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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 노트

  • 분류
    일상
  • 등록일
    2012/04/09 09:07
  • 수정일
    2014/11/07 12:58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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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은 상품의 가치가 인간의 노동에서 나온다는 추상적 원리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리에 따라 구체적 노동자 A가 30분 동안 일한 것이 상품의 가치에 어느 정도로 응고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런 작업이 매번 요구되지도 않는다. 법학의 특이점은 일반적 원리, 예를 들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배상해야 한다는 원리를 매우 구체적인 사건에까지 적용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 즉 하나의 특정된 행위가 불법행위인지를 판단해야 하고 그 행위로 인해 손해액이 얼마가 발생했는지까지 정해줘야만 한다.

문제는 법학이 정면으로 드러나는 순간들, 즉 사회적 문제의 초점이 법원으로 향하는 사건들은 대체로 각 당사자 간 갈등이 극에 달한 경우라서 그 사건의 구체성과 법원리의 추상성 사이의 거리가 극...대화될 때라는 점이다. 그 갈등의 양상은 특히 대립되는 관계를 맺는 당사자들 혹은 세력간 충돌이기 쉽다. 반면 법원리의 일반성, 혹은 규범성은 동일한 권리의무의 주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야만 모두에게 똑같이 통용될 수 있는 원리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 법원리와 구체적 갈등으로 나타나는 사건의 만남은 서로에게 비극적으로 다가간다. 법원리는 스스로의 일반성을 부정하는 특별법의 형태로 계속 변화하고 마침내 범용성, 즉 원리의 일반성 자체를 상실한다. 마찬가지로 구체적 갈등은 그것이 관계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유리된 채 그 사건 자체로서만 다뤄지는 바람에 원인에 대한 고찰은 없는 증상의 완화에만 그치게 되어 더 큰 갈등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매우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법원리는 그만큼 그 사회의 지배적 원리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인 만큼 본질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게 된다. 반면, 두 번째로 이 법원리들은 결코 그것이 예정했던 전형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자명해보이는 살인사건, 예컨대 이번 수원 살인사건만 하더라도 이주자 문제, 경찰 대응 문제, 젠더 문제라는 매우 갈등적 지점을 담고 있다. 자명해보이지 않는 사건들, 노사갈등, 권한쟁의, 할당제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법학은 자신의 한계를 매우 명확히 해야 한다. 어쩌면 법학은 더 이상 추상성이나 일반성과는 맞지 않는 학문이나 분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부정하고 계속 법학 고유의 일반성을 주장할 경우 법학은 오로지 그 보수적 성질만을 반복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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