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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활동가들에게..

 

 

저마다 쓰라린 상처를 부둥켜안고 오늘도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는 활동가들!

세상이 변해도,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변한 세상에 익숙해져도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슬픔과 분노를 우리는 꼭꼭 간직하고 있어야하네.

그것은 우리의 전부여서는 안되지만 분명 우리의 생명일 터이네

서두르지 말기 바라네.

서둘러 세계나 사회를 설명하려 하지 말기 바라네.

자기에게 세계나 사회를 설명할 능력이 없음을 개탄하지 말기

바라네.

법률가나 교수의 지식은 우리에게 분명 부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결코 기죽지 말게.

그런 것들은 우리의 삶, 우리의 희망에 비하면 결국은 왜소한 것들이네.

슬픔과 분노로 말미암아 운동가는 이 악덕과 폭력에 가득 찬 오늘을 래디컬하게 거부하고 내일을 고대하면서 살수 있는 사람들이라네.

 

우리는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고  현실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 기쁨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네.

 

지식을 부러워하지 말고 단심[丹心]을 간직해주게.

그리고 그 단심에 긍지를 느껴주게! 운동가에게는 운동가만의

본령이 있고 사명이 있고 능력이 있네.

조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교수의 목소리가 고작 기십 명이

참석하는 토론회에서만 답답하게 맴돌고 있을 때,

변호사의 법률지식과 진실의 주장이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보수적인 판사에 의하여 묵살 당할 때, 그 현실을 뚫을 사명과 힘을 지닌 사람은 바로 우리와 같은 운동가들이라네.

인간의 존엄이 일상적으로 짓밟히는 이 세계에서,

무엇이든 옳다고 주장되려면 그 옳음을 육체로써 고수하고

육체로써 외치는 물리적 근거가 있어야하는 법이고 그런 물리적

근거를 갖지 않는 주장은 대체로 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네.

 

두려워 말게. 몸을 던져주게.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항상 옳은 것이

 힘있게 주장되기 위한 물리적 근거로서 존재해 주게.

그런 씩씩한 활동가로서 남아주게. 그러나 단심은 그저 선량한 것과는 다름을 명심해야 하네.

선량함은 의심의 여지 없이 미덕이지만 운동가가 가져야 할

충분조건은 아니네.

선량함은 반드시 자기희생을 반드시 요구하지 않지만

단심은 이미 그 속에 자기희생을,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네.

또한 운동가는 기관차 처럼 맥진하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올려야

하며 이런 활력이야말로 다름이 아닌 단심에서 나오는 것이라네.

 

살아가 주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고,

그러나 운동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 주게. 자기 운동의 철학적 의미를 천착하면서,

그러나 대중과 함께.

살아가 주게. 때로는 아득하게 깊숙이, 때로는 한없이 넓게 운동의 의미와 기술을 추구하면서.

 

저마다 쓰라린 상처를 부둥켜 안고오늘도‘인간의 권리’를 생각하는 젊은 활동가들!

험한 밥을 먹고 닳아빠지도록 싸구려 옷 빨아 입어야 하는 너희.

휴가도 없고 퇴근 시간도 없는 너희.

용기를 가지고 버티어 주게.

너희 나이 40이 넘어,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충만한 능력있는 활동가가 될 때까지.

그런 너희를 보는 것이 나의 꿈이란다.

너희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 바로 나의 큰 꿈이란다.

 

 

1995년 3월15일 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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