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집회 문화에 대한 소감 따위를 나부릴 상황이 못 된다.

 

매일 같이 이 집회에 참여하며 헌신하는 활동가들에 비해 현재 나의 상황은 그렇지 않기에, 소감이나 소회 따위를 나부리며 평가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헌데 자꾸만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그네들은 비판의 도구로써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있었고, 남성들이 벌이던 전투 중심의 사고로 이 운동을 추동해내려고 한다. 예견된 일이라 생각하여 씁쓸했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자체가 쓸모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몇 마디 사족만 쓰겠다.

 

‘혁명당원’이 지적했듯이 아마 2008년 이후부터일 것이다.

소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조직된 운동권이나 노동자들만이 아닌

성별, 계급, 정치성향 등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 나와

자신들의 정치 공간으로 촛불 시위의 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

대중 운동은 기존의 노동자 운동이 보여주지 못한 흡입력과 활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경찰에 의해 막혔을 때 이 벽을 넘을지 말지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모습조차도 신선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당연히 넘어야지‘ 혹은 ’다른 활로를 찾아보자'며 토론의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기도 하나, 그만큼 그동안의 집회가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터다. 내 생각에 그 이전에도, 즉 지도부의 지령에 의해 움직여 오던 싸움들 역시도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일사분란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보라. 저 파편화된 노동자 '계급'의 모습을,

내가 해고당한 것도 아닌데 크레인을 오른 김진숙 동지의 고된 싸움, 쫄쫄 굶어가며 그를 지키는 몇 안 되는 동료들, 전국 각지에서 김진숙을 지키겠다고 버스를 대절해가며 모여드는 상황...

 

만일 그들의 방법 대로 한다면 공장 내에서 파업하는 게 제일 확실한 방법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나? 그렇게 할 수나 있나. 채길용 같은 기생충들이 판을 치는 곳에서? 자본가들이 주는 떡고물 얻어먹고 내 목숨만 부지하기를 바라는 정규직 노예들이? 못 한다.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이 정신 좀 차리고 쌍차 같은 극렬한 상황에 다다르면 모를까.

 

대공장 말고....아주 어렵고 힘든 현장의 임노동자들이 공장 내에서 힘을 갖기 위한 운동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조직되지 않거나 집회조차 처음인 사람들이 함께 하는 대중 운동 역시 중요하다. 그들의 논리는 전자의 전투적 투쟁 방식을 후자인 대중 운동에도 도입해야 한다(필자는 현행과 같은 ‘여성적’ 대중 운동이 더 편하다 했으나 그건 본인 개인의 바람일 뿐이고)는 것이다.

 

칼 들고 죽이려는 자들 앞에 어떻게 무력하게 평화 시위 하시오, 라 할 수 있나. 유성기업 노동자들, 당연히 몸 부딪히며 싸울 수밖에 없다. 아마도 현재의 희망버스나 다른 촛불 집회 등 일련의 거리 시위들에서 탄압의 양상이 심해지면 그만큼 투쟁도 격해질 것이다. 즉자적인 분노에 의한 돌출적인 싸움도 있을 수 있고, 기존 관행처럼 사수대가 꾸려져 앞은 대치하고 뒤는 우왕좌왕할지도 모르겠고....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활로를 찾기 위한 토론도 벌일 수 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평가는 나중의 문제다. (만일 이 운동이, 뒤에서 어디까지 적당히 하겠다며 남모래 쇼부치는 세력이 있다면 제발이지 그대들이 나서서 폭로 좀 해보라. 뭔가 더 필요한데...라며 어정쩡한 입장 취하지 말고,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바보인가?)

 

노동자혁명당의 어떤 당원인지 회원인지가 쓰는 후기만 봐서는 노동자 혁명당원 부류?의 사람들이 갖는 부르조아 페미니즘 혹은 국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기의 의도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담배를 허용하지 않고 평화적이며 동시에 무질서한 것이라는 낙인, 그냥 이것이다.

 

아...진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루 종일 걷고 물대포 맞고 피곤함에도 깨어 있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열정들은 안 보이는가? 나는 평소 집회 대오에서 벌러덩 드러눕거나 술판 벌이는 ‘남성’들을 훨씬 더 많이 봐왔다. 굳이 설명을 해야 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질서정연함은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무조건 꽃병 들고 깨부숴야 하는 전투적 투쟁을 조직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이런 선동이 뻥파업이라 조롱받는 민주노총의 선언과 동일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헌데도 그냥 그렇게 보인다)

 

이런 식의 규정 짓기가 싫었다. 그럼에도 한 마디 해야겠다. 노동자 혁명당의 뻘소리는 단순한 뻘소리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흡연자 중심의 남성스러운 집회를 추구하는 남성노동자‘들을 계급적 기반으로 하여,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려는 것이다. 이건 밑도 끝도 없는 그냥 '노동자 주의'다.

 

'노동자주의', 자기들이 앞서지 못하고 주도권을 빼앗기면 뒤에서 불평 불만하는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 왜 계급적 전투로 나아가지 않는가 하고 비판하며 뒤틀리고 꼬우면 담배 하나 꼬나 무는 무력한 활동가들을 대변하는 '노동자주의'.

 

소위 전투적 현장파들이 갖고 있는 정치란, 그들의 지도력이란 이것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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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9 13:51 2011/08/29 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