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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12
    대통령과 '당'을 구하겠다고?
    키노
  2. 2006/11/27
    리처드 닉슨의 암살!(1)
    키노
  3. 2006/11/16
    Moral Issue
    키노
  4. 2006/11/08
    PD수첩이 던지는 질문!
    키노
  5. 2006/11/02
    '너'에게 묻는다!
    키노
  6. 2006/11/02
    전환의 계곡
    키노
  7. 2006/10/21
    공전(空轉)의 정치학(1)
    키노
  8. 2006/10/16
    한심한 종북주의자들의 궤변(5)
    키노
  9. 2006/10/11
    내년 대선결과가 발표되었다.
    키노
  10. 2006/08/09
    김기덕의 오류와 무능(3)
    키노

대통령과 '당'을 구하겠다고?

'여당 당사에 노란 풍선이 다시 걸렸다!'

오마이가 뽑은 기사제목이다.

좀 자극적으로 들리겠지만 그 기사와 중간중간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드는 단상은 '쉰내 나는 노란단무지들의 함성'일 뿐이다.

좀 편한 글쓰기를 위해 화자를 '여전히 노무현지지자'들로 설정하고 이어가 보겠다.

물론 순수한 심정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라거나 "기간당원제를 부활하라!"고 외치는 손톱만큼은 개혁정치를 원하는 이들의 면면에 대고 이런 말을 해야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당신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당사에 모여 그런 외침에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신뢰했던 노무현이란 인물이 어떤 국정운영철학으로 이 사회를 나락으로 몰아 넣었고 당신들을 대의해 개혁정치를 해줄 것으로 믿었던 인물들이 실은 아무것도 할 의지가 없었던 보수정치꾼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면 단호하게 떠나야 할 일이고 알면서도 아무런 의미없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정치판단의 뇌구조를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많은 노빠들은 여전히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보수기득권의 저항탓에 노무현이 개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하고 다수의 열우당 기득권 세력들이 노무현의 뜻에 반하는 '배신행위'를 반복하거나 한나라당과 공조함으로써 창당초심을 잃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여전히' 심정적노무현지지자인 이들의 속내는 노무현과 열우당의 예견된 몰락에 몹시도 불편해 하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대상과 논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당신들의 눈에는 현실의 한국사회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으며 여전히 노무현식 철학과 열우당의 일부 개혁인자들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의미있는 변화로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리와 현장에서, 또 노무현과 열우당의원들은 너무나 바빠서 포토행사할 때 말고는 만나기 힘든 서민들을 늘상 만나면서 내리는 결론은 이미 이 사회의 중층은 '회복불능의 구조'로 굴러 떨어지고 있음이다.

수치란게 가변적이겠으나 상위10%와 하위10%의 소득격차가 43배에 달한다는 통계는 차치하고라도 '희망의 의지'를 거세당한 웃음기 사라진 얼굴들을 보면서 당신들의 행태를 봄날 소풍쯤으로 이해해줄 여유조차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당신들은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을 얼만큼이나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10년 일한 비정규직이 갓 입사한 정규직 초봉의 60%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여 노조를 만들었다고 집단해고해버린 기업에 얼만큼 분노를 느끼는가!
2년동안 거리를 헤매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에 눈꼽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일은 있는가?
굶는 아이들이 50만이고 해마다 노동자는 3천명이 일하다 죽고 전기요금이 없어 단전된 집에서 촛불켜고 자다 비명횡사한 장애인가족의 일이..., 전기장판조차 켜지 않고 자다 싸늘하게 동태처럼 죽어간 노인의 소식이...,
노무현정부와 열우당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하는가!

노무현은 2002년 통키타를 치며 문성근의 지지연설에 눈물흘리던 '바보노무현'으로 여전히 당신들의 뇌리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국정책임을 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무능과 배신에 대해 단호하게 규탄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여전히 그들을 감싸고 도는 당신들이야 말로 '사회악'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집단해고된 이후 2년이 넘었다.
노동부에서는 '불법파견'을 결정하고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매일같이 그들을 만나고 부도덕한 사측에게 사회적책임을 주문하였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역의 열우당국회의원(충북은 8명 전원이 열우당의원이다.) 단 한명도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만나지조차 않았다.

이것이 열우당과 노무현의 모습이다.

아니라고?
아직 열우당에는 개혁진보적인 의원들이 많이 있다고?

당신들은 '또다른 노무현들'의 이미지에 세뇌되어 있을 뿐이다.

그토록 진보개혁을 외치던 열우당의원들 모두 '비정규직개악입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보수입법안들에 부화뇌동했던 인물들일 뿐이다.

대관절 지구상의 어떤 진보개혁정치인이 침략전쟁에 제나라 용병을 파병하는 일에 동의하며 사회양극화의 핵심인 비정규직확산법안에 찬성표를 던진단 말인가!

결국 당신들은 그토록 증오해마지 않는 한나라당이나 보수기득권세력들과 '전혀'다를 것이 없는 정치를 하고 있는 정당과 대통령을 "구해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당신들의 무의미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늘상 당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온 열우당은 또다른 이름의 자칭 '중도개혁 신자유주의 보수정당'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과 당신들이 붙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정치세력 모두가 이 땅의 개혁과 '제대로 된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장애일 뿐이다.


향후 전개될 대한민국 정치판은 몸과 마음 혼연일체의 수구보수꼴통들과 몸과 마음 중 유일하게 입만 '진보개혁적'인 인간들의 동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모쪼록 이제 유통기한 한참 지나 아무도 찾지 않는 폐기용 노란 단무지 신세에서 조속히 탈피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이 대한민국정치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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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의 암살!

 

 

 

정직하게 살고 싶었던 한 소시민.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해야 하고 경쟁이라는 이름의 무례함도 감수해야 하며 착한 것이 무능력함으로 이어지는 세태 앞에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져야 하는 '인생낙오자'로 규정되는 세상.

지도자는 더 큰 거짓말과 더 큰 폭력으로 '그것이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지키는 일'임을 강변하는 사회!

<리처드 닉슨의 암살(The Assassination Of Richard Nixon)>의 배경이 된 74년의 미국사회와 현실의 대한민국은 너무도 닮아있다.

인디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사회적약자(주로 흑인사회)들의 인종차별철폐와 권리보장요구. 반전주의자들의 외침에 "안보위기상황에 무감각한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를 소요로 몰고 있다!" 며 폭력으로 화답하던 시기의 모습은 어쩌면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숀 펜'이 온 몸으로 전하려 했던 소시민의 절규가 우리에게 일상화되어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 당시의 미국사회보다 더 철저히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천민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거기에 '안보장사' 가 훌륭한 서포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는 서민을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보수기득권 세력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내는 '정상적인 인식파괴'가 휩쓸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보다도 훨씬 못할지도 모르겠다.

한나라당을 대표한다는 강재섭은 토론에 나와 너무나도 태연히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절대적 지지기반인 서울강남과 부유층을 위시로 하여 '종부세납부거부운동'이 한창이다.
이미 대부분 한나라당의원으로 이루어진 기초단체에서는 '부자들 세금깍아주기운동'에 온 몸을 던진바 있다.

강재섭은(한화갑이나 신국환 역시 마찬가지이고) "부동산문제의 해법은 공급을 늘려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의원들 거의 모두! 그리고 그들의 절대적 지지충성층이 '부동산투기의 주범'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른척 하거나....,


가족들로부터까지 외면당하는 '현실부적응자'는 결국 백악관을 공격하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까닭에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는 재차 거론하지 않겠다.


'현실의 고통으로 과대망상증에 걸린 한 정신병자의 소행'을 바라보는 감흥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혁명적인 가치인식의 변화'없이 우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고 일상의 무례함을 없애고 존중받으며 고르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볼리비아의 뻬드로 뻬냐 지역 협곡에서 사로잡히던 '체 게바라'의 모습을 인질을 풀어주고 사살당하며 쓰러지는 '숀 펜'의 모습에서 발견했다면 과도한 것일까!


무장봉기가 아니어도 '가진 자를 위한 철학'에 지배되고 있는 세상을 바꾸어낼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이 있다.

그 출발이 '사회에 대한 관심과 가치권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임을..,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짓밟히거나 좌절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적당히 순응하며 버텨서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라는 진리'를...,


영화를 통해 한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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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l Issue

 

 

앨 고어 주연(?)의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를 보았습니다.

뭐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평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러한 미국의 독선적이고 야만적이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한 분노와 함께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허둥대는 '멍청한 국가'의 실체를 자주 목격해왔던 탓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가 웃기는 것은 '놀랍고도 감동적이며 공포스러운' 경험이 얼만큼의 반성과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회의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랜시간 체계적이고 치밀한 연구과정을 통해 그리고 실질적인 학술탐사활동을 통해 문제점의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의 헌신이 '한탕주의'와 '사기극'으로 온갖 오명을 뒤집어쓴 우리 과학계에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많이 있는데도 말이죠.



영화에서 앨 고어는 자주 반복적으로 'Moral Issue!'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문제 해결의 출발선이 어떤 인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미국민들의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정치적이슈!'가 아닌 '도덕적이슈!'


어제 '집권야당'의 의원들께서는 국회의장석을 장악하고 "헌법수호!"를  외치셨습니다.
그덕에 우리 헌법은 수호되었고 적어도 11월말까지는 백기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들에게는 좌파적성격이 짙어보이는(?) 헌재소장을 막아내는 것이야말로 '도덕적이슈'에 충실한 행동입니다.

연관지어 '사학법재개정'을 통해 사학의 명예를 되찾고 사학재단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일 또한 '도덕적이슈'에 가장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을 겁니다.

법인세를 최대한 낮추어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기업의 경쟁력확보와 경영활동에 이바지하는 '도덕적이슈'임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뭐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정도로 해두죠.

'집권여당'은 어떤가요.

노동, 환경, 농업, 인권, 경제정의, 사회복지....,

이 모든 것을 후퇴시키거나 가치파괴하는데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물론 대부분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라는 시점에서부터 발화되어 고착화되어 있었거나 구조적으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던 분야들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좌파정권'께서는 그러한 문제점을 치유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극단적으로 방치하거나 악화시켰습니다.

사회양극화는 해결의 방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고 부동산광풍에 찢긴 가슴을 매일매일 어루만져야 하는 서민들의 고통은 증대하고 있습니다.




위에 제시한 것들 모두 '도덕적이슈'에 관한 문제입니다.

도덕적이슈가 사회구성원들의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의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몫은 결과적으로 일반대중의 것입니다.

자신의 계급에 기반하여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이슈'인지 판단해야 하고 그에 기반하여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정치세력을 지지해야 당연한 거겠지요.

그러나 앨 고어가 세계를 돌며 '도덕적이슈'임을 강변하는 것이 사안의 중요도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우리는 도덕적이슈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들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든 '공포'는 당장 토건대통령을 자임하는 자가 내년 연말에 특집프로그램으로 인생을 조명하는 끔찍한 상상의 현실화입니다.

'경부운하'를 다룬 뉴스 밑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더군요.

"차라리 남한의 동과 서를 뚫어 동해의 물고기들과 서해의 물고기들의 일상적인 접선을 허하라!"

 

 


차기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을 과반 이상의 국민들이 첫번째로 꼽았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고용없는 성장과 노동을 끊임없이 소모품화하는 비정규직일자리의 확대'
로 돌아온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도 '근본적대안'에 대해 고민하기를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각성'이 부족한 다수의 서민계급은 그렇다하더라도 늘상 "수구보수꼴통들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비지론을 설파하던 이들의 인식수준은 더욱 심각한 위험성입니다.
벌써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즉 열심히 일한만큼 합당한 몫과 권리를 보장받고 자본과 지배권력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정책과 제도들을 온전하게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대안'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 앞에 당장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아픈 국민은 누구라도 돈이 많던 적던 구분짓지 않고 고르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대출받아 샀던 집이 거품이 빠지면서 헐값이 되고 은행빚을 갚지못해 그 집마저 압류당한 한 일본인은 지금 친구집 쪽방을 빌려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시사투나잇'을 통해 확인한 부동산거품붕괴의 실상입니다.

미친 정부와 건설족들에 의해 '제집마련의 꿈'이 점점 사라지는 서민들의 가슴앓이를 치유해 주는 것! 그리고 황새 따라간다며 빚내서 '부동산의 재테크'를 똘똘한 가정경제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수의 뱁새들의 정신을 차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더 큰 재앙에서 구출하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사회양극화의 주범인 비정규직확산을 중단시키고 탈루를 일삼는 전문직들과 재벌들에게 명확한 세원확보와 증세를 통해 사회적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소비가 늘고 늘어난 소비를 통해 내수시장이 안정화되는 사회양극화를 줄이고 사회복지예산을 확보하는 노력!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추운 겨울 교문밖에 서서 '내 자식의 사회계급번호를 앞자리에 두게해달라!'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반복되는 끔찍한 광경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왜곡되는 야만을 끝내게 하고 대학이 고시학원으로 변질된 재미없는 코미디를 중단시키는 것!
입시위주의 교육을 끝내고 최소한 독일과 프랑스 정도의 무상교육체계를 서둘러 마련하기 위해 더이상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기 전에 칼을 드는 것!
그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도덕적이슈'입니다.


무척이나 많군요.

이상적이거나 '진보적이슈'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와 내 자식의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도덕적이슈'들입니다.

당신의 지혜롭고 현명한! 하지만 단호한 정치적판단이 '도덕적이슈'들을 해결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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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던지는 질문!

 

PD수첩 700회 특집을 보았습니다.
특히 오늘 '다시 시작하는 PD수첩'을 통해 스치듯 지나는 장면 하나하나가 때로는 아리게, 때로는 분노로 가슴을 헤집어 놓습니다.


오늘 오후 지역의 한 시장입구에서 '한미FTA반대서명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한 상인은 서명을 진행한지 한참이 지나도록 옆에 서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대더니 곁으로 와서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분노'와 '집회에 동원되는 사회불만세력'에 대해 일장훈시를 늘어 놓습니다.

애초에 그분과 토론할 생각이 없었던 터라 짧지만 차분하게 '한미FTA가 재래시장 상인을 포함하는 서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안기는가'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영 마뜩치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서명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PD수첩을 통해 사회양극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서민들의 박탈감과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일반대중이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본인이 영악하지 못해서 이 사회의 경쟁구조에 부적응한 것'을 자책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저렇게 지긋지긋한 가난을 내 가족에게 부담지울 수는 없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계급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의지를 다잡는 이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잘못된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는 분도 계시겠지요.


세상을 바꾸는 일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정치세력을 원내로 보내면 됩니다.

이쯤 되면 "저 넘이 또 민주노동당 홍보하려 드네?"라고 짜증스러워 할 분이 많이 있겠으나 별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 즉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보수기득권이 누려왔던 '부의 대물림 권리'
'사회적책임을 회피하고도 당당하게 살 권리!'
'온갖 법의 허점을 이용해 탈세를 자행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권리!'
'서민들의 혈세로 회생한 기업에 아무렇지도 않게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
'언제라도 병역을 회피하거나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권리!'
가장 중요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사회적 약자들의 극단의 삶부터 치유하는 일을 시작으로 온통 뒤틀리고 야만이 당연시되는 보편적 상식의 틀을 바꾸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아니면 나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노라!"고 자위하는
386의 일부 정치철새들에게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결국 모두 배반당했습니다.

그들 모두 "피지배계급의 억울함을 달래고 잘못되어가는 사회구조를 변혁하겠노라!"고 소리쳤지만 아주 신속하게 지배계급의 품으로 휘휘 달려갔습니다.

그런 반복된 교훈은 결국 다수의 선한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종속본능을 외려 가속화시키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이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자위하던 민주노동당의 내부도 곪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잘만 하면 의원자리 하나 꿰찰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왜! 무슨 이유로 진보정당을 창당했는지, 그 험난한 시절을 견뎌내며 소팔고 집팔아 빚 갚으며 잃지 않았던 소중한 꿈"들에 반복적으로 생채기를 내던 이른바 비지론자들이 몰려 들어와 당의 주요 자리를 하나 둘씩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노동당은 더이상 진보정당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확연히 '진보정당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지닌 열우당원들을 내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임을 감히 말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쯤 되니 " 어라! 저 넘이 당홍보할 줄 알았더니 이제 지네 당 치부를 드러내고 떠드네?"라고 판단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니네 당 단도리나 잘해!"라고 속으로 외치는 분들도 몇 보이는군요.
^^


뭐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니 숨길 이유가 없는 거지요.



다시 PD수첩 이야기입니다.
이제 'PD수첩이 던진 질문'에 응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한달 생활비인 26만원을 반납하고 자살한 한 장애인의 죽음을 보며...,
도저히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시설에 맡기는 아비의 눈물을 보며...,
사랑하는 자식에게 반찬 살 돈이 없어 간장으로 비빈 밥을 먹이는 한 어미의 눈물을 보며...,
철거반원이 해머로 부수는 허름한 집안에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울먹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500만원을 받고 쫓겨난 땅위에서 나누는 정부와 건설업자와 투기꾼의 욕망의 잔치를 보며...,

사실 전 분노하지 않습니다.


PD수첩이 700회가 지난 시점과 IMF를 극복한 자랑스런 2만불국가의 자화상은 시간은 분명 이동시켰으며 드러난 이미지의 화려함으로 포장되고는 있으되 위에 너절하게 써놓은 구질구질한 가난의 흔적들은 여전히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진보는 잔인해야 한다!'

뉴질랜드가 지금처럼 복지국가로 자리잡은 내면에는 노동당집권 이후 사회변혁과정의 잔인무도함에 기반했습니다.

그 사회변혁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리고 사회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노동당은 차기선거에서 보수당에게 패했지만 보수당조차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 없었습니다.

충격 이후의 신뢰는 반복되는 실체로 드러나며 노동당 집권의 사회체제가 어떤 정치철학과 가치우선 위에 정립되어 있으며 그 존중되는 사회구성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인식시켰습니다.


친일잔재의 역사적청산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안보장사 한번'이면 엎드려 자던 개새끼도 사주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갖고 놀기 편한 대상이 즐비한 현실에서...,
사회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엮여있는 몸바쳐 충성하는 계산된 공중전화조직과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하찮은 권리따위는 잠시 잊고 살아도 된다!"는 주장에 고개 끄덕이는 '착한 대중'이 즐비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뉴질랜드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잔인하고 확고한 '야만과 모순들'과의 처절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상주의라고 핀잔이나 듣는 '최소한 영국식 NHS정도의 무상의료체계'와
'최소한 독일처럼 거의 무상으로 대학까지 다닐 수 있으며 입시지옥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체화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두다리 뻗고 쫓겨날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주택정책!'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약자들이 최소한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권리보장이 가능한 시스템'
'노동이 더이상 소모품이거나 자본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이용되는 가치가 아니라 사회발전의 거대한 축으로 인정받고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구조'를 위해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진보정당의 창당 시점과 그 창당에 진정성을 가지고 주축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인식 그 초기단계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적당히 개혁세력임을 강변하며 뒤로는 군사독재시절의 공안정국을 뺨치는 이중성으로 철저히 자본에 귀속된 자유주의 보수에 의해 자행된 '배반당한 서민들의 파괴된 삶'을 되돌리려면 보다 명확하게 보다 잔인할 정도의 의지를 전제하며 수구보수기득권과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대선을 기점으로 총선을 정점으로 보다 분명한 '사회체제'를 향한 실천들이 가시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이들을 향해
'조롱을 보내는 자신'이거나
'어깨를 툭 쳐주는 동의의 인식'이거나...,

그 선택은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따른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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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가장 최근의 정당지지율조사에서 '드디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6%대로 진입했습니다.
이제 민주당에도 밀려 완연한 만년 4당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총선시점에서 2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2기 지도부가 반토막을 냈고 3기지도부가 그나마 있던 지지율을 반토막 냈습니다.

 

물론 온전히 지도부만의 책임은 아닐겁니다.
당내 좌파든 우파든 아니면 후원회원의 실천에 머물고 있는 무정파의 '존재만 당원'들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석에서 늘상 일본정치를 반면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본정치는 현재 완벽히 보수정당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일본민중들의 우경화가 기반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적 분석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노동운동의 쇠퇴와 이른바 사회주의 정당들의 '닭짓'에 민중들이 등을 돌리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진행될 수 있었던 기회를 제 스스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고스란히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제가 어느 사이트에 올린 글 밑에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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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철회로 넘어가기 까지 딱.. 1cm 정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때 이후로 민노당은 철저하게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요딴 걸로 구설수에나 오르내리고.. 간첩단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게 아니고.. 이 사건 전까지 민노당이 언론에 뭐 색다르게 이슈화 됐던적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삼성 파일 공개하던 모습 하나 만으로 지금까지 버틴건데.. 정말 이제 지지 철회 까지 얼마 안남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와서 매번 느끼는건데.. 쩜만 공부했다 하면 유식하고 복잡한 언변으로 논점만 흐려 놓는 사람들도 짜증납니다. 말꼬리 잡아서 논점 흐리기도 보고 있자면 지겹구여.. 점 지발 지발점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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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민주'노동'당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왜 민주노동'당'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진보연'하면서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치고 "이유 있는 핵은 진보다!"라고 삽질을 하고 있는 걸까요?

 

어느 하청노동자가 산재로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복직이 거절되자 자살한 사건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졌는데...., 2년이 넘도록 거리를 헤매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데....,
왜 우리는 김정일군부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요.(아니라구요?)

 

직장에서 짤리고 수중에 남은 돈과 빌린 돈을 모아 식당 하나를 차렸지만 월세 내기도 힘들어서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면서도 병원비를 걱정하는 '야만적인 제자신'을 증오하는 부모들이 넘쳐나는데....,

 

왜 우리는 틈만 나면 자유주의보수정당을 찍으라고 강변하는 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랑스런 인자들에게 능멸당하며 '진보정당'의 깃발을 움켜쥐고 있는 걸까요?

 

 

확인되고 있다시피 '민족통일'은 당내자주파가 별 짓을 다해도 북한군부가 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미제식민지인 남한'이지만 '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김정일군부가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체제보장을 최우선으로 마르고 닳도록 '위대한 영도자'로 군림해보려는 계획들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대치와 긴장은 유지되어야 하고 미국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목적화되어 있습니다.

 

 

'이유있는 핵'을 주장하던 분들은 "미국의 약속불이행과 압박이 원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핵무장은 김일성 생존시점부터 진행되어 왔던 것이고 심지어 박정희도 핵무장을 추진했던 바 있습니다.
고스란히 대입시키면 박정희의 핵무장도 '자주국방'인 것이고 '이유있는 핵'입니다.

 

 

결론입니다.

왜 우리는 '당'하고 있는걸까요?

 

아니 다시 묻겠습니다.
왜 우리는 '진보정당이자 민주노동당' 하자면서 '민족통일당'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 왜 우리는 "민족통일은 니들 소설이고 우리는 철저히 정치적판단으로 체제유지하겠다!"는 '핵'움켜쥔 옆동네 친구의 손을 섬섬옥수 바라보듯 하는 걸까요?

 

 


'너'에게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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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계곡

 

조희연교수가 레디앙에 '절망을 급진적열망으로'라는 좋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시간되시는 분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3542

본문중에 "우리는 아직 '전환의 계곡'에 도달하지 못했다."라는 구절에 동의합니다.

몇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계급적각성'이 기반되지 않는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재벌과 보수기득권, 강남을 위시로 하는 이 땅의 부자들은 철저히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이 어디인지 그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계급적각성'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대다수의 계급적인식은 어찌된 노릇인지 그들의 이익에 복무합니다.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종속시켜 나갑니다.

검단신도시 발표가 나간 이후 검단지역의 대다수 부동산을 소유한 이들은 '축제분위기'입니다.
웃기는 노릇은 부동산거품이 결국 상대적박탈과 피해를 수반한다는 판단 없이 그저 "왜 나는 진작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했나!"라는 자책이 피지배계급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남의 아파트 한채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3대가 저축을 해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공범'이 되어가는 대다수 서민계급의 보편적 인식을 비웃고 있습니다.

며칠전 KBS '시사투나잇'을 보니 서울의 어느 분양아파트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의 통학로옆에 쳐 놓은 철조망에 아이들이 얼굴을 다쳤더군요.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항의했지만 분양아파트 주민들은 생까고 있고 그 흉물스런 철조망은 여전히 계급적 장벽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이성과 사회적가치'를 파괴하는 현상에 대해 이 사회의 피지배계급은 일시적으로 분노할지 모르지만 지배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해서 또한 인식을 추동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수인 사회적약자의 연대를 통해, 계급적판단에 기반한 정치적 선택을 통해 몰가치적이고 비이성적인 사회구조를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아니 어쩌면 노력도 해보지 않은채 미리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은 '전환의 계곡'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웃자란 민주주의의 사회적발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럴까요?

며칠전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산재를 입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 다시 일하려던 이가 복직이 거부되자 자살했습니다.

1년이면 3천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고'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다시피 한 노동자들이 90%에 육박합니다.

올 한해만 상장기업들이 엄청난 흑자를 거두었다지만 오히려 고용은 줄고 있고 그 고용마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재앙이 될 것이 뻔한 한미FTA협상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의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전환의 계곡'으로 향하던 물줄기는 그 방향을 되돌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이미 거꾸로 흐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를 모두 밀어서 평지로 만들거나 강따위는 화물이동에 필요한 수단일뿐이므로 갈아 엎고 뚫어버릴' 기세의 토건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시기에 살면서, 술먹고 여기자를 주물러도,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도, 피감기관에서 버젓이 골프를 쳐도 지지율은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해주는 기가막히는 현상을 매일 목격하면서 '전환의 계곡'에 들어와 있음을 말하는 것은 참 웃기는 일입니다.


'진보개혁'하겠노라고 사기만 치다가 자유주의보수의 비극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노무현과 열우당의 사기극에 치를 떨면서도 결국 변화를 위한 실천보다는 물꼬를 돌리는 길에 합류해버리고 마는 피지배계급의 상태는 우회전하여 거침없이 거꾸로 달리는 '반공,보수,친미종속,신자유주의강화'의 얼굴에 더할 나위없는 격려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년 대선을 바라보는 입장을 보아도 상식적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는 많은 분들조차 지지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이미 '대세는 기울었음'을 자조섞인 분석으로 내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석따위는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립시다.

누가! 어느 집단이 집권하느냐의 여부보다 계급적 각성없이 한없이 끌려들어가기만 하는 인식파괴현상을 막아서는 노력이 얼만큼 시도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전환의 계곡으로 물꼬를 돌릴 여지는 충분합니다.

함께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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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空轉)의 정치학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짚어둘 것이 있다.

공전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공전의 결과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으로 나타나는가!

대개의 경우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토론을 진행하다 보면 해법의 가느다란 끈

한조각이라도 붙잡을 수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초에 토론의 시발의제 자체가 공전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

공전의 에너지는 더욱 맹렬한 속도로 증가할 뿐이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에 느닷없이 '반핵논쟁'이 뜨겁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유 있는 핵'이라는 돌연변이가, 잠복해 있던 '사칭진보'의

실체를 드러내는 '긍정적효과'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쯤되면 외연적형태는 분명 '공전'의 모습이되 정치적으로는 훌륭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과정일 수 있다.

바바리맨도 자주 보면 질리듯 또 제 딴에는 예술적 페이소스를 꿈꾸는 합당한

이탈을 몰라주는 사회구조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조히즘을 통해 욕구를 발산하려는 도착자라면 그 바바리맨은

여학생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야 견딜 수 있는 서글픈 사회적치료의 대상이다.

 

 




1. '유감과 반대'사이 그 건널 수 없는 루비콘강

히로히토가 '통석의 념(痛惜의 念)'이란 발언을 했을 때 이 땅의 많은 이들은

부실했던 한문공부를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 뜯었던 공통된 경험이 있다.
불분명한 시대에 살면서 모호함은 어느덧 우리의 무기요! 긍지가 되었다.
게시판에 즐비한 '선군정치의 자긍심'은 분명 유감(有感-느끼는 바가 있음)의

골격을 '이유있는 핵추앙'으로 뒤덮고 있는데 우리의 '다수'중앙위원들과 '

다수'최고위원들께서는 "그건 그것이 아니다!"라고 손사레를 치고 계신다.

오호 통재라!
민주노동당에 '호찬호반'을 허하라!

민주노동당이 서자정당도 아닐진대 언제부터 '찬성을 찬성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반대를 반대라고 부르지 못하는...,'

로마공화정시기에, 도달하여 군대의 지휘권을 포기해야 했던 루비콘강은 이렇게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포기할 수 없는 '반대'란 형태의 지휘권을 빼앗길 수 없는

용기로 살아숨쉬고 계시다.

 




2. 편견과 꼬장

'이유있는 핵'주의자들은 지나치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기검열에 들어가 버렸다.
" 아! 씨바~ 내가 생각해도 나의 변절이 자존심을 거드리는군. 이쯤되면 그냥

프라이드로 가는거야!"

아무리 눈살 찌푸리는 이종격투기라 한들 '현피개싸움'이 아닌이상 엄연한 룰이

있을진대 우리 '이유있는 핵'주의자들의 반대편에 선 자는 몽땅 당 망치는 <전진>

이며 <반북주의자>일 것이라는 환각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호흡이 곤란하면 산소공급이 불규칙하고 가뜩이나 부족한 판단능력이 가공의

실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놓치면 안돼!'
단말마는 어느덧 주술로 보우하사 행여나 흔들릴까 고이 접어 견뎌내는 것이다.

자기검열의 비극이다.

 

 



3. 공전의 정치학

앞에서도 언급했듯 공전과정에서도 유의미한 정치적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우리 안의 '한심한 수준'으로 일반화되어지는 정치적타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결과론적 한계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웰빙시대에 흑미도 아닌 것이 백미도 아닌 것이 어중간한 '반미'로 희화화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억울하게 세트로 묶여 "건강에는 반미가 최고에요!"라고 개그질하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요일에 당원대회가 열리는 '열린 시민공원'에서 우리는 부모를 잃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찬바람 몰아치는 개그사냥의 계절에 '반미반전'의

영양학을 고민해야 한다.

'이유있는 핵'파문이 HID전우회에 "쟤들은 잃어버린 우리 전우일지도 몰라!"라는

화두를 던지는 지금!
'반미반전'구호와 '북한침투승인! 우리도 핵무장!'의 구호가 어깨걸고 함께 외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족: 종북주의자(명확히 김정일군부추종주의자, 선군정치 추종주의자)들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공전을 멈추고 싶다면 제 몸 구석 어느 곳에 버림받은 채 울고 있는 '반대'를 찾아

보시라!
'반대'를 찾아 호기있게 던지며 "이제 네 패를 까라!"라고 외치면 <반북 친미 플러첸

키보드좌파>가 아닌 '반미반제'의 길에 서 있는 '앉아번호로 운동장 열바퀴' 동지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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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종북주의자들의 궤변

 

요즘 북핵실험에 이어 PSI까지 한반도에 긴장감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수구보수꼴통들은 물을 만난듯 거침없는 발언과 행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종북주의자들 또한 "이참에 맞짱 한번 뜨자!"는 호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종북주의자가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니(사실 비슷한 수준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더군요.)"당내 좌파들이 '미국에 의해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미국도 나쁘지만 북한도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양비론'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민주노동당은 핵무기뿐 아니라 핵발전소도 반대하는, '지구상에서 핵을 없애야 한다!'는 '반핵'을 이념으로 삼고 있는 정당입니다.

종북주의자들 역시 반전반핵에 동의해 왔고 부안의 핵폐기장 투쟁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명확히 북한민중이 아닌 북한 김정일군부의 체제유지를 위한 핵무기실험을 두고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이 끝갈데 없는 저열한 인식의 발언들을 거침없이 내어 놓는 것을 보며 정확히 김정일 군부독재체제("북한인민들이 선택한 체제이고 아무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체제이다."라고 종북주의자들은 말합니다.)에 종속되어 있는 군상들의 실체를 확인하게 됩니다.

얼마전 어느 지역의 상근자를 위원장이 채용했는데 우리 위대하신 종북주의자 사무처장께서 그 상근자가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는데 일조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완강하게 채용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납북자문제 등에는 철저하게 외면을 하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탈북한 북한민중은 '위대한 북한군부체제'를 배반한 배신자쯤으로 인식하는 그 한심한 사고체계는 전혀 변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요일 중앙위에서는 특별결의문의 '핵실험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두고 핏대를 세우더니 결국 쪽수를 이용해서 부결시켰습니다.


어느 종북주의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이 미국의 온갖 탄압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핵실험은 자위적 수단이다.
그러니 민주노동당 또한 자위적 북한핵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죠. 남한 내의 종북주의자들은 이처럼 북한군부보다 더 군부스러운 충성심으로 조변석개하며 쪽팔림을 감수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위대하신 제너럴 김께서는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을 남한자본가들이 비정규직 바라보듯 바라보고 계시니 어쩝니까!

북한 군부는 철저하게 반미를 주창하면서도 미국과의 단독협상에 매달렸고 남한정부조차도 배제시켜 왔습니다.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이 몰려있는 민주노동당조차 조로당이 아닌 위성정당인 조선사회민주당따위에서 초청을 하는 지경입니다.

때로는 박근혜와도 포토파티를 열고 한나라당을 돕기위해 '총풍'도 거침없이 해주며 철저하게 군부독재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과 방법만을 모색해 왔습니다.

6.15가 아니어도 북한군부가 남북정상간의 약속을 지켜 나가고 미국의 경제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남한정부와의 경제교역을 확산하고 경의선개통과 남한의 에너지공급수용, 각종 사회인프라 확충에 지난 몇년을 주력했더라도 미국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아니 남북간의 자발적인 각종 교류와 발전적 지향들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거는 것이 명분이 없는 것이었겠지요.


남북민중을 볼모로 체제유지를 꾀하는 김정일군부를 위해 너무나도 저열한 변명과 궤변을 일삼는 종북주의자들은 더이상 '진보'정당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반전평화는 진보정당이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근본적 가치이며 '종교적근본주의'와도, '제국패권주의'와도, '전제적 군부독재체제'와도 진보정당은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도대체 남한의 종북주의자들은 무슨 가치를 위해 살고 있는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정작 김정일군부조차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지들만의' 통일관점으로 남한사회의 수구꼴통들의 방어기제 근거를 제공해주는, '결과적 반통일세력'으로 준동하는 이 기가막힌 현실에 대해 준엄한 비판이 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비판을 하면 우리 종북주의자들께서는 그러시더군요.

"이 반북, 반통일분자! 관념적 키보드좌파! 곧 원유생산을 앞두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너는 알기나 하냐! 수구보수언론에 길들여진 한심스러운 존재!"

뭐 이런 발언들을 쏟아 놓습니다.

움...,

대개 이런 인자들은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이미 영적으로 장군님을 받아들인 존재들에게 저 또한 합리적 판단을 주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설프게 민족주의와 통일문제에 접근하여 감화되었거나 길들여지기 시작한 어린 양들은 구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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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결과가 발표되었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이번 북의 핵실험에 대한 세 사람의 주장을 전제한다.


"일본의 핵무장, 중국, 타이완, 한국정부의 연쇄적인 핵관련 반응은 동북아에서 북한의 대외안보환경의 악화를 의미하며 북한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것"

- 백학순(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


"북한의 핵보유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요인이 될 것이며 내년이 일본 평화헌법 개헌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정택상(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


"북이 핵실험을 하게 되면 북은 고립될 것이고 미국은 유엔을 통한 다자 제재와 미일 제재에 나설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이 노리는 게 바로 이것. 북한이 미국과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싸우는 방식이 문제이며 북 핵실험은 국내외 평화 진보세력의 입지를 좁힘으로써 북한의 협상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 윤영상(평화공감 선임연구원) -


일부 덜 떨어진 인자들말고 북의 이른바 '자위권 행사'에 방점을 둔 해석이 분분한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노릇이다.

북한이 핵실험카드를 빼들게 된 과정에 대한 이해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통해서 충분히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위에 전제한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북의 핵실험을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나라가 인도와 파키스탄이다.

즉 북한도 더이상 빼들 협상카드가 바닥난 시점에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각인시키고 협상파트너로서의 존재감을 인정받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지정학적으로 북한이라는 존재가 핵무장을 하게 되면서 일본에게는 헌법개정과 핵무장의 빌미를 제공하고 군사패권주의를 강화시키는 촉매제로 작동한다는 것이고 궁지에 몰린 미국의 네오콘들에게는 군사적 중요도뿐 아니라 국제경제의 절반을 주무르는 '한,중,일 경제체제의 신자유주의 고착화'라는 마스터키를 틀어쥐게 생겼다는 것이다.  

한,중,일의 정치체제가 국가사회주의이든 보수우익이 장악한 시스템이든간에 이 과정은 민중중심적 패러다임이 파고 들 여지를 국가안보와 생존권이라는 키워드가 봉쇄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비핵화'가 중요한 것은 비핵지대로서의 평화적 가치뿐 아니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줄여 나가고 군축을 통한 남북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발전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미,중,러,일의 패권주의 합리화' 빌미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북한은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었고 '선군정치'를 위시로 한 현 체제의 유지가 최우선 과제였음을 이번 핵실험을 통해 '확인'시켜준 셈이다.

북한이 핵실험카드 대신에 경의선 복원과 함께 한반도 종단철도(TKR)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실질적 사회경제인프라 확보에 나서는 등 구체적이고 점진적인 경제협력을 위한 실천에 나섰다면 남북한뿐 아니라 군사대결로 치닫는 동북아정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남한내에서 아마도 가장 강력한 김일성주의자들의 대표체로 불릴 법한 '주미철본(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의 호소문 <이제 '핵실험'과 함께 미제 놈들과 사생결단을 내자!>를 살펴보면 북한군부보다 더 북한군부스러운 존재들의 인식 수준을 살필 수 있다.

그러한 인식들과 김용갑류의 인식이 결과적으로 동일선 상에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과거 '총풍'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치경제적 흐름으로 남한사회를 밀어 넣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민주노동당 내의 충성스런 김일성주의자들은 '진보진영 상설연대체'따위의 한심스런 고민이나 하고 자빠졌다.

군사패권 강화를 도모하고 민중중심적 체제대안의 기회를 봉쇄해가는 과정에 일조하는 무리들이 '진보'를 참칭하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어쨌든 내년 대선은 이미 결과가 드러났다.

한나라당 내의 경선이 예비대통령을 뽑는 치열한 아귀다툼일 것이다.

북한군부는 2006년 신년교시를 통해 '반한나라'의 기치를 세우더니 2006년이 가기도 전에 '한나라정권'을 옹립해 주었다.


참으로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다.
꼴통스러운 것은 부시를 능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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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오류와 무능

 

 

김기덕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진행중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관점은 대부분 "괴물과 관객의 수준"이라는 코멘트에 머물고 있다.

김기덕이 설사 봉준호를 두고 "저질영화나 만드는 감독"이라고 폄하하든 "영화<괴물>은 철저한 상업영화이므로 내 영화와 비교대상이 안된다!"라고 하든 그것은 감독으로서 그의 관점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그 코멘트 역시 기자회견의 주내용이 아니라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으므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어느 포스트를 보니 김기덕에 대한 비판은 정작 영화 <괴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관객의 수준'을 언급한 지점에서 이른바 '괘씸죄'적 성격이 짙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 비판은 김기덕 기자회견의 주내용에 맞추어져 있다.

"앞으로 국내개봉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라는 것! 그리고 단서조항으로  "영화<시간>이 다른 영화들의 국외개봉 성적처럼 20만명 이상 들게 되면 그때부터 차기작의 한국 정식 개봉을 준비할 것"이라는 것이 김기덕의 기자회견 주내용이다.

영화 <시간>이 20만 이상 들리는 없을테고 김기덕의 영화는 국내극장에서 앞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어쩌겠는가!

자신이 만든 영화를 인정해주지 않는 국내가 아닌, 높이 평가해주는 외국에서만 개봉하겠다는데....,
 
그것은 제작자본이나 판로의 문제뿐 아니라 영화를 공유해줄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우리는 김기덕이 검은 썬글래스까지 끼고 나타나 사뭇 심각하게 외친 단말마에 대해 이렇게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되었을 일이다.

"그래라!"


개인적으로 영화는 '소통의 가장 위대한 수단'이라고 판단한다.

영화만큼 글과 음악! 미술과 영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또 있을까!

그것이 가슴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되었든, 사회성 짙은 '다큐성 영화'이거나 인간승리를 스포츠란 소재를 통해 전하려는 '스포츠영화'가 되었든 영화를 통해 짙은 여운과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를 '한번 더' 고민해보려는 과정이 파생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영화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장르이거나 어떤 주제를 담는다한들 그것이 감독의 연출력만을 가지고 '좋은 영화'로 만들어질리는 없는 법이다.


그 역할에 맞는 배우가 '제대로' 연기를 해내었는가!의 여부.
해당 씬에 너무나 부합하는 공간과 소품들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객들의 포만감을 충족해주고 있는가!의 여부.
전체적인 시나리오와 더불어 최종편집까지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며 단절감 없이 관객들에게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었는가!의 여부.


물론 김기덕은 영화의 많은 영역에 참여하며 자신의 '생각'을 가장 많이 전달해 왔다.

여기서 가장 원초적인 판단이 남는다.

그래서 김기덕의 영화는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인가?

흥행여부의 세속적 판단이 아니라 그가 다룬 소재와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얼만큼의 무게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는가!

김기덕의 관점대로라면 장준환이나 김동원감독조차 자신들 영화의 국내개봉을 접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김기덕의 오류는 자신의 영화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국내에 '많지' 않다!라고 판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국내관객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감독임을 고백한 셈이다.

 
정작 구조적인 한국영화의 문제점을 짚을 요량이었다면 하다 못해 봉준호처럼 외국영화제에 나가 스크린쿼터사수 피켓시위라도 하든가! 독립영화쿼터제라도 주장했어야 할 일이다.

하다못해 열악한 제작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권리향상에라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할 일이다.

산적해 있는 영화판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한 채로 자신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무능한 일도 없는 것이다.
  
언제인가 "상업영화감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던 장윤현을 보며 그 손쉬운 사고체계에 대해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5만이 보든 10만이 보든 영화적 완성도와 함께 감독이 전하려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으며 공유했다면 그것은 '좋은 감독'이 만든 '좋은 영화'이다.

자본에 종속된 한국영화의 현실에서 흥행은 철저히 머니게임이고 흥행의 고리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감독 스스로의 존재상실이다.

자신의 영화가 개봉관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줄어들거나 봉쇄된다면 영사기와 필름 몇 벌이라도 차에 싣고 '주민영화제'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기덕 영화와의 만남'이라도 개최하고 상영 후 토론도 즐기며 공유하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법이다.

좋은 장소와 소재를 찾아 수시로 떠난다는 여행의 시간에 차라리 자신의 영화를 통해 담아내려 했던 의미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감독으로서 보다 '훌륭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투덜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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