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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폭설이 내리고 있네요.

올해는 예년과 달리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집안 어르신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좋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아마도 농경사회 때 눈이 많이 오면 풍작이 든다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면 뭐가 그리 좋았는지 강아지 새끼처럼 깡충깡충 뚸어 다니며 좋아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귀찮기만 합니다.

하하하 원.......

아침에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옥상에 올라가보니 옆집 아저씨와 아이들이 저마다 밀개와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 집 앞과 길가의 눈을 치우고 있더군요.

다른 것 다 떠나서 보기 좋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좋은 풍경을 보면서 드는 상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끝날 수가 없는 용산과 민주노총, 그리고 아직도 천막을 거둘 수 없는 투쟁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장례를 치르게 되는 용산학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차마 맨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 비통하고 처절한 심정들....

저 후레아들 놈들은 이제 장례를 치르기만 하면 그렇게만 하면 일단의 입닥음은 될테니 그것으로 마무리를 짓자고 덤빌 것입니다.

안 봐도 비디오 아닙니까?

여태껏 열사들의 죽음이 모두 그렇게 마무리가 됐지요.

그러나 착각은 자유라고 용산은 그렇게 끝날 수가 없고 그렇게 마무리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유족들의 굳센 다짐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 죽음의 행렬 앞에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이제 또 어느 철거현장에서 어느 누가 또 죽으면 가서 슬퍼하고 경찰들과 실랑이 벌이고 그리고 장례 치르고.... 또 다시 반복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겠습니다.

아까 서두에 눈이 오면 요즘에는 귀찮다고 했는데 그건 비단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닌게 지난 참사 한 달째인 2월20날 현장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귀가 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그만 양쪽 발을 버스에 치여 다치고 말았습니다.

투병생활을 200일을 했고 아직도 요양 중인데............. 그러니까 가을에 퇴원을 했지요.

다가올 겨울을 몰랐었는데 막상 겨울이 되니까 이놈의 발이 시리다 못해 아파서 거동을 못 하겠는 겁니다.

오늘도 공공연맹 시무식이라 시무식 참석하고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 참배를 간다고 하는데 저는 못갈 것 같습니다.

눈밭에 조금만 서있어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어쩌지 못하는 게 지금의 제 형편입니다.

먼젓번 민주노총 여의도 집회에 갔다가 아파서 굉장히 당황했지요.

걸어 다니면서 이빨만 뿌득뿌득 갈고 다니지요.

돌아가신 분들도 있는데 어찌됐건 저는 아직 살아있으니 그나마 천운이라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이지요.

저는 사무공간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공공서비스노조고(대방동소재) 다른 하나가 용산에 있습니다.

왔다갔다 출퇴근 하면서 항상 버스 안에서 묵념을 하고 지나다닙니다.

아마 남들은 제가 뭐하는지 모르겠지요.

용산투쟁 내내 병원에 있다 보니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신문과 TV, 그리고 찾아오는 동지들에게 귀동냥으로 듣곤 했는데 언젠가는 수술한 병원으로 다른 수술을 또 받으러(큰 수술을 몇 차례 받은 후에 당시는 요양병원에 있었습니다)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길에 용산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현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옷은 환자복이고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가보고 싶었는데 만약 제가 가게 되면 유족들이 아무 죄도 없이 미안해 할까봐 겉에서 둘러보기만 하고 왔던 기억이 납니다.

용산!

이제는 그저 용산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모든 모순이 겹겹으로 쌓여있는 바로 우리들의 투쟁의 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깼나봅니다.

그야말로 주절주절 이었습니다.

동지들 1월9일 용산에서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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