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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기 좋은 날씨다. 아침 여덟시에 영농단으로 집결, 트럭을 타고 논으로 나간 지킴이들은 곧 점심밥을 먹으러 노인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지킴이들은 정말 열심히 직파 작업을 한다. 저녁밥도 못먹고 촛불행사장에 나타나기도 하고, 황사 바람을 들이마셔서 자주 마른기침을 토하기도 한다. 지킴이들 얼굴을 보면 항상 피곤하고 고단해 보인다. 하지만,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쉬지 못해서 어떡하냐고 물으면, '괜찮아, 논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한다.
몸이 안좋아서 4월의 대부분을 집안이나 텃밭에서 보냈다. 텃밭일이 하도 좋아서, 논일이 끝나면 저녁밥 먹는 것도 잊고 텃밭으로 달려가 일을 했었는데. 몸이 불편해서 설거지도 못하는 지경이라 텃밭엘 가면 호미질이나 조금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잘 돌보지 못했는데도, 밭에서는 벌써 딸기 꽃이 피고 감자싹이 돋는다. 완두, 치커리, 상추, 쑥갓, 근대, 옥수수가 싹을 내밀고 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속담도 있지만 씨앗을 뿌린 자리에서 그대로 싹이 터 올라오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한 지 모른다. 일을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같아 갑갑했는데, 밭에 나가면 날마다 새로운 채소와 콩의 푸른 싹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정성껏 잘 키워서 다른 지킴이들과 같이 나누어 먹을 날이 머잖아 오겠지...
그러나.
침탈은 언제 닥칠 지 모르고, 그 침탈에서 우리가 무사할 수 있을 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포크레인 위로 올라가고, 레미콘트럭 밑으로 기어들고, 용역들한테 구타당하고... 땅을 뺏으러 오는 이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침탈이 예고 될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느낀다. 침탈이 있기 전날 밤, 지킴이들의 얼굴에서 묻어나던, 불안과 고립감에서 오는 공포의 기미를 기억한다. 그런 밤이 또다시 조만간 닥칠 것이 분명하지만, 고맙게도 맑은 날은 이어지고 파종은 계속되고 있다. 저녁이 되면 참으로 마신 소주 냄새를 풍기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마을로 돌아오겠지. 모내기가 끝나면 노인 회장님이 소 한마리를 잡아주신댔는데... 이 싸움이 이겨서 소 네 마리를 잡을 날도 얼른 왔으면... 그날을 간 절 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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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하고 맑은 공기가 탁한 내 방에서도 느껴지는 듯.부디 대추리 농사가 올해 풍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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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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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얼룩이 피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쥐똥나무 울타리가 뽑히고, 무덤이 파헤쳐졌다. 지금은 공소도 미루나무도 없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