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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만의 애로사항 - VIP 증후군 [제 782 호/2008-07-09]

야구에서 홈런 타자가 기록과 관중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 공을 헛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관중들은 “힘 들어갔다. 힘 빼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타자는 계속 긴장하여 팔에 힘이 들어가 결국 삼진아웃을 당하고 만다. 결승전 동점 상황에서 경기 종료 전의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축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는 환자를 수술할 때 외과의사는 야구선수처럼 자신도 모르게 더 긴장한다. 그러면 무난하게 수술하여 별 탈 없이 회복시킬 수 있는 환자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특별히 신경 써서 잘해주려고 했다가 오히려 의외의 합병증이나 실수 때문에 결과가 나빠질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이나 징크스를 일컬어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VIP(Very Important Person) 증후군이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아무 연줄이나 후광 없이 관공서나 병원을 찾아가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꼭 미리 연락해서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기대와 달리 반대의 결과가 생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탁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과의사가 수술이나 처치를 할 때는 빠른 시간 내에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이 개입되면 잘라내야 할 것을 자르지 못하거나, 망설이느라 시간을 지체하여 예기치 못한 사고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수술 중에 누군가의 부탁이 생각나면 의학적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외과의사가 자기 가족을 수술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VIP 증후군은 엄연히 연구 논문으로도 발표된 사실이다.

VIP 증후군에 대한 법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이유는 있을 수 있다. 의사들의 친인척이나 지인이 부탁을 해오면 의사는 그 환자의 편의나 비용적인 면에서 좀 더 고려한다. 이를테면 힘든 검사이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검사일 경우에 의사는 의학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환자의 편의를 고려하다 보면 중요한 검사를 놓치기도 하고, 지나칠 정도로 자주 치료하기도 하는 등 진료가 평소와 같지 않아서 오히려 사고가 생긴다. 의사는 어떻게든 환자에게 잘 대해주려는 의도지만 일단 탈이 난 뒤에는 당황하게 된다.

전문의가 VIP 환자를 위해 한동안 하지 않던 진료를 했을 때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하던 진료를 VIP 환자이기 때문에 의사 본인이 한다거나 주변의 전문의에게 진료를 부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 본인이 자신의 병을 진료하게 되는 경우도 탈이 생긴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진료나 처방을 빼먹고 본인에게 불편한 것은 무시하는 일이 많아진다. 다른 동료 의사에게 부탁하더라도 동료 의사의 입장에서는 이 의사 환자 역시 VIP 환자로 느껴져 부담을 가지게 된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고, 모자란 것보다는 적당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의도대로 잘 되면 좋지만 의사도 사람인지라 인간적인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VIP 증후군도 결국엔 사람이 만드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를 환자로만 대할 때 가장 좋은 치료 결과를 얻게 된다. 누군가 학문적 진리는 보편성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했다. 의사와 환자 간에도 이 보편성을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 강구정 교수(계명의대 동산병원 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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