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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의 과학이 승부를 결정한다 [제 794 호/2008-08-06]

북경올림픽 현장, 400m 남자 수영 결승전을 앞두고 수영 경기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금메달 예비후보에 대한 각국 취재진들의 취재 열기도 뜨겁다.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된다.

아나운서 : 여기는 북경 올림픽 현장입니다. 곧 400m 남자 수영 결승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과연 어떤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지금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해설자 : 선수들 몸을 풀고 있습니다. 슬슬 트레이닝복을 벗고 수영복 차림을 하는군요. 역시~ 올해도 전신 수영복이 대세입니다. 선수들 경쟁도 경쟁이지만, 올해 수영 금메달은 어떤 수영복이 따게 될지, 수영복 경쟁도 참 흥미롭습니다.

아나운서 :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선수들 수영복이 각양각색이네요.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도 있고, 반신 수영복에, 반바지, 팬티 수영복만 입은 선수, 마치 수영복 패션쇼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부끄럽지만 이제까지 전 수영복은 신체를 가리는 옷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말입니다. 수영복에서 신소재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지요?

해설자 : 그렇죠, 패션쇼보다는 과학쇼가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지금 이 수영 결승전은 선수들의 기량을 다투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수영복 과학의 경연장이니까요. 수영은 0.01초가 승부를 결정합니다. 0.01초면 2.5cm를 갈 수 있는 시간이죠. 이렇게 짧은 시간에 승부가 결정되니 수영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나운서 : 수영복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하군요. 저 다양한 수영복 중에서 어떤 수영복이 가장 뛰어난 기량을 발휘합니까? 보기엔 전신 수영복이 가장 눈에 띕니다만…

해설자 : 전신 수영복은 이미 명성이 높지요. 시드니 올림픽에서 전신을 감싸는 올인원 수영복이 등장했을 때 모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 독특한 외모보다 더 놀라운 건 기록이었죠. 전신 수영복을 입은 이언 소프 선수는 세계신기록을 3개나 세우며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은 17개 종목에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아나운서 : 언뜻 보기에는 답답할 거 같은데, 입기도 불편할 것 같고요. 어떻게 속도가 나는 걸까요?

해설자 : 사실 입기는 꽤 불편하다고 해야겠죠. 입는데 10분이 넘게 걸리고 도와주는 사람도 네 명이나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불편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하죠. 몸 전체를 감싸 근육의 떨림을 막아 피로를 덜 느끼게 되고, 코팅 처리된 표면은 원래 피부보다 훨씬 매끄러워 물을 튀겨 내기 때문에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 : 벗는 게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군요. 저는 전신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는 선수 모습을 보면 상어가 떠오릅니다. 물살을 가르는 검푸른 상어, 말하고 보니 조금 무섭기도 하네요.

해설자 : 하하, 너무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데요. 저 전신 수영복은 사실 상어에게 도움을 받은 기술입니다. 상어의 표면은 매끄러워 보이지만 작은 삼각형 돌기들이 나있습니다. 전신 수영복도 마찬가지로 작은 삼각형 돌기가 나 있어, 물과 표면 마찰력을 5% 줄여줍니다. 물이 피부에 닿을 때 소용돌이가 발생하는데, 이 돌기가 그 소용돌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골프공의 표면도 마찬가지의 원리로 만들어진 겁니다. 매끈한 표면보다 울퉁불퉁해 보이는 게 저항을 덜 받고 멀리 날아가죠.

아나운서 : 그렇군요, 상어의 피부라니, 바다에서 가장 빠른 상어를 이용한 기술이로군요?

해설자 : 물론 상어는 바다의 포식자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가장 빠른 건 아닙니다. 바닷속 수영 속도로 보자면 상어는 8위 정도지요. 황새치, 다랑어, 범고래, 돛새치 등이 상어보다 빠릅니다. 그러니 앞으로 돛새치나 황새치의 비늘 모양을 활용한 더 빠른 수영복이 나올 가능성도 있지요.

아나운서 : 네, 같은 전신 수영복이라도 지난 몇 년간 새로운 기술이 많이 개발되었겠지요? 4년 전 올림픽과 달라진 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해설자 : 올해 2월에 첫선을 보인 스피도사의 LZR Racer(레이저 레이서)가 단연 눈에 띕니다. 이 수영복은 5개월 만에 세계 신기록을 38개나 갈아 치웠어요. 신기록 수영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초음파로 섬유를 이어 붙여 봉제선이 없고, 경계선은 방수소재 직물을 사용해서 기존 수영복에 비해 마찰을 24% 줄였습니다. 부력은 향상되고 마찰은 줄이고, 결과적으로 전체 속도가 2% 정도 빨라지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움직임이 활발한 무릎에는 실리콘을 넣어 주름이 잡히는 것을 방지하고, 발목을 감싸는 부분도 실리콘 소재를 사용하는 등 부위별로 다른 소재와 기능을 배치했어요. 나사(NASA)와 공동으로 개발한 첨단 과학의 산물이죠.

아나운서 :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수영복이로군요. 저 팬티 수영복을 입은 선수는 마치 상어들 틈에 낀 순진무구한 돌고래같이 보이네요. 과연 전신 수영복을 입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해설자 : 일단 출발이 좋아야겠지요. 뒤에서 따라가려면 앞서 가는 선수가 만들어낸 물살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더 커지니까요. 그리고 제아무리 상어 비늘을 단 선수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승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땀입니다. 더 좋은 수영복이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없던 실력을 생기게 해주는 마법은 아니니까요. 혹시 모를 일입니다. 이 모든 과학적인 노력이 허무하게 평범한 팬티 수영복을 입은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도 있어요. 그게 바로 스포츠의 매력이겠죠.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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