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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1호>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무엇을 선언했나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무엇을 선언했나

 

 

 

지난 11월 7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2010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매년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는 매 시기 핵심적 노동현안에 대한 투쟁방향과 결의를 밝히는 자리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10년 전국노동자대회는 첫째 전태일 열사 40주기라는 점, 둘째 G20 정상회의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 셋째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의 분신항거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이 거침없고 노동운동이 매우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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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민중의소리) 

 

2시간 넘는 집회, 짧은 행진

 

2010년 전국노동자대회는 4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시청 광장 안팎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되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참 많이 모였네!”라고 입을 모을 정도로 서로를 확인하고 투쟁을 함께 결의하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하지만 대회는 2시간이 넘는 집회 위주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식전-1부-2부-3부로 이어진 행사마다 주제영상, 노래공연, 노래극 등과 함께 많은 발언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사전 결의대회를 시청 광장에서 진행한 금속노조 대오는 광장에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덕에 집회 내용에 그나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장을 벗어나 주변 도로에 자리를 잡은 대오들은 집회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2시간 넘게 앉아있어야 하는 예년의 노동자대회 풍경이 재연됐다.

 

오후 5시 30분 경 행진이 시작됐다. 그러나 행진은 사방을 가로막은 경찰에 막혀 시청 광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충돌이 있었지만, 얼마 뒤 대회가 정리되리란 것을 대부분 참가자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예상 속에서 경남지부는 예년과 같이 조금 일찍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전야제가 사라진 당일치기 전국노동자대회는 끝났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길고 지루한 집회와 형식적인 행진보다는, 투쟁결의를 모으는 집회는 짧고 집중적으로 하고 경찰 장벽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행진과 가두투쟁 전술을 더욱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던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위원장 대회사, 전노대의 꽃?

 

이번 전국노동자대회 순서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의 대회사가 집회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집회에서 대회사는 가장 앞 순서에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달리 말하면 2시간 넘는 문화공연과 집회는 결국 김영훈 위원장의 대회사를 위한 것이었고, 민주노총은 김영훈 위원장의 대회사를 2010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가장 핵심적 위치에 놓으려고 했던 셈이다. 그러므로 대회사에서 김영훈 위원장이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따져보는 것은 향후 민주노총의 투쟁방향을 가늠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김영훈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이른바 ‘권력 재편기’인 2012년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강조했다. 물론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이 매우 중요한 해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당과 같은 정치단체가 아닌 대중조직 민주노총이 2010년 노동자대회에서 당면 투쟁이 아니라 2012년 권력 재편기만을 반복해서 외치는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현실의 대중투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정치권의 정치일정에 집중하여 사업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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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레디앙)

 

‘범국민운동본부’ 제안과 새로운 연대체 건설 논의

 

한편 김영훈 위원장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제정당 및 시민사회진영에게 가칭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노동관련법 전면 재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국민운동본부’ 제안은 민주노총이 주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상설 연대체 건설 논의와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정파가 주도해 만든 ‘한국진보연대’에 민주노총이 가입는 것은 전현직을 막론한 민주노총 집행부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진보연대 가입 문제는 민주노총 안에서 번번히 논란이 되면서도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한국진보연대 가입이 아니라, 새로운 상설 연대체를 건설하고 그것에 한국진보연대가 가입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상설 연대체 건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쟁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민주대연합’ 문제이다. 지난 6월 지자체 선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2012년까지 지속적으로 민주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민주대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정치방침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김영훈 위원장이 전국노동자대회 대회사에서 선언한 ‘범국민운동본부’ 건설 제안은 ‘2012년 정치일정―반MB 민주대연합―새로운 상설 연대체 건설’이라는 일련의 흐름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87년 당시의 범국민운동본부와의 비교 속에서 제안되는 2010년의 범국민운동본부에는 ‘민주대연합’ 노선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당정치에 종속, 대중투쟁의 실종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책임전가 공세와 노동법 개악 및 타 임오프제 실시와 관련된 2009~2010년 투쟁에서 민주노총은 한 없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러한 무기력을 민주노총 본연의 역할인 대중투쟁의 활성화가 아니라 정당 정치활동과 정치 일정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매우 우려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제 노동운동이 아예 실종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2012년의 정치일정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가 없는데 미래가 있을 수 없듯이 2010년, 2011년 투쟁이 없으면 2012년도 없다. 지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철폐를 위해 자본과의 치열한 전면투쟁을 하고 있다. 재능교육, KEC 등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힘겨운 장기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민주노총이 서 있어야 할 곳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나 정당의 주변이 아니라 바로 이 동지들 곁이어야 한다.★

 

(2010년 11월 17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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