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아난다고 해도 죽는다 - 크러쉬 증후군 [제 776 호/2008-06-25]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격을 받은 런던의 가옥과 건물이 무너지면서 기왓조각과 돌무더기에 매몰되어 구출된 사람들에게 이 증상이 나타난 것이 최초이다. 그 후 1995년 일본 한신 대지진으로 약 400명이 동일한 증상을 보였고, 이 가운데 약 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2005년에 일본 아마가사키시 JR 후쿠치야마선 기차 탈선사고에도 다수의 사람에게 이 증상이 나타났고, 그중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크러쉬 증후군(Crush Syndrome)에 대한 설명이다. 크러쉬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단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최근 중국 대지진으로 인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강진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되었지만 매몰 후유증으로 인해 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허리나 넓적다리 등의 큰 근육이 오랜 시간 동안 압박을 받게 되었을 때 혈류정지 등으로 근육조직의 세포가 죽는다. 근육 내에 산소를 저장하는 미오글로빈에서 만들어진 독성물질이 대량으로 체내에 쌓이게 된다. 구조 후 압박 상태가 갑자기 풀리면서 이 독성물질이 한꺼번에 혈액으로 쏟아져 나와 요세관을 막을 경우 급성신부전이 생기는 것이다. 또는 장시간 압박을 받은 후 혈액 중 칼륨이 급속히 증가해 심장근육 이상으로 부정맥이 생기며 처치가 늦을 경우 사망할 수 있다.

크러쉬 증후군의 경우 저체액성 쇼크의 조기 처치 및 급성신부전증의 예방을 위하여 신속한 수액공급과 강제 이뇨가 시행되어야 한다. 체액이 부족하여 혈압이 저하되는 저체액성 쇼크는 폐쇄된 공간에서 골절로 인한 출혈이 계속될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가급적 구조현장에서부터 수액을 투여해야 한다.

실제로 재해가 발생했을 때 72시간 안에 매몰된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매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체력적인 한계치가 약 72시간 정도이기 때문이다. 매몰된 사람들은 건물 더미 속에 갇힌 상태에서 하루 동안 땀으로 1.5ℓ의 수분을 배출한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혈액 속에 나트륨과 칼륨의 농도가 높아지고 심장을 움직이는 심근의 수축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72시간이 지나면 죽어 있는 상태로 구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살아서 구출된다 하더라도 크러쉬 증후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급사할 위험이 크다. 특히 가스 괴저병은 치명적인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부상 등으로 생긴 상처 부위가 가스 괴저균에 감염되면 박테리아가 내보내는 독성물질이 가스를 만들면서 조직이 괴사하는 병이다. 1~4일간의 잠복기를 거치고, 일단 감염될 경우 발병하면 12시간 내에 즉사하여 사망률이 매우 높다. 가스 괴저병과 같은 전염성을 가진 질병들은 매몰지 전역에 걸쳐 부패된 시체를 빨리 수습하는 것이 가장 큰 예방법이다.

대량 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에 깔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우선은 짓누르고 있는 물체를 치우는 데만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조건적인 구조활동은 오히려 그 대상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따라서 구조에 앞서 구조대원 및 자원봉사자와 의료진과의 긴밀한 팀워크가 이루어져야 하며 구조 시 전문적인 사전 교육이 충분하게 이루어진 후 구조작업에 임하여야 크러쉬 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윤종근 교수(광주동강대 응급구조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