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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공화국(갈무리됨) by 공희준

- 강남파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 재경지역 판사의 절반이 강남지역 출신

초임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울지법과 지원의 평판사의 경우 최근 재경지역 내의 강남 비율은 20%대였으며 42기에는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강남지역 출신 고등학교의 급격한 성장과 외국어고(특목고)로 대표되는 서울지역 출신들의 판사로의 대거 진출은 과거 지배계층이 혼맥을 통해 법조인을 끌어들였던 시대를 넘어 직접 판사를 재생산하는 단계로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경제력을 가진 계층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성적에 의한 판사 배출이라는 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교육여건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강남 출신 판사 집중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겨레신문이나 오마이뉴스에서 발췌한 문장이 아니다. 진골 강남신문 조선일보 따라하기에 여념이 없는 6두품 강남신문 동아일보에서 발행하는 주간동아 제457호(2004.10.28)에서 갈무리해온 기사다. 따라서 강남떨거지들은 내가 강남을 흠집내려고 일부러 좌파문건을 인용했다고 시비를 걸지 마시기 바란다.

70년대를 암울한 겨울공화국으로 만든 질곡은 유신체제였다. 80년대를 억누른 먹구름은 광주학살의 원죄였다. 90년대는 IMF로 끝장이 났다. 그럼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을 말아먹는 근본적 사회악은 무엇일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선언하겠다. 그것은 '선출되지 않은 강남권력'이다.

이제껏 강남의 권력은 주로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의 형태를 띠어왔다. 강남부자들의 돈과 8학군 기자들이 펜끝에 강남 패권주의는 의존해왔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만큼 욕을 먹는 분야가 또 있으랴. 정치인 이상으로 손가락질 받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권력 중에서 정치는 유일하게 국민의 통제하에 놓인 영역이었다. 오직 정치만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이었던 셈이다.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은 본질적으로 세습되는 권력인 까닭이다.

시각을 넓혀보겠다. 대한민국 재벌들이 상태가 개판이라고 해도 함부로 못하는 일들이 많다. 현대가문은 정주영-정몽준 2대에 걸쳐 대권에 도전했다가 미역국을 마셨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상속은 이병철로부터 이건희로 넘어갔던 것처럼 수월하지 않다. 삼성그룹이 이재용을 오너로 등극시키고자 온갖 기상천외한 편법을 동원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세상이 맑고 투명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수시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본원로는 이회장이 일정부분 한국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몫이 분명 존재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삼성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삼성본관에 한 한달 정도 죽치고 앉아서 삼성이란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저력의 원천을 체험학습할 요량이다.

이건희 회장이 비록 강대한 경제권력을 소유했을망정 성역은 아니다. 걸핏하면 사법처리 대상에 올라 법정에 선다. 지구촌을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유명 경영자로서 참으로 죽을 맛을 게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실로 요상하기 짝이 없다. 수십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재벌회장도 심판하는 무소불위의 지엄한 권력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일개 사법연수원생에게는 기도 펴지 못한다. 코미디는 현실을 거꾸로 반사한다.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에서는 서울법대을 졸업한 주인공이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먹고 술값을 내려고 하지 않다고 한대 더 맞는 장면이 나온다.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묘사다.

나는 강남부자들을 위해 기소하고 변호하고 판결할 사법연수생들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왜 국민의 피땀으로 조성한 혈세가 투입되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수출역군으로 외화벌이라도 하잖아. 사법연수원 구내에 수출용 봉제공장이라도 들어섰나. 미싱 한번 돌려보지 않은 강남부잣집 자제들이 뭘 안다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사법부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정도껏, 요령껏 굽어져야 한다. 과도하게 굽어졌다가는 팔에 깁스를 해야하는 수가 있다. 근자에도 심심찮게 들린다. 속된 말로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리디 어린 판검사들이 음주운전하다가 택시를 들이받고는 아버지뻘 되는 택시기사의 뺨을 후려쳤다는 서글픈 소식들이.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말리던 경찰관의 멱살까지 잡고 흔들었다는. 그렇게 깽판을 쳐서 민폐를 끼치고도 모처에 전화 한통화 걸고 유유히 사라져 모두를 황당하고 허탈하게 만들었다는.

국회의원이 그랬다고 가정해보자. 오징어타법의 마술사인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은 오징어다리로 사람을 때렸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유명 연예인이 동일한 행패를 저질렀다고 상정해보자. 스포츠신문 1면에 도배가 되어 연예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지경인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입었으리라. 나라면 지금쯤 합의금 장만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터.

강남에서 술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옆자리의 젊은 녀석이 버르장머리없이 까분다고 혼내줬다가는 신세 무지하게 조지는 경우가 있다. 그 젊은 놈의 아버지가 판사이고 검사이고 변호사일 때는 집안 기둥뿌리 뽑힐 각오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먹고 죽어도 강남에서 술을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골빈 강북인이나 지방민들을 대하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강남에서 먹고 죽으나 강북에서 먹고 죽으나 지방에서 먹고 죽으나 귀신은 때깔이 좋지 않다.

강남권력의 특징은 국가권력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상대적으로 옅다는 점이었다. 굳이 골치 아프게 시시콜콜한 정치쟁점이나 행정현안에 사사건건 관여하지 않아도 그들은 잘 먹고 잘 살아왔다. 한국사회가 확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지들끼리 세금도 내지 않는 불로소득으로 잘먹고 잘살 것이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서민대중이야 피골이 상접해 등골이 휘든 말든.

'10·21 헌재쿠데타'의 정치적 함의는 종래에 현실정치에 상대적으로 초연한(척 하는) 입장을 견지해온 강남부자들이 위헌판결의 형태로 적극적이면서도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강남부자들의 금송아지는 건드리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의 의미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뒤에 숨어서 아웃복싱으로 외곽만 때려서는 불충분하니 사법부를 선봉으로 내세운 격렬한 인파이팅으로 전환해 국민에게 정면으로 맞짱을 뜨겠다는 대담하고 뻔뻔스런 선전포고로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강남부자들도 안다. 대통령 직선제로는 8학군 기자들이 용을 써대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한 가능성은 요원하다. 영남유권자들의 좀비근성만으로는 의회권력 독점도 용이하지 않다. 행정부도 입법부도 강남의 지령에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장악되었다. 그럼 남은 대안은? 당연하다. 사법권력에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두르는 것이다. 사법권력을 부지런히 점령해가고 있는 강남판사들의 약진은 잔존한 사법권력만이라도 악착같이 사수하려는 강남의 무한한 이기적 욕망을 반영하는 통계적 수치라 하겠다.

헌법재판소의 운영방식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의 정치체제와 상당히 닮았다는 점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측면에서도 헌법재판소나 소련공산당 정치국이나 대동소이하다.

우선은 충원기준이 엇비슷하다. 당성과 성분이 입증된 충성스런 공산당원만 정치국원으로 발탁될 수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시를 통과한 법관들만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부임할 자격이 있다.

핵심은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소련 정치국과 헌법재판소는 인민의 이해나 국민의 요구를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 소련 정치국은 특권층(노멘클라투라)의 이익을 견결히 옹호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소수의 강남부자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리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민 여망과 국민의 여론과는 배치되는 결정과 판결을 남발하려니 자연히 논리가 옹색해지기 일쑤다. 소련공산당 정치국은 케케묵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에서 이론적 근거를 구했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조선 초기에 제정된 경국대전에서 판결의 정당성을 마련하려 발버둥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부패한 과두제의 철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소련 정치국과 대한민국 헌재의 의사결정절차는 지극히 은밀하고 음습하다. 명목상 국민의 의사를 위임받았다고는 하나 장막 뒤편에서 어떠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비밀에 부쳐진다. 논의의 결정사항은 서기장이나 헌법재판소장에 의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데 논의내용이 공개되는 동안 배석한 여타 정치국원이나 재판관들은 냉소를 머금은 채 로봇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매서운 눈매를 가진 정치국원들과 재판관들은 청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높다란 단상에 일렬로 앉아 한껏 근엄하게 무게를 잡은 권위적인 태도로 객석을 내려다본다.

본인이 생각해도 엉터리로 여겨질 어설픈 논리에 기대어 판결을 낭독하는 헌법재판소장의 당혹스런 표정에서 나는 마지막 임종직전의 소련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부여안고 가쁜 숨을 내쉬던 브레즈네프의 검버섯 돋은 얼굴이 연상되었다. 정통성이 결여된 선출되지 않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전제권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한 말로를 겪나보다. 브레즈네프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관들은 이라크 파병을 추인했다.

선출되지 않은 절대권력, 견제받지 않는 과잉권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인민에게서 괴리된 경직된 정치체제가 한계상황에 다다른 순간 소련은 망했다. 공익적 관점에서 편견과 사심없이 판결을 내려야할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스스로를 강남 땅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무조건 맹종하는 '8학군 정치국'으로 격하시켰다. 안그래요? 윤영철 서기장 동무!

국민은 똑바로 미래로 걷는데 홀로 봉건왕정시대를 향해 게걸음을 걷는 헌법재판소도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이다. 나는 강남부자들이 최후의 승부처로 사법권력을 집단적으로 선택한 게 역설적으로 다행스럽다. 원래 도둑놈들은 옹기종기 모여있어야 나중에 일망타진하기에도 수월한 법이니까. 2004년 10월 21일은 강남권력과 사법권력의 일체화를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기념비적인 날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낡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몰고 '강남만세'를 외치면서 국민에게 가미가제식의 자폭테러를 가한 치욕스런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강남부자들과 법조귀족들이 나란히 손잡고 흙덮고 자겠다는데 누가 만류하겠는가. 대신 본원로는 굳은 결심을 해본다. 결코 죄짓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육법전서 이외에는 쥐뿔도 모르는 강남판사들이 나를 재판하는 꼬락서니를 용납할 수 없다. 진정 정죄되고 단죄받아야할 죄인은 강남판사들과 8학군 정치국이기 때문이다.

- 공희준(confuciu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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