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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내복을 꼼꼼히 챙겨입어요~ [제 881 호/2009-02-25]

휴일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던 건축씨의 계획은 겨울채비를 위해 문풍지를 바르라는 아내의 요구에 보기 좋게 무산되었다. 이때 TV를 보던 아들 녀석의 질문이 반갑기만 하다.

“아빠~ 녹색성장이 뭐예요?”
“그건 말이다. 지구온난화란 말 들어봤지? 우리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지구를 덮고 있는 이불이 두꺼워져 지구가 더워지고, 때문에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아들 녀석이 그쯤은 다 안다는 듯 아빠의 말을 가로막으며,
“에이, 그거 이산화탄소 때문이라는 거쯤은 다 알아요.”
“그래, 그 이산화탄소의 사용량을 줄여서 지구도 살리고 그곳에 사는 우리도 안전하게 살자는 거지. 그게 녹색성장이란다.”
“그럼~ 제일 먼저 자동차를 없애야 하겠네요.”

아들 녀석의 재빠른 응수에 건축씨는,
“음, 사람들이 이산화탄소하면 자동차를 떠올리는데 말이다. 에버하드 조헴(Eberhard K.jochem)이라는 학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거의 35%는 건축물에서 나온다는구나. 그러니 건축물을 잘 짓고 관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단다.”

이때 따가운 아내의 눈초리가 느껴진 건축씨는 슬며시 아들 녀석을 데리고 창가로 데려가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들아, 그래서 문풍지를 발라서 찬 공기가 집안으로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서 연료사용을 줄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단다.”

우리 몸도 체온유지를 위해 많은 양의 칼로리를 소비하는 것처럼, 건축물도 마찬가지야. 건물이 외부의 온도에 영향을 적게 받게 하는 것이 에너지절약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즉, 건물 외부의 차갑거나 더운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이 바로 단열(斷熱)이란다. 그렇다면 건물의 열손실은 어디가 가장 많을까? 천정에서 약 40%, 바닥에서 36%, 벽에서 14% 정도이며 문이나 창에서 10% 정도란다. 열이 손실되는 이유는 열의 전도를 통한 열관류가 발생하기 때문이야. 열관류란 열에너지가 고체를 통해 공기에서 공기로 전해지는 것을 뜻하는 거란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열재라는 내복을 입혀둔단다. 여기서 건물 단열재의 기능은 열관류를 방해하여 외부에서 전도된 열에너지를 내부로 통과시키는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최소화해서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내부 환경이 덜 민감해지도록 하자는 목적인 거지.”



이야기를 듣던 건축씨의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면서 건축씨에게 물어본다.

“그럼, 아빠. 건물의 지붕에서 가장 열이 잘 새어나간다는 거네요?”
“그렇단다. 단열재는 천정ㆍ벽ㆍ바닥 등 집의 벽체가 외부에 닿는 모든 부분에 설치하는데, 에너지 손실이 가장 큰 부분은 건물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붕이란다. 그래서 지붕과 천장에는 가장 두꺼운 단열재를 사용하고, 또한 단열재의 두께는 지역의 기후특성을 고려하여 다른 기준이 적용되지. 그 위치는 벽체와 벽체 사이(내단열) 혹은 벽체 외부(외단열)에 설치할 수 있고 벽과 벽 사이를 띄워서 공기가 단열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단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토를 하나 붙인다.
“아, 그건 마치 에어메리 내복 같은 거네요? 저번에 엄마가 사 주었는데 아주 따뜻했어요.”
“그래, 우리 아들 정말 똑똑하구나!”
아들의 영특한 대답에 건축씨는 문풍지 바르는 일은 뒷전이다. 그러자 보다 못한 아내가 창으로 다가오더니 건축씨를 한 번 째려보고는 손에서 문풍지를 빼앗아 붙인다.

“하지만 아들아, 가끔 너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고, 내복을 입어도 머플러를 안 하면, 목에 바람이 들어와서 감기 걸리고 그러지 않니?”
“네에, 엄마.”
“집도 마찬가지란다. 이제 마저 설명해요, 여보.”
아내의 눈치를 보던 건축씨는 신나게 아들에게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단열재로 건물에 꼼꼼히 내복을 입히지 않으면 열손실에 의한 에너지 사용량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란다. 단열이 뚫린 틈으로 열교(thermal bridge) 현상이 발생하여 벽 모서리에 곰팡이가 생겨 실내환경을 나쁘게 하기도 하지. 또한 이렇게 생긴 곰팡이 등은 제거하기도 어려워.”

이야기를 듣던 아들은 팔짱을 끼고서는 뭔가를 아는 듯 모르는 듯 표정을 짓는다.
“근데, 아빠. 온통 유리창으로 된 건물이 있잖아요. 거기에는 내복을 어떻게 입혀요?”
그 말에 문풍지를 바르던 아내도 이내 궁금한지 한쪽 귀를 건축씨 쪽으로 열어놓는다.
“그런 건물들은 보통 커튼월(Curtain wall) 건물이라고 하지. 근데, 그 건물도 역시 내복을 입는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복을 말이야.”



“커튼월로 된 건물들은 단열을 위해 보통 복층유리(Pair Glass)를 쓰는데, 유리 두 판을 사용해 그 사이에 공기층을 두어 단열을 한단다. 그러나 이도 충분하지 않아 복층 유리와 복층 유리 사이에 다시 공간을 두어 단열을 하는 경우가 있지. 이를 보통 이중외피(Double Skin)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열뿐만 아니라 내부공간의 쾌적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어 현재 많은 건축물에 적용되고 있어. 얼마 전에 다녀온 고양 아람누리 도서관 서쪽에도 이중외피 커튼월 시스템을 사용했지.”

이제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마를 도와서 문풍지를 바르기 시작한다. 아들의 행동에 건축씨는 적잖이 당황을 한다.

“아빠 말을 들었으면 무슨 반응을 보여야지? 갑자기 왜 그러니?”
그 말에 아들은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한마디 던진다.
“그렇게 잘 알면서 아빠는 왜 딴 짓 하면서 문풍지를 바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역시 말보다는 행동이죠. 그렇죠? 엄마.”
아들의 말에 건축씨는 말없이 가족과 함께 열심히 문풍지를 바르기 시작했다.

글 : 이재인 박사(어린이건축교실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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