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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8
    [Joshua Lee]유교 다시보기
    Joshua Lee

[Joshua Lee]유교 다시보기

  • 등록일
    2013/01/18 22:18
  • 수정일
    2013/02/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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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수구적인 사상,  충(忠) 서(恕), 아랫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사상, 삼강오륜, 장유유서, 부자유친, 부부유별, 예절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상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유교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의 계몽주의 사상, 오늘날의 사회주의 사상만큼 당시 시대에서 급진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렇다면 제목에서 말했던 것처럼 유교를 다시 보도록 하자.

 공자의 사상은 과연 아랫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사상일까? 우리가 흔히 충성(忠成), 충실(忠實) 등을 말할 때 충(忠)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등으로 왜곡되어 해석한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충(忠)의 개념으로 "자기가 서고자 한다면 다른 이를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자 한다면 다른 이를 도달하게하라 (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극적 사랑인 서(恕)에서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고 설명했다.  충(忠)과 서(恕)에서 강조한 사랑에서  '자기'을 지배층으로 본다면 체 게바라의 명언 중  "진정한 지도자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따라잡도록 고무해 주는 자이다."를 연상시킨다. 즉, 아랫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지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아랫사람에게 베풀며 먼저 도달하게하며 자신이 하기 싫었던 일들을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이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우리 시대에 이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실천못하며 자신이 겪었던 비극들을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공자는 극기복례(克己覆禮)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겨 사회 질서를 지켜야한다는 면에서 보수적인 면모를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에서 너무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시대상을 배경으로 되새겨보면, 당시 사회는 하극상(下剋上)의 상황, 즉 대부가 제후를, 제후가 제왕을 이기려하고 그 지위를 넘보는 상황, 사실상 주나라 봉건 질서가 무너져가는 현실이었다. ‘자기를 극복해 예로 돌아간다’고 할 때 극복해야 할 것은 하극상의 주체 또는 그러한 욕망이다. 돌아가야 할 예는 주나라의 전통적인 질서와 문화다. 극기복례는 결국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주나라 정치·사회·문화 질서가 흔들리면서 많은 이들이 본래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욕망을 추구하고 있다. 주나라 정치·사회·문화 질서를 회복시켜야 한다.’ 극기복례에 관한 한 공자는 다분히 보수적인 모습을 지닌다. 공자의 정명(正名), 즉 이름의 뜻과 실제가 같도록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것은 이미 정해진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출처-네이버캐스트: 공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데에서 보인 이상주의적 어구는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했을 때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다면?' 이라는 의문을 품게한다.  이 이상주의적 어구에 대해 현실주의자인 맹자는 현실주의적인 해결방안을 준다.  맹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사상에서 왕이 왕답지 못하다면 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齊宣王問曰、 湯放桀武王伐紂有諸 孟子對曰、於傳有之 曰、臣弑其君可乎 曰、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弑君也.(제선왕문왈, 탕방걸무왕벌주유제 맹자대왈, 어전유지 왈, 신시기군가호왈, 적인자위지적적의자위지잔잔적지인위지일부문주의미문시군야.)

 제선왕이 물어 말하기를 탕이 걸을 제거하고 무왕은 주를 정벌하였다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해 말하기를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있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됩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인을 해치는 사람을 적이라 이르고 의를 해치는 사람을 잔이라 이르며 잔적을하는 사람을 한 지아비라 이르나니 한 지아비인 주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맹자》 中에서)

 

 맹자는 제선왕이 신하가 왕을 죽여서는 되는 일인가라는 물음에 인을 해치는 자는 도적이라 하며 의를 해치는 자는 잔인한 자라고 말하며 도적질,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을 '한 지아비'라고 말하며 무왕은 '한 지아비'인 주를 죽였지 임금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인의를 해친 자는 더 이상 임금이 아니니 처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또한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고 말하였다. 백성들에게 일정한 생업이 없다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 약민즉무항심 구무항심 방벽사치 무불위기 급함어죄연후종이형지 시망민야.)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무항산무항심 [無恒産無恒心 ] | 네이버 백과사전 

 

 맹자의 사회에 대한 철학, 즉 백성이 일정한 생업이 있다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방탕한 생활을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복지개념에도 비슷한 개념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이나 앞선 경제사상이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토지분배사상을 보자.

 

 등나라 문공이 신하인 필전(畢戰)을 시켜 맹자에게 정전법(井田法)에 대해 물었다. "[…] 사방 각 일 리(里)의 토지가 한 단위의 정(井)이고 각 정의 넓이는 구백 무인데, 정(井)의 중앙을 공전(公田)으로 합니다. 여덟 가구가 각각 그 주위에 있는 백 무의 땅을 사전(私田)으로 합니다. 여덟 가구가 공동으로 공전을 경작합니다. 공전의 농사일을 끝낸 후에 사전의 농사일을 하는데, 이로써 야인(野人)이 군자(君子)와 구분됩니다. 이것이 그 대략적인 내용입니다."(등문공상3)

 

 한 리의 토지를 아홉 등분하여 중앙의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하고 나머지 여덟 토지는 각각 나누어 경작하는 것이다. 이 토지분배사상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며 공동으로 경작하자고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생각나지 않는가?

 유교는 백성의 정치의 중심이자 경제의 중심이라고 본 사상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의 손에서 나온다는 계몽주의 사상이 18세기에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서양의 계몽주의보다 유교사상은 2200년쯤은 앞선 사상이다. 유교가 보수적으로 보는 이유는 조선왕조가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택했을 때 자신의 권력 보존을 위해 유교의 혁명적, 민본적 요소를 제외하고 삼강오륜, 삼년장 등 형식과 예절만을 아래 사람에게 가르쳐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유교가 보수적인 사상이 아닌 혁명 사상이며 민본주의적인 사상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