이 결합되어 있음을 눈치 채기란 창비 덕에 잘 배운(?) 우리들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창비 말대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부분조차 표절을 했다면, 그런 실력 없는 작가를 “엄청난 공을 들여” 세계에 내보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앞뒤 안 맞게 허둥대는 모습이 아몰랑 정권과 똑같군요.

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겁없이 베꼈는데, 과연 해당 작가 본인이 심사한 수많은 응모작들에서는 안 베꼈겠는가라는 인터넷의 어느 댓글이 사무칩니다. 기업들로부터 무슨무슨 공모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거저 주워먹는 짓거리들을 겪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문인보다 더 실감 나는 상상이 떠오를 법합니다. 사안은 다른 문인들에게까지 번져갈 것 같습니다. 벌써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프랑스 작품의 표절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으니, 아마 이번 사태는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김지하의 건이야 오래 전이라 치더라도, 최근의 경우에는 표절을 인정하는 순간 양심 문제에서 저작권 소송과 배상 문제로 질이 바뀌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가 터진 배경에는 등단 제도라는 독특한 진입 장벽을 내세워 안주하는 문단의 기득권, 권위에 약한 대중, 상품성 있는 작가에 비굴한 업계의 상도덕 등이 얽혀있을 것입니다. 대중은 잘 모를 것이라는 교만함은 책을 많이 읽으면 대단한 지식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표절 문제가 특정 작가 1인에서 끝날 문제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예상했듯이, 예전부터 파다하게 알려져 있던 일이 마침내 불거졌다거나 얼마나 갑질이 심했으면 폭로를 했겠냐는 반응들이 사정을 알 만한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득권과 비양심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딸은 어머니를 증오하지만, 어머니를 닮는다”는 격언처럼 권력을 닮아버린 우리 지식인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상황이어서 더욱, 그리고 솔직히 흥미진진합니다. 우리 사회는 서구 사회와 달리 계몽(enlightenment)의 시기를 못 거쳐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6ㆍ8세대나 미국의 히피 세대처럼 기성의 권위에 도전한 세대가 없습니다. 권력에 도전해서 민주주의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계몽 없이, 권위에 대한 도전도 없이 내용 없는 새로운 사회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들이 권력이 됐다는 사실에 애써 눈을 돌린 듯합니다. 우리에게 성찰을 말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입니다.

동구권이 몰락하고 한 세대가 지나자 서구권이 몰락했습니다. 이 땅에서도 독재정권이 종식된 지 한 세대가 지나면서 그 맞은 편에 섰던 ‘또 다른 꼰대’가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고 내일을 만들 새로운 생각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미시권력과 일상의 영역에서 생활의 정치를 해나가야 하는 시대이므로 그에 맞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기존의 모든 권위와 익숙한 생각들과는 단절하려는 투쟁, 즉 사고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백마 탄 초인이라 생각합니다.

 

2015/06/18 19:33 2015/06/18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