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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사랑은 움직일까? [제 753 호/2008-05-02]

  • 분류
  • 등록일
    2008/05/03 00:14
  • 수정일
    2008/05/03 00:14
  • 글쓴이
    강 아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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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전 씨는 소중 씨와의 만남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를 즐겼던 약속 장소에 두 사람의 사랑을 증거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나전 씨는 두 사람이 앉아 담소를 나눴던 공원에 미리 나와서 커다란 나무줄기에 ‘나전♡소중’이란 글자를 써놓았다. 이때 소중 씨가 도착했다.

“나전 씨, 매번 늦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오늘 같은 날에 소중 씨를 미워해선 안 되죠.”
“아~. 1년 전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죠?”
“맞아요. 그래서 제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뭘까 무척 궁금해요!”

나전 씨는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서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으켜 나무 옆에 다가섰다. 소중 씨가 놀라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드디어 나전 씨의 두 손이 떼어지면서 나무에 선명하게 새겨진 하트와 두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어머? 이게 뭐람. 유치하게…”
“마음속으로는 좋으면서… 내숭떨지 마세요.”
“흠. 나무는 해마다 쑥쑥 자라니까 하트에 담긴 우리의 사랑도 움직이겠죠?”
“우리의 사랑이 움직일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네.”

“다행히도 우리의 사랑은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다만 하트의 면적이 넓어진답니다. 우리 사랑의 크기만큼. 헤헤”
“정말요?”
“나무가 자라는 원리를 알면 이해가 쉬워요. 껍질 바로 안쪽에 형성층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나야 나무가 커질 수 있어요.”
“그러면 나이테는 어떻게 생기는 거죠?”
“나무는 봄과 여름에만 자라고 늦여름부터는 겨울을 대비해 성장을 멈춰요. 그런데 봄에 만드는 세포는 성장이 왕성해서 크기가 크고 세포벽에 양분이 쌓이지 않아 밝게 보이죠. 반면 여름에 자라는 세포는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양분을 분배하기 때문에 세포의 크기가 작고 세포벽 내부에 다양한 화합물이 축적되죠. 그래서 어둡게 보인답니다. 이렇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겹겹이 쌓이면 그게 나이테죠.”
“그렇군요, 나이테는 봄·여름과 가을·겨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봄과 여름에 만들어지는 거였네요. 그래도 나무에 ‘새겨진 사랑’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 이해 못 했어요.”

나무의 세포는 크게 원형이나 다각형으로 생긴 세포와 이쑤시개처럼 기다란 세포, 두 가지가 있어요. 원형이나 다각형 모양으로 생긴 세포는 옆으로 크는 세포에요.”
“나전 씨의 튀어나온 배처럼요?”
“크크. 맞아요. 원의 지름이 커질수록 둘레 길이는 2파이(π)배만 커지는 데, 형성층 안쪽과 바깥쪽에 똑같은 개수로 세포가 생겨나면 빈 구멍이 생겨나겠죠? 그래서 보통의 나무는 형성층 안쪽에 4개의 세포를 만들면 바깥쪽에는 2개 정도의 세포를 만들어요. 나무마다 형성층 안쪽과 바깥쪽에 만드는 세포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나무껍질의 모양도 다르죠.”
“그럼 형성층 안쪽은 세포가 꽉 들어차도 바깥쪽은 빈 곳이 생겨나니까 임신한 엄마의 튼 뱃살처럼 갈라질 수 있겠네요?”
“오! 놀라운 추리력이에요. 목재를 건조할 때 가장 잘 갈라지는 곳이 지름방향인 것도 이 때문이죠. 차력사들이 제아무리 힘이 좋다고 해도 모두 나무 기둥에 평행하게 내리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럼 이쑤시개 같은 세포는요?”
“이쑤시개처럼 기다란 세포는 나무가 위로 자라게 만드는 세포에요. 일종의 빨대처럼 위로 쭉쭉 자라나게 만드는 세포인데 위로 뾰족한 부분을 맞대면서 자라나죠. 그러니까 1층부터 집을 지어서 위로 층을 쌓아 올려 가듯이 자라난다고 이해하면 쉬울 거에요.”

“그럼 한번 새겨진 우리의 사랑은 전혀 변하지 않는 거예요?”
“아까 나무도 배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럼 당연히 옆으로 기다랗게 변하겠죠? 그래서 하트의 면적이 넓어지는 겁니다.”
“역시 나전 씨는 저의 사랑을 받을 만해요, 쪽~.”

소중 씨에서 달콤한 키스를 받았으니 이번 이벤트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소중 씨는 “사랑도 좋지만 나무를 흉하게 해놓으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나전 씨가 나무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소중 씨가 더 컸다.

“걱정하지 마요. 나무껍질은 대부분 떨어져 없어지기 때문에 칼집을 내지 않는 한 나무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참 다행이에요.”

나전 씨는 나무에 사랑을 새기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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