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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from the movie 2012/03/15 02:32

또 다시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날들

혼자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왔다. 그리고 선택한 영화, 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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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아니, 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가혹하다. 

 

 

사실 영화에 기대하는 건 어느 정도 극화된 예측불허의 서스펜스 같은...것이었는데

이 영화가 강하게 던져 준 것은 '메세지'였다.

신기했다. 며칠 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우연히 보면서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른 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사연을 다뤘는데....

나도 모르게 '사연이 있겠지'와 '악마'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약간의 스포일러이긴 하나 화차도 거의 동일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두 번의 눈물이 나왔다.

아이가 죽고 나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김민희, 그녀를 연상하던 이선균이 조성하에게  김민희는 살인자가 아니라며 멱살을 잡던 장면, 그리고 엔딩....

 

 

이해와 공감은 다른 언어이다. 

그리고 단어에 내포된 의미의 차이를 알려면, 다른 세계를 경험해야만 한다. 

안타까운 개인사를 갖고 있는 자가 저지른 끔찍한 살인 사건, 이라 하면 보통은 '이해'를 하려 하지 '공감'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영화의 주인공은 '이해'가 아니라 '공감'을 요구했다. 

 

나이가 나와 같다는 것도, 극중 이름이 나의 본명과 일치한다는 것도

소위 사회가 인정하는 격랑의 시대를 살지는 않았더라도,

돈, 빚, 사채, 이로 인한 노예 생활......그렇게 비참하게 살 확률이 높았다는 거

작년 떠나간 동지도....분명 내 곁에 있었다는 거, 내가 잊고 있던 주변, 운 좋게도 그럭저럭 생존하고 있는 내 삶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어서.  잔상이 오래 남았다. 

 

소설과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들은 결국 삶 속에서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

다시 돌아와 컴터를 켠다. 

 

........

 

정진후 전교조 통진당 트리플로 가관이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지가 저열한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진후, 니가 감히 '피해자 중심주의'를 들먹이며

피해자를 우롱하고 냅다 튀어버린 사건은 도저히 용서라는 걸 할 수가 없구나.

이명박이 망쳐놓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너 같은 게 국회의원도 나올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정권 탄압 빌미로 성폭력 가해 두둔했던 과거 싸그리 잊고, 가해자들은 교단에도 서겠지? 참교육, 99%를 위한 교육대혁명? 지랄 떨면서....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나 있니 너네가? 너희들은 공감은커녕 이해도 못 한다. 헌데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해? 말이 돼?

 

참 편하겠다. 사람 하나 죽여놓고, 세상 참 막 산다,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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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02:32 2012/03/1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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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from the movie 2011/10/03 02:30

막 사춘기를 벗어난 열일곱

그 때 만난 톰 티그베어의 롤라런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퍼런 빨간 머리에 테크노 비트,

이국적이고 낯선 베를린 풍경에 대한 남모를 동경,

롤라런은 영화보다, 감각이었다. 그 세대를 이끄는.

이후로 영화들을 쭉 보지 못해 몰랐는데

독일인이지만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꽤 많이 했단다.

 

그 감독이 만든 영화라 하여 나름 기대를 품고 봤다. 

아....말로 설명할 수 없는...나를 직면할 때 느끼는 감정과도 같은 이 불편함,

내가 요새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것 같다.

 

 

- 애정에 기반한 둘 사이의 관계가 평생을 지배할 수는 없다.

한나와 시몬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왜 서로 헤어지지 못했던 걸까. 영화는 거꾸로 질문을 던진다. 헤어져야 하는 것은 왜일까. 서로에 대한 예의 때문인가. 질투라는 감정은 무엇에 기반해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통념은 무엇을 기반으로 지속되어 온 것일까.

'사랑은 결혼의 물적 토대가 되기에 너무 허약한 감정이다. 게다가 사랑은 일부일처제가 원하는 것처럼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임옥희,2010)

그럼에도 한나와 시몬은 아담을 두고서, 결혼까지도 결심한다. 떨어질 수 없는 어떤 고리가 이 둘 사이에 존재했을까. '권태와 피로'가 쌓인 만큼 '사랑과 경이'역시 내재된, 둘 사이에 쌓인 오랜 시간 때문이었나. 아마도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 한나와 시몬, 그리고 아담 사이의 관계, 상상이 가능한 쓰리썸.

섹스는 인간 생산을 위한 노동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이루기 위한 언어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생식행위는 기술로 대체되고 있지 않은가. (아담이 줄기세포에 능한 연구자로 나오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설정이다.) 한나가 임신을 한다는 것과 이 임신으로 세 사람 사이의 관계가 '탄로'나는 설정 자체는, 로맨스 스토리가 갖는 전형적인 결말이라는 점에서 좀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어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 나를 억압하는 기재가 있어야 내가 설명될 수 있다는 그 견딜 수 없는 모순,

사랑의 과정은 즐거웠어도 의도되지 않은 삼각관계가 드러나자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세 사람. '임신'을 해서, '게이'이기 때문에 '낙인'과 '책임'으로 얽히는 사슬 관계가 되지만, 사회에서 개념화한 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그리려는 노력들을 시작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억압인 걸 알면서도 히잡을 쓸 수밖에 없는 아랍 여성들처럼, 여성에게만 섹스의 흔적을 남기는 임신 때문에 고뇌하는 주인공 한나처럼, 나를 억압하는 기재가 있어야 내가 설명될 수 있다는 그 모순, 또 이걸 깨기 위해 운동-그게 폴리틱일 수도, 섹스일 수도 있다-하는 사람들의 존재....사회가 정한 금기에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금기와 쾌락의 메커니즘은 항상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도마 위로 올린다. 감독은 이 현실을 날카롭게 조롱한다.

 

 

- 히잡과 남행열차 사이의 간극

절정은 남행열차다.(속으로 제발 내가 아는 그 노래가 아니기를 바랐으나!),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갔거나, 혹은 그 사회 내에서 성매매 현장으로 밀려나거나 했을 한국 여성들의 노래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데.....오히려 시몬이 술을 마시던 바에서 남행열차를 부르던 한국여성들의 처지나 유럽 사회 내에서 히잡을 착용할 수 없는 아랍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이 세 사람의 관계가 그다지 특별하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문화적 지식과 감수성이 뛰어난, 빈곤하지 않은 사십대들의 삶, 사회의 최하위로 밀려나는 젊은 이주 여성들의 삶, 그 사이의 계급적 지위는 어쩔 것이냐. 난 솔직히 이게 더 중요하게 들어왔다. 사회적/문화적/계급적 배경들의 차이와 이 속에 놓인 섹슈얼리티는 분명 병렬로 놓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히잡과 남행열차가 상징하는 소외와 배제, 폭력, 순응의 카테고리가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톱니바퀴가 되고 있다. 한나와 시몬 아담, 이 세 사람이 볼트 하나를 뺀다 하더라도, 견고하게 물리어가는 그 톱니바퀴를 멈출 수 있을까.

 

보면서 그냥 툭툭 소리내어 말하고 싶었다. 답답하고 허탈하거나, 또 정말 공감이 될 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억누르려 할 때에는, 나직하게 데이빗 보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space oddity,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이란 존재들...

영화는 말로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요소들을 다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볍다-사실 내용도 별 거 없다-

 

치밀한 심리묘사나 은유보다 이미지라는 직설화법에 승부를 거는,

톰 티그베어만 특유의 매력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꿈틀댄다.

 

밀라노의 기적을 봐야겠다.

 

 

‘쓰리’ 톰 티크베어 감독, “파격? 인간관계의 본질”

 

<롤라 런>1999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7로 우리를 매혹시킨 독일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다시 한 번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다. <쓰리>는 톰 티크베어 감독의 최고작이다. 

차기작을 찍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짬을 내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쓰리>는 새로운 삼각관계를 그린다. 오래된 연인 한나(소피 로이스)와 시몬(세바스티안 쉬퍼)이 서로에게 권태를 느낄 즈음 아담(데비드 스트리에소브)이 나타난다. 시몬과 한나 모두 아담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한나와 시몬, 시몬과 아담, 아담과 한나 모두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한나와 시몬의 관계가 지루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20년을 함께하다 보니 점점 성적 긴장이 없어지고 습관적인 관계가 되어간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연인들에 비하자면 한나와 시몬의 관계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정성을 쏟는다. 그런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3자인 아담이 들어왔을 때 그 관계가 더 흥미로워지는 거다. 중요한 건, 아담과 사랑에 빠졌는데도 한나와 시몬이 원래의 관계를 지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담은 뭘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혼자 여러 취미 활동을 즐긴다. 한나와 시몬 모두 그런 아담에게 급격히 빠져든다. 아담은 꼭 ‘자유’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같다. 

아담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 아주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감정을 키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태도도 일상의 모순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한나, 시몬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아담은 더 이상 바이러스처럼 살 수 없게 된다. 그러자 통제력을 잃고 약해진다. 관계에 얽매이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특한 삼각관계는 어떻게 떠올린 건가? 

처음에는 현대 서구 문명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퍼즐 조각처럼 이리저리 뒤섞어보자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런 관계에 익숙해진 건, 문화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들이 그걸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특이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평범한, 나와 같은 세대의 독일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그들이 변화를 갈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삼각관계가 압도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 특히 한나, 시몬, 아담의 관계를 상징하는 무용극을 대담하게 끼워 넣고, 자유롭게 화면을 분할하는 솜씨가 놀라웠다. 어디서 영감을 얻은 건가? 

인간은 우리를 제한하는 관습을 떨쳐내려 한다.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이런 억압에 더 시달린다. 다른 예술보다 더 산업적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영감은 인물의 테두리 안에서 흘러나온다. 어떤 전통 안에서 태어나지만 그걸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 속에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우리는 모두 판에 박힌 괴물이 될 것이다. 



-한나가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한나의 머릿속에 들어가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영화에서 인물의 뚜렷한 심리를 그리는 건 꽤나 지루한 일이다. 그보다 나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표현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현대인은 대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일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많지만,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외로운 일이다. 현대 사회의 속성이 그러한데, 그 외로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느낀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바로 그 ‘뜻밖의 일’이 한나와 시몬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영화 속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밀라노의 기적>(1951)을 다양하게 인용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몇몇 장면은 새롭게 재연했다. 시몬의 어머니가 날개를 달고 나타나는 장면이나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석유를 길어 올리는 장면 등등. 

<밀라노의 기적>은 위대한 작품이다. 시몬이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타내기 위해 <밀라노의 기적>을 인용했다. 어머니가 죽으면 사람들은 다시 어린애로 돌아가서 어머니가 천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시몬의 세대가 성장한 방식과 처리하기 힘들어 하는 일을 이미지와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연상되는 기이하고 주관적인 이미지를 아무런 설명 없이 영화 속에 끼워 넣는 게 즐겁다. 

-‘Pale 3’라는 밴드를 결성한 적도 있고, 종종 영화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들었다. 이야기, 이미지, 음악 중 가장 가깝게 느끼는 건 무엇인가? 

음악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음악이 내 마음을 이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이미지 뒤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다. 

-<롤라 런>(1999)과 <쓰리> 모두 예측불허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 커다란 결과로 번지는 과정을 그린다. 

내가 삶을 체험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전부 우연히 일어나는데 이상하게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이상하지! 

-영화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설명회에서 벌어지는 토론, 독일에 사는 회교도 여자들에 대한 대화, 존재와 개념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계속 ‘역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늘 역설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상황, 특히 어렵고 비극적인 상황을 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뉴스를 통해 지진 같은 극적인 소식을 접하지만, 일상에서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개인적인 위기를 겪으며 살아간다. 그 안에는 어떤 균형도 없다. 균형을 맞출 수도 없다. 하지만 모두들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나, 시몬, 아담은 벌거벗은 채 나란히 누워 서로를 안는다. 카메라가 세 사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결국 세 사람이 샬레 안에 들어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앞으로 셋의 관계가 시험에 들었다는 뜻인가? 

앞으로 세 사람에게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이거 뭐야? 우리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지.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는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영화의 의미에 대해서 감독에게 너무 많이 물어보지 마라! 

-시몬과 한나의 관계가 정체를 겪다가 아담을 만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통일 후 독일 사회의 통합을 염원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 

물론! 

-운명을 믿나? 

전혀. 

-현재 워쇼스키 형제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SF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촬영하고 있다(워쇼스키 형제와 톰 티크베어 감독이 공동 연출한다). 톰 행크스, 할리 베리, 수전 서랜든과 배두나가 출연한다. 어떤 영화인가? 

인물도 많고, 시대도 다양하고, 모든 게 많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내 평생 가장 무모한 도전이다. 틀림없이 멋진 영화가 될 거다. 

-독일과 할리우드를 왔다 갔다 하며 영화를 찍는다. 두 곳에서 영화를 찍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궁극적으로는 같다. 불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그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게 감독이 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한데 뭉쳐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이 모든 건 아주 복잡한 사회적 실험이다. 독일에서나 할리우드에서나 그런 과정이 계속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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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02:30 2011/10/0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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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헤어드레서

from the movie 2011/08/17 18:34

** 스포일러있음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줄곧 코폴라나 스콜세지 같은 남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남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물론 이들의 영화 속에서는 '여성'인물의 존재감이 없다.

있다하면 거의가 섹스 어필한 남성 주인공의 상대역이나,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하기 일쑤였다.

 

조금 더 머리가 커서는, 제인 캠피온이나 퍼시 애들론의 영화를 보며 위안삼은 적이 많았다.

특히 캠피온의 '내 책상위의 천사'는 중고등학교 내내 나를 사로잡던 영화였다.

줄곧 타인에 의해 정체성의 규정되는 여성들의 삶, 그 속에서 오는 자아 분열,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나를 찾아나가는 유명 작가의 생애.

디 아워스를 보면서는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행복감을 주었다.

 

헤어드레서는 '내 책상위의 천사'와 거의 유사한 플롯이어서 이야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감독 특유의 유머로 이를 극복하는 장점도 있다.

캠피온의 영화와 다른 게 있다면, 주인공에게 처해진 계급적 차이 정도?

 

독특한 스타일에 뚱뚱한데다, 가난한 싱글맘인 카티는 자기만의 미용실을 갖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우정과 사랑을 쌓고 사기와 협박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내 책상 위의 천사에서 등장한 자넷 프레임은 지독한 소외 속에서도 결국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영광까지 얻지만, 헤어드레서의 카티는 원하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고도 다시 희망을 찾는....어찌 보면 무척이나 억척스러운 여자로 등장한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깬다.

 

한국계 출신 배우가 연기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티엔의 눈빛이 좀 예사롭지 않았다.

보는 내내 '이 사람도 카티를 사기치고 도망가는 거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관객들은 카티와  티엔의 섹스 장면에서 소리를 질렀는데

괴성인지 환호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의 결을 느꼈다.

 

남성 이주노동자가 허락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에서 약간의 폭력성이 느껴졌던 건...나 뿐이었을까.

좋아하는 감정이 들면 막 원칙적으로 합의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섹스할 수도 있는데....

만일 그 자가 백인이었다면 이 경계의 애매함을 찜찜하게 안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카티가 뚱뚱이와 홀쭉이가 될 것이라 말하며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까맣고 홀쭉한 남성과 하얗고 뚱뚱한 여성이 벌이는 섹스는

젠더, 인종, 외모 등 모든 차별의 변수들이 애초부터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그것의 경계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젠더적 함의, 거기에 내가 안고 있던 인종적 편견이 덧 씌워져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참 아름다워보였다.

 

'그냥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사랑한다는 데 웬 말이 많아, 부인이 있으면 어떻고 잠깐의 사랑을 할 수도 있지 뭘 그래'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카티의 삶은 항상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해왔다.

 

컴플렉스 가득한 여성이 그걸 걷어내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산다는 흔한 내러티브

하지만 도리스 되리는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친숙함'을 놀랍도록 매력적으로 그린다.

 

휴가 기간 내내 아빠를 돌보고 나서

짬내 찾은 극장, 겨우 영화 한 편 보고 다시 돌아왔다.

거의 한 달 가까이를 못 나가봤다.

 

영도는 멀어서라도 못 간다지만

서울 한복판 찬 길바닥에서 무척 외롭고 고된 농성을 했다던 피해자 동지의 모습이 밟힌다.


그녀와, 함께 봤으면 좋았을텐데....

 

Dorris Dorrie, 헤어드레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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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7 18:34 2011/08/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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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다.

내가 무척이나 기다리던 도리스 되리의 신작, 헤어드레서!

올 해 여성영화제 개봉작이기도 했던...바로 어제 영화관서 개봉을 했단다.ㅠ

상영하는 첫 날 바로 가서 봤을 텐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 잉잉~ㅠ

 

다리가 나아서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아니, 그 이전에라도 계단만 원활하게 오르내릴 수 있으면,

 

꼭! 보러 가리라

 

씨네큐브에서 부디 장기 상영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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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5 19:30 2011/07/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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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소위 섹슈얼리티의 정상성이라는 걸, 신화처럼 믿기 시작한 것부터도... 

 

존재 자체의 심화된 고민이라기보다는.

다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몸에 배인 사람들의 삶

 

혼돈 속에서도 기분 나쁘게 오열하지 않는,

그래서 맘에 들었던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멀리 여행이나 가고 싶다. 매번 마음만 먹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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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3:21 2011/01/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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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movie 2010/06/13 14:45

 

개인적으로 '밀양'부터

이창동 영화와 코드가 맞는 듯.

 

시,

충격으로 시작해 전율로 끝나는 영화,

문학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가.

그의 영화적 서사는 다른 한국 영화들에 비해 항상 돋보였다.

 

"왜 성폭행 가해자의 할머니가 시로써 자기 주변을 성찰해야 하나?"

혹은 "왜 가해자가 아닌, 할머니야? 왜 또!"

뭐 이런 반응들은 예상되는 바이나

그런 기대치를 충족했다면 아마 훨씬 다른 느낌의 영화가 되었겠지.

 

사회적 범죄, 그 속에서 몸서리 쳐지도록 고통스러운 한 사람, 

그렇게 '사람'으로 엮인 피해와 가해의 관계들 속에 위치한 '여성'이자 '노인'인  주인공.

손자에 대한 뿌리 깊은 친밀함, 피해자의 절망과 절규, 그 속의 혼돈

나조차 닿지 못하는 혹은 끊지 못하는 그것들에

60대 할머니는 가까이 간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기꺼이 그러한 것들을 겪는다.

 

영화는 아들 때문에 눈이 뒤집히는 '마더'와는 다르다,

'시'속의 할머니는 혈연을 뛰어넘어 피해자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시는 문학은 예술은 나아가 사회의 역할은

바로 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시를 배운 인간들도, 쓰는 인간들도 이리 많은데

왜 사회가 항상 이 모양이누.

 

제대로 배우거나 쓰는 사람들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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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14:45 2010/06/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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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리터리

from the movie 2009/09/12 01:43

나는 어떻게 고통을 피해갈 수 있는지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찌되었든 삶에서의 고통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극복되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고통을 수용하는 방식도 가지가지인데다가,

사람마다 자기가 정의하는 '극단'이 다른데

왜 매번 '극단'까지 치닫지는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더 아파해야 위로를 받을 수 있듯이

더 차가워져야 따뜻함이 배로 느껴지듯이

사랑과 고통도 동전의 양면이고

행복과 자멸도 동전의 양면이다.

 

가학과 피학이라는 걸 '명제화'하는 것은 싫다.

헌데 묘하게 이해되는 게 있다.

 

세크리터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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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1:43 2009/09/1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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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시간 동안,

고인과 자신을 되돌아 보는 60대 남성 노인의 여행,

좀 전처럼 없던 소재의 영화다. 그래서 기대했는데, 기대 만큼 충족시켜준 영화였다.

마침 내가 좋아했던 배우, 장진영의 죽음까지 겹쳐서인지...눈물만 계속 흐르더라.

근데 서구 핵가족들의 모습이 어찌 그리 이 곳과도 닮아있누...

자식들 키워놔봐야 다 소용없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는...ㅎㅎ

 

깊이 자신에게 몰두하며 내 안의 다른 내가 추는 춤,

흰 얼굴의 부토 댄서가 마치 전작 파니 핑크에서 보여줬던 무도의 이미지와 흡사했던 것처럼...도리스 되리의 영화에는 치유의 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아울러 서구 백인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이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일본에 가서 안개가 걷힌 후지산의 풍경을 보고 싶게 할 정도로...영화 속 일본 땅은 어쩜 그리 멋졌는지...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무엇이 되어야 할 지,

그것이 뜨거웠던 사랑 뒤로 오는 어떤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내 스스로를 추스르고 정돈해야 할 지...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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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4 00:00 2009/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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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from the movie 2008/10/04 01:25

 

혼자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 모던보이.

 

티켓 판매소를 앞두고 서성이는데 왠지 허전한 것이다.

오늘도 늦게 들어가면 며칠 째 1-2시 오바인데,

매일 같이 밤 늦게 들어가는 나를 두고도

단 한 마디 뭐라 하지 않는 남편이 측은했던 것,

 

그를 부르고,

성남동 데이트도 함께 했는데

함께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의 화신 모던보이는 그야말로,

자신의 사랑에 '목숨'을 건다.

 

유치하고 가볍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외모와 이미지에서 풍기는 여성에게는 뻑이 가고,

사람에 대한 애정은 지극히 높아 자신의 연인은 지키고자 하는

'한심한' 모던보이

 

위대한 정치나 사상에 목숨을 걸기 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모던보이가 얼마나 될런가!

 

그래서 그 연인이 죽음을 불사하고 지키고 싶어했던 것을,

자기 스스로 지키려 하는 모던 보이의 안쓰러운 노력이

진부했지만 가슴 아프기도 했다.

 

헌데 뭐랄까....일제 시대상을 그린 영화치고는

말투, 분위기 등이 너무 맞지 않았다. 진짜 '모던'했던 것이다.

나처럼 고리타분한 관객들에겐

익숙지 않은 불편함도 있는 영화,

 

모던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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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01:25 2008/10/0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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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영화

from the movie 2008/09/09 22:38

이비에스의 탁월한 선택,

 

투야의 결혼,

원스

헌데, 나는 못 본다는 거....!

 

제사 지내고 이것저것 하기 땜시..

결혼 후 첫 추석,

명절이 짧아 다행이라는 후문!ㅋㅋ

 

내년엔 울 집으로 가야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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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2:38 2008/09/0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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