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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아니면 도, 그 속의 과학 [제 866 호/2009-01-21]

해마다 설이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과 함께 둘러앉아 윷놀이 한판을 벌리곤 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윷놀이나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에도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단순히 명절 때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놀이를 넘어서서 사시사철 다양하면서도 과학을 적용한 조상들의 지혜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윷놀이는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삼국 시대 이전부터 행해오던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로, 조상들이 집에서 기르던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또한 윷판에서 자리의 순서도 각 동물의 속력에 비유된 것이다. 머릿속에 해당 동물들이 뛰는 걸 떠올려보면 정말 그럴 듯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윷놀이에 로또보다 재미있는 확률의 원리가 있다는 점이다. 윷을 던져서 나오는 확률을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 =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로 계산해보면 도와 걸이 4/16, 윷과 모가 1/16, 개가 6/16이 된다. 윷을 던졌을 때 개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조상들은 여기에 윷의 앞면과 뒷면을 다르게 만드는 약간의 변수를 추가했다. 위의 통계는 윷의 앞과 뒤가 같다고 했을 때, 즉 1/2로 가정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곡면인 부분을 앞이라고 하고 평면인 부분을 뒤라고 보면 확률은 달라진다. 고려대학교 허명회 교수는 윷의 곡면이 완전한 반원이 아니라는 점을 바탕으로 윷의 무게중심에 따른 회전운동을 계산하여 새로운 확률 결과를 내놓았다. 곡면이 위로 나올 확률과 평면이 위로 나올 확률이 4:6이고, 모-도-윷-개-걸의 순서로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완벽하게 정확한 확률 결과라고는 아직 단정 지을 수 없다. 만약 윷놀이를 할 때의 바닥, 예를 들면 멍석이나 땅바닥 등이 평평하지 않다거나 그로 인한 운동 방향의 변화 등을 고려하여 연구한다면 다른 확률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설날뿐만 아니라 겨울철 동안 아이들의 놀거리인 팽이치기에도 과학이 있다. 18~19세기에 생긴 팽이라는 말은 핑핑 돈다는 말에 그 유래가 있다. 지금은 비교적 많이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옛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나 썰매를 만들어 강가,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여가를 보냈다. 팽이채는 50cm 정도의 얇은 나무 끝에 실로 노끈을 만들어 묶었고, 팽이를 칠 때 감으면서 세게 돌릴 수 있도록 팽이채의 노끈 끝은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팽이치기를 할 때는 팽이를 멈추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돌리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팽이를 오래 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팽이에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둥근 물체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운동을 하므로 회전 관성을 가지는 팽이는 무겁고 단단한 재질이 관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나무보다 소나무나 박달나무로 만들었다. 돌던 팽이가 어느 순간에는 공기저항과 바닥면과의 마찰력으로 인해 멈추게 되므로 아이들은 팽이의 표면을 잘 다듬어서 공기저항을 덜 받게 한다. 또한 얼음 위에서 팽이를 돌리면 바닥면과의 마찰이 적어지기 때문에 사계절 모두 팽이치기를 하지만 유난히 겨울에 아이들이 즐겨 한다.

겨울철 강가나 논두렁에서 바람을 이용해 날리는 연날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는 대보름에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제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쉽게 볼 수 있다. 연날리기는 한지와 대나무로 가볍게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겨 있는 실을 조절해서 높낮이를 조종하는 놀이로 놀이의 방법은 쉽지만 잘 날리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연날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연의 윗면과 아랫면을 바람이 동시에 지날 때 윗면을 흐르는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감소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쉽다. 이것을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하는데, 이때 연의 윗면에 작용하는 압력이 아랫면에 작용하는 압력보다 작기 때문에 연이 위로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연을 잘 날리려면 연의 윗면을 아랫면보다 앞으로 기울여서 들고 날리고, 양력과 항력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연이 위로 떠오르려고 하는 힘이 양력이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뒤로 진행하려고 하는 힘이 항력이다. 실을 감으면 양력이 생겨 위로 뜨고 실을 풀면 항력이 생겨 뒤로 진행하므로 이러한 힘의 성질을 가지고 조종하면 된다.

이렇듯 우리 전통 민속놀이에는 재미와 동시에 과학이 숨 쉬고 있다. 이번 설에 종일 TV 프로그램에 빠져 있기보다는 민속놀이를 통해 창의력과 과학적 사고를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이상화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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