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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이 지금까지의 내 아이디 였다.
어떤사람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내 이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풀이하기도 했다.
난 단지 세상의 모든것이 변하며, 흐르는 것이라 생각했고 늘 푸르른 소나무처럼 썩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줄여서 '흐강'이라는 아이디를 썼다.
이제 아이디를 바꾸려 한다.
흐르는 감물처럼이 내 의식의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면 '강아래강'은 내 무의식의 본능과 직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에게 더 이상 이성과 합리화의 세계는 희망과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이성에서 감성으로 , 합리화에서 비합리화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아래강 ...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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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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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과학적 지식과 선지식으로 나눌수 있다.선지식은 종교사회의 한 부류의 지혜이다.
지식은 이성의 도구이며 그것은 문자이다
문자는 이성을 벼리는 표현의 수단 이지만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모든 감각과 감성이 문자의 도구에 노예화 되기도 한다.
그럼으로 어떤 종교는 문자의 길보다 마음의 길을 깨달음의 화두로 생각하는 것 같다.
흐강도 강아래강도 분리된 둘이 아니라고 본다.(不一而不二)
단지 문자의 취우침과 마음의 취우침이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어색하게 원인은 아닐까?
강아래는 바다이다.
바이얼린(?)에서
현과 통은 현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울림통 역시 그 파장음이 현과 통이 어울려져 소리가 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은 분리될수 있을까?
마치 이사도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