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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콜텍/하이텍 농성장에 다시 찾았다. 벌써 올라간지 25일째이며, 단식 14일차다.
'자주 가봐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업무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미안한 일이다.
지난주에 가고 어느덧 열흘째 만에 가보는 것 같다. 참 미안하다...
그래도 콜텍 사무국장님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 주시니 이들은 참으로 정겨운 분들이다.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문화인들의 작은 음악회를 연단다. 첫날이어서 그런지 한 20여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가수들의 잔잔한 음악은 매일같이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는 콜텍/하이텍 동지들이나 나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 속에 담긴 가사 속에서 웃음과 기운을 얻기도 하고 말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도 또한 나름 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분들이겠다.
음악과 투쟁발언이 번갈아 진행되었다. 그 중에 하이텍 동지 한 분이 '우리는 아마도 금속에서 왕따 인가 봐요. 알고는 있지만 너무나 힘드네요' 하면서 울음을 떠트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21년동안 일한 일터에서 어느날 나가라고 했을때, 그리고 그동안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딴 생각을 않고 이제껏 열심히 투쟁을 해왔는데... 금속노조에서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아프다...
노래공연을 마치고 마지막 투쟁영상물을 상영했다. 지난 2005년 충청지역에서 참으로 열심히 결합한 하이닉스매그나칩 지회 투쟁이다.
예전에도 몇번 봤던 영상물을 보자니 마음이 울컥했다. '참 열심히 가열차게 싸웠는데...'
2005년 5월 1일 노동절 당시 영상을 보니 기분이 새롭다. 그때 공장안으로 진격해서 참 많이 다치고 연행되었는데... 나도 그때 참 많이 얻어맞고 연행되었었는데... 그땐 지역동지들이 정말 하나같이 싸우고 말이다... 결국은 진 싸움이지만... 그때의 분노와 아픔은 지금 여기 양화대교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참 기분이 묘하다.
대우자판 동지들로 보이는 분들이 처음 본 영상물인지 역시나 눈물 소리가 난다. 굳이 돌아볼 필요없이 느껴진다... 그들도 현재 그렇게 싸우고 있을니...
다행이도 날이 차갑지 않아서 좋다고 했는데... 위에 있는 동지들은 얼마나 추울지... 힘내시길...
9월 17일 서울로 발령나서 한 동안 작성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글을 써서
10월 22일에 미디어충청(www.cmedia.or.kr)에 올린 [글쎄…8] 이다...
2008-01-29
아주 어릴 적 어머니는 당신을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셨을 것이다. 조금 더 커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에는 시골집 화롯불 옆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군고구마를 구우면서 “옛날 옛날에…”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이 사주신 동화책을 읽고, 동화 속 세계에 빠져 꿈꾸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왠 동화 이야기냐고? 지금 우리가 아이도 아니고, 무슨 놈의 얼어죽을 동화 속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는 어릴적 어른들이 들려준 외국동화 또는 전래동화를 그저 들어왔을 뿐이다. 우리가 들은 동화 속 주인공은 항상 예쁘고, 멋있고, 착하고, 내용은 늘 권선징악(勸善懲惡), 고진감래(苦盡甘來)등의 교훈적 내용이다. 그 동화 속 이야기 작자가 누구인지는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우린 그냥 그렇게 들었고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동화 속과 같지 않다. 어릴 적 꿈과 현실은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90년대 초 독일에서는 역사학, 문학, 사회철학 등의 분야의 사람들이 동화를 재해석하고 원본을 재구성하는 등 동화를 새로 읽는 운동을 시작했다.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이링 페처(Iring Fetscher)’의 말에 의하면, “서양에서 동화의 의미는 원래 민중들의 ‘아주 의미있는 기별’이나 혹은 정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차츰 민중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기게 되자, 당시 봉건지배계급들이 위기의식을 가져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탄압을 했다. 그로 인하여 차츰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링 페처 : 1922년 독일 넥카 강변에서 태어나 튀빙겐과 파리에서 철학,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프랑크푸르트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물꼬는 이어졌으나 지배계급의 탄압에 굴복하게 되었고, 그나마 복원된 것(18,19세기)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형제, 안데르센’ 같은 사람들에 의해 현재의 내용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의 원래 내용은 어땠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공주이야기 중에 특히 잘 알려져 있는 백설공주의 원래 이야기를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이링 페처가 찾아낸 이야기로 소개한다.
옛날에 백설공주라고 불리우는 그림같이 예쁘고 착한 소녀가 양천의 성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머리는 까맣고, 뺨은 눈처럼 희고, 입술은 핏빛처럼 빨갛습니다. 공주는 어느 날 아버지가 군대를 동원하여 백성들을 살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궁궐의 모든 부귀영화가 백성들의 가난과 고된 노동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마음 속 깊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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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링 페처가 전하는 백설공주의 원래 이야기는 시민혁명 전후에 백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혁명가 이야기 혹은 민중봉기적 이야기였다.
어떤 이들은 ‘동화는 동화일 뿐이야. 너무 현실에 접목시키지 마!’ 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는 너무나도 황당하지 않은가? 난장이에 의해 삶을 의존하고, 결말에서는 독약이 든 사과를 먹고 죽었는데 지나가던 왕자가 키스해서 살아났다?
그럼 왜 백설공주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둔갑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당시 지배계급이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불만 제기 또는 이야기 전달로 반란을 꿈꾸던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지배계급들에 의해 수정된 백설공주 등의 공주이야기는 현재에도 전달되어 ‘여자는 늘 약하고, 남자는 용맹하며, 어려울 때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새로운 삶을 얻는다’ 로 완전하게 탈바꿈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봉건과 반봉건 그리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과의 대립이야기인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현재 우리 안방 드라마의 가장 기본적 이야기 틀 구성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이 시대 다수의 여성들은 내일의 ‘신데렐라’가 되기 위해서 성형하고 연예인을 꿈꾸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고 말이다.
그저 허무맹랑한 내용의 동화가 아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면서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하는 동화, 그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실어주는 우리들이 새로 해야 할 작업이 아닐까. 그 누가 알았겠는가? 백설공주가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독일의 철학자 이링 페처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찾다가 이러한 동화 원작을 찾게 되었고, 바꿔 읽는 동화놀이를 한 것처럼, 이번 방학기간동안 아이들과 함께 기존의 동화를 새롭게 재구성해보면 어떠련지...
노래는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하면서, 이야기는 안 되겠는가...
* 참조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1991. 철학과 현실사)
2008-02-26 03시02분
옛날에 빨간 머리를 가진 꼬마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도 ‘빨간 머리 소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동네에는 이 아이 외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또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소년은 아무런 기쁨도 없고 따돌림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학교성적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 아버지는 소년을 욕하고 벌써 몇 번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따돌림 느낌을 받지 않게 여동생에게 빨간 모자를 만들어주며 ‘빨간모자 소녀’ 라고 불렀지만 별 도움은 안됐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과 노는 꿈을 꾸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년은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집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소년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덩굴 속을 헤치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늑대가 나타나서는 소년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서 같이 맛있는 딸기를 따면 나중에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둘은 산딸기를 땄고, 점심때쯤에는 세 바구니가 싱싱한 산딸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말했습니다. “얘야, 바구니 두 개를 넝쿨로 같이 묶어서 내 등 위에 걸면 너는 바구니 한 개만 들고 가면 된다. 그러면 훨씬 빨리 집에 갈 수 있을거야” 기쁨에 가득 차서 소년은 늑대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년은 학교도, 동네도, 친구들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딸기를 따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자 기를 환영할까 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늑대도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고,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 동안 아이가 학교에 안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늑대와 나란히 평안하게 오는 것을 보자 아버지는 분통이 끓어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커다란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자, 늑대는 캐캥거리며 도망가버렸습니다. 소년은 벌로 매를 맞고 방 안에 갇혔습니다. 다음 날 동생과 함께 할머니에게 떡과 포도주를 갖다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
방금 소개한 글은 ‘빨간모자 소녀’ 동화의 앞부분이다. 놀랍게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빨간머리 소녀’는 그림형제가 소개해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동화인 것이다. 그동안 여러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의 내용을 모른 채, 그림형제로 인하여 뒷부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필자가 ‘빨간모자 소녀’ 동화원본의 앞부분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동화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잔혹함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앞부분이 소개되지 않았나 하고 의구심을 가질지 모른다.
소개한 동화원본에서 빨간모자 소년은 늑대와 같이 딸기를 딴다. 그리고 소년과 늑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즐거워한다. 늑대는 소년의 짐을 들어주는 친절함도 보인다. 이렇듯 늑대는 사악한 존재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소개한다. 최소한 적은 아님을 동화원본에서는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소년의 아버지는 분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늑대랑 어울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막대기로 늑대의 예민한 주둥이를 내리치고 쫒아버린다. 늑대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며, 화가 났을것이다. 그래서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는 복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빨간모자 소녀에서 늑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소녀를 잡아먹고 잠을 잔다. 지나가던 사냥꾼이 늑대임을 알고 가위로 배를 갈라 그 안에 소녀와 할머니가 나왔다는 것은…
그건 단지 늑대의 장난이었을 뿐이다. 애당초 할머니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소녀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동화라 하더라도 늑대가 잡아먹었는데 할머니랑 소녀가 멀쩡할 수 있는가? 그건 동화원본 앞부분에서 소년의 아버지에게 맞았던 것에 대한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이지 복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가위로 가른 늑대의 배에 돌맹이를 집어넣어 꿰매버린다. 늑대는 배가 무거워 움직이지 못해 결국 죽는다. 결국 사람이 늑대를 죽인다.
과연 독자들은 그림형제의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가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하는가?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나쁜 것이고, 사람이 늑대를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선입견(先入見). 사물·인물 등에 대해 미리 접한 정보나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지식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들 대상에 대해 형성되는 고정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평가 및 견해를 말한다. 이는 곧 늑대는 나쁘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게 하기 위하여, 동화의 전달 과정에서 분명 그림형제에 의해 보수적으로 변질됐을 거다.
그래서 늑대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공포감으로 포장되어,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에 아이가 신나고, 어른들은 공포감에 빠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 하겠다.
고정된 관념을 타파하고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서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참고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페처. 철학과 현실사. 1991)
2008-02-12 09시02분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재혼했는데, 새어머니는 소녀를 하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거만한 의붓언니들이 무도회에 가고 피아노를 치며 연애를 하고 다니는 동안, 소녀는 더러움과 잿더미 속에서 끝도 없이 고되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얼마 동안 이런 굴욕적이고 고된 생활을 한 뒤에, 소녀는 무엇인가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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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혁명가 백설공주’에 이어서 황당한가?
지금의 신데렐라로 변형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지배계급에게 있어서 대응하는 민중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지금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과거는 어떨까? 거기다가 왕이 지배하는 시대에 민중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왕의 통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반란을 꿈꾼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에게 있어서는 모종의 방치가 필요했을 거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면서 북한 괴뢰군에게 총 맞아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가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공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이야기였다는 것처럼, 여성은 사회적 지위에서 낮으며, 나약한 존재임을 계속적으로 강조하여, 그저 여성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로 포장한 것이 아니런지...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의 말을 빌리자면, “동화 속 신데렐라처럼 본인 스스로는 자립할 수 없는 여성이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길 기대하는 심리”를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설명한다.
오랜 세월동안 누적된 억압과 차별의 벽을 허물고 자립하고 세상과 맞서야 할 때, 오히려 반대적인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스스로 자기 비하나 열등감에 빠져서 억압과 차별적인 사회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다.
겨울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그냥 동화책을 내밀게 아니라 그 속에는 성차별 요소는 없는지 조리요리 살펴보고 새롭게 아이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는가?
예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항상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로 표기하냐고...
* 참조 -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이링 페처. 1991. 철학과 현실사)
2005년 4월 15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76호에 실린 글이다.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관심조차 없었죠"
받은 만큼 이젠 연대로 보답해야죠! -투쟁에서 승리한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
현장 이야기
기관지노힘 제76호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이에 축복하듯 벚꽃이 활짝 피어 벚꽃축제가 한참중인 4월. 그러나 부단히도 바쁜 하루를 보내는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한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이다. 4월 6일과 7일 이틀 간 막바지 교섭이 있었다. 어제 교섭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오후 즈음에 한 동지와 함께 한라공조 사내하청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출입문을 들어설 때 문순호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동지의 얼굴이 보였다. 늘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오늘은 더욱 환하게 보였다. 아마도 어제 진행된 교섭이 잘된 모양이다. 나랑 같이 동행한 한 동지가 "축하해요!" 라고 인사를 했다.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 감사합니다" 라며 사무장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노조사무실에는 한상진 지회장이 혼자 있었다. 소감 한마디를 묻자, 첫 마디가 "일단 끝나서 속이 후련합니다" 란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었는데… 그런데 사는게 힘들다보니 어쩌다가 노동조합 만들어서… 잘 되었습니다"
"사측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안들었죠"
한상진 지회장은 작년 8월말부터 노조결성을 준비해 왔었다고 한다. 노조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그가 노조를 구성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한라공조 사내하청인 (주)유진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근무하고 있는 동안 회사가 자기 멋대로 임금을 삭감하고, 월차도 없고, 잔여금도 한푼 주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두 사람 만나 가면서 사측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자연스레 노조결성의 의지를 다져왔다. 그런데 막상 노조를 만들고자 결심을 하고 나니, 그동안 회사측의 부당함에 억눌려 가슴속으로 혼자 '꿍'하고 있던 주변의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노동조합을 결성했단다. 물론 그 사이 고생도 많았다. 대표이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물량은 빼겠다고 협박하고, 한마디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대표이사가 강하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단결은 큰 힘을 만들기 마련.
원·하청 동지들의 단결된 의지와 한번 해보겠다는 사내하청 동지들의 의지는 공장 내에서 원·하청 노동자 공동결의대회를 진행하였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중식집회를 계속 열어왔다. 결국 4월 6일과 7일까지 이틀 간 집중적인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 95개 전체조항 의견을 접근시켰다. 그 중에 가장 핵심조항은 '고용기간이 없는 정규직 채용'이다.
즉, 한라공조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연대로서 받은 만큼 돌려 드려야죠"
노동조합을 하면서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지회장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그런 것 없었습니다. 워낙 동지들이 집행부를 신뢰하고, 잘 따라줘서 솔직히 저희는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워낙 잘 뭉쳐서 그런지 쉽게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노동자의 힘 아닌가 쉽구요"라고 답한다.
4월 1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한라공조 사내하청 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장 등 동지들은 자신들의 노동조합 깃발을 들고 대전역에 나왔다. 지회장은 "그 날 무척 든든했습니다. 이 많은 동지들이 하나라는 것이 말이죠. 이 동지들이 모두 하이닉스 투쟁에 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연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지회장. "우리가 그동안 여러 동지들의 관심과 연대 속에서 교섭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만큼 우리도 이제는 다른 동지들에게 연대 해야죠. 아직 많은 곳에 찾아가 보지 못했지만, 호텔리베라 등의 사업장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간부회의를 통해서 연대투쟁에 대한 계획을 모색할 계획이다.
노동조합 활동은 그 어떤 특출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또한 그 어떤 사람이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부당한 노동행위를 받았을 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옆의 동료와 단결을 이룰 때, 이것이 투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근간을 이루는 모습이 아닐런지. 이런 모습이 민주노조를 지키고 꽃피우는 것이 아닌지 사내하청 노동조합 사무실을 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5-04-26 18:32:19
2004년 7월 20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57호 실린 글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
기관지노힘 제57호 |
이강철 |
p39_1.jpg(61 KB) |
지난 6월 22일 오후 1시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교육주권 매각음모 저지!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전면 폐기!'를 위한 긴급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 쟁취!' 구호로서 진행된 집회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대오가 참석하지는 못했다. |
2004-07-20 15:25:27 |
2003년 6월 5일 노동자의 힘 기관지 32호에 실린 글이다.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4-5면// 사람사는 세상
기관지노힘 제32호
이강철 (한신대 민중연대위원회 연사국장)
상도동.jpg(52 KB)
"다리 쭉 펴고 편안히 누울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 상도 2동 철대위 김영재 위원장
이강철
지난 5월22일 한신대에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열렸다. 풍동, 상도2동에서 철거민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서울 남가좌동 철대위가 용역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다음은 상도2동이겠군….' 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전국철거민연합 연대주점이 끝났다.
연대주점 뒤, 27일 동작구 상도2동 173~159번지 일대 꼭대기에 있는 상도2동 철대위를 찾았다.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주위의 집들은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철거망루(골리앗)에서 소리가 들렸다.
"위원장님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개가 쉴새없이 짖어댔다.
사실 오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왜냐면, 어제 부천 소사 철대위가 발대식을 하자마자 주공직원들과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여러 명이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을 만나는 것이 민폐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철거망루에 들어가자 상도2동 철대위 분들은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밖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너무나 다정함이 있는 분위기였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눈가에 잔잔한 주름에 정말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다정하게 나를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안내해 주신 분은 이 곳 상도2동 철대위 위원장 김영재(54세) 위원장이다. 잠시 후 따뜻한 커피가 나오고, 김영재 위원장님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위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줄곧 하는 투쟁 같은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27년째 이곳에서 사신다는 김위원장님은 아현동에서 시계방을 운영하다가 도로확장 때문에 철거당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철거투쟁에 나섰다고 한다.
이 곳 상도2동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파출부나 청소부 및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 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도동 땅의 주인인 양녕대군 문중에서 땅을 경향건설에 팔아버렸고, 땅 주인이 된 경향건설은 어떠한 향후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강제철거의 위협을 가해왔다. 현재는 40여 세대가 이 철대위에 참가하여 싸우고 있는 중이다.
철대위는 작년 4월10일 결성되었다. 세입자의 권리가 무시되거나 합리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제 철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순환식 개발을 통한 가수용 시설 실현과 영구임대주택에 확실히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거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속에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집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이 주거의 권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집이 없는 이가 60%인데, 영구임대 주택들을 지어서 조금씩 그 비율을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없는 것이 죄는 아닌데…. 이 세상에 제대로 돈 버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신의 땀 한 번 안 흘리고 버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리 쭉 펴고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마련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이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일 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김대중 정권보다도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있는 자들의 정치이지, 이게 어디 서민들을 위한 정치입니까? 가진자에 의한, 재개발·재건축 때문에 세입자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득을 채울려는 것에 의해서 쫓겨나가게 되고, 쫓겨나가게 된 사람들은 또 다시 싼 곳을 찾다가 겨우 살 자리를 마련하면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쫓겨나는 이런 무차별적인 개발에 의해 철거민들은 계속 양산된다고 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꽁짜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도 본인부담이 20%입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위원장님은 1남 2녀의 자식을 둔 아버지이다. 자식들이 다 커서 회사를 다니고 돈도 적게 버는 편은 아니라 한다. 그래서 종종 자식들은 아버지가 이 싸움을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두라고 한단다. 그러나 김위원장님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는 없죠."라며 웃음을 보인다.
이 철거싸움을 끝내고 하실 계획에 대해서 묻자, "내가 이 싸움을 이기고 빈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가식적인 말 같고(웃음), 전에 하던 노동을 다시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돈이 생기면 철거민투쟁 후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철거투쟁에 뒷바라지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웃음)
집은 오늘의 고된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휴식하여 내일의 노동을 위해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서 주택은 고이윤을 발생시키는 상품으로 전락되었다. 각종 주택개발사업 지구 내에서 원거주민들에 대한 주거권은 폭력으로 강탈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선대책·후철거, 순환식개발에 따른 가수용단지와 영구임대주택을 건립하는 것이다. 원거주민들의 실정에 맞는 영구임대주택이 건립되고, 영구임대주택 건립 전까지 임시 거주로 사용할 가수용단지가 건립되어야 한다. 이로써 기간의 주민들의 생활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정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동지들의 연대투쟁이 저희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배웅해주는 김위원장님. 돈벌이가 없어서 생활의 궁핍함과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된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속에서 이들의 싸움이 결코 외롭거나 패배하지 않기를 바라며 상도동에서 발길을 옮겼다.
2003-06-05 23: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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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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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금욜에 카페 빵의 김영등 대표가 콜트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해서 첨으로 콜트라는 회사를 알게되었어요.(부끄-_-;;)오늘 블로그 글을 보고 좀 더 알게되었네용.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