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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 Youngsu
April 30, 2008 -- For the South Korean left, the general election of April 9 was another fiasco following the presidential election last December, in which the election of Lee Myung-bak brought forth the return of the conservative government, while Democratic Labor Party (DLP) candidate Kwon Young-gil received just 3 per cent of vote, less than the previous result in 2002 -- a drop of 300,000 votes.
The DLP won two constituency seats and three seats from the party list, with 5.6 per cent or 973,345 votes. The DLP's seats were halved compared with the result of the previous election in 2004 of 10 seats, two constituency seats plus eight list seats, respectively. The Progressive New Party, which split from the DLP, won no seats; it obtained 2.94 per cent, less the threshold of 3 per cent. In sum, the two leftwing parties suffered defeats in the election.
Main results of the election
In this election, the ruling Hanara Party won an overwhelming victory of 153 seats in the 299-seat congress. With the votes from other conservative groups, conservative MPs hold more than 200 seats, beyond the line for constitutional reform, while the opposition Unified Democratic Party (UDP) won only 81 seats. In that sense, conservative analysts claim this election is the final punishment for the Roh Moo-hyun government.
Result of the April 9, 2008, general election
Voting rate 46.1 %
Constituency Party List Seat
However, the most important fact in the election was the historically low turnout of voters. Only 46 per cent of voters cast their ballots and more than half of voters abstained from voting: 17,389,206 out of 37,795,035 voters. It means the vast majority of people lost hope in electoral politics at all, and the political institutions represent less than half the people. The allegedly ``absolute majority'' of conservatives, in fact, represent the opinion of the minority.
Furthermore, though the Hanara Party won a huge victory, its triumph is rather incomplete. Park Keun-hye led a court rebellion, both inside and outside the party. Her faction won about 40 MPs, and outside the party, Pro-Park Solidarity won 14 seats. This group was composed of pro-Park politicians who failed to win Hanara's candidacy and ran as independent candidates. Thus, President Lee's control over the party is vulnerable to a possible split or internal division.
Former Hanara presidential candidate Lee Hoe-chang's party, the Freedom & Advance Party, succeeded in surviving as a local party dominating the Chungchung area. Another conservative party moves the institutional politics further to the right. Many independent MPs were conservatives.
In contrast, the UDP's loss is serious. The Democratic Party lost almost half its seats, down from 152 to 81 seats. And many of its leading figures, including even the party's presidential candidate and party representative, lost their constituency seats. After 10 years of rule, the party not only failed to complete the democratic reforms, but also pursued neoliberal policies, thereby destroying its own support base among the middle and lower classes.
Progressive forces
The DLP's loss was expected, but considering the fiasco in the presidential election and the subsequent split of the Progressive New Party, the five seats in the parliament means its survival as a party. However, considering the support from the Korean 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leaders and other popular movements, the result was modest. Without the unexpected victory of Kang Ki-gap in Jinju, the party's profile would have been hampered more seriously. And ironically, Kwon Young-gil, the party's presidential candidate, who is mostly responsible for the poor result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saved his constituency seat.
The Progressive New Party failed to enter the parliament. The leaders of PNP, Shim Sang-jung and Roh Hoe-chan, popular former DLP MPs and media stars, lost in the constituency election. And from the party list, the PNP won just 2.94 per cent. Within the party, some members claim a victory and that there is potential, while others are critical toward the leadership's shift to the electoralism.
The extra-parliamentary left groups didn't participate in election, and criticised both the DLP and PNP as reformist parties. However, the leftwing groups outside the DLP are required to take an attitude toward the PNP, which is supposed to be refounded after the election. Especially former KCTU president and former DLP MP Dan Byeong-ho's position is important, because he disaffiliated from the DLP but refused to join PNP, insisting on building a genuine workers' party.
Perspectives
The rearrangement or reconfiguration of politics, as well as progressive politics, is inevitable. The Lee Myung-bak government is going to start its neoliberal offensive on a massive scale, possibly initiating his ambitious, but insane, project of a great canal through the peninsula. But his government will be faced with high expectations and tough resistance from the both sides. And if Lee Myung-bak fails to obtain any tangible economic outcome in a short period, his leadership will be challenged from within his party and outside.
On the other hand, the labour, popular and social movements lost at the presidential and general elections. Thus, under the impact of defeats and splits, the legitimacy of the movements is still in jeopardy. Though the DLP survived narrowly, the leadership and political capacity of the movement will be put to the test. And the PNP will be put to the test of surviving as an independent political force, independently of the majority national liberation current.
And the radical left that has been critical to the DLP will have to make a decision about how to intervene in the political rearrangement/regroupment of South Korea's leftwing politics. Especially, the leftwing of PNP wants to build a broad left party which is distinct from the DLP, though radical left groups still have some doubt about PNP left's real intention. In any case, the reconfiguration of leftwing politics will be on the agenda in the near future.
On the other hand, the recent congress of the Power of the Working Class, a major radical leftwing group, declared its plan to build a working-class party and elected a new leadership.
[Won Youngsu is a leader of the Power of the Working Class.]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학살의 광기를 즉각 중단하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가테러리즘의 아랍민중 학살극
2005년 여름 아리엘 샤론 총리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정착촌에서 철수하자, 미국과 EU는 중동평화의 중요한 성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스라엘의 광기어린 테러리즘은 가자지구 철수의 본래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중동지역 전체를 새로운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외견상 6월 25일 팔레스타인과 7월 12일 레바논에서 일어난 '인질(?) 사건'에 대한 탈무드식 보복 군사공격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남북 양쪽전선에서 이스라엘이 펼친 즉각적인 대응은 인질사건에 대한 보복공격을 넘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정치군사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중 전쟁'은 서로 연관돼 있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슬람 저항운동을 분쇄하고, 더불어 배후의 이란과 시리아에 대한 압박이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적 공격은 수많은 팔레스타인·레바논 민간인을 학살했음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정당한 자위권'이란 미국의 비호 아래 지속되고 있다. 이는 이번 군사작전이 나치식 인종학살을 통해서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에 관철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정치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여름비' 작전 - 하마스 정부의 무력화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6월 26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인민저항위원회(PRC) 대원들이 이스라엘 군을 공격하여 이스라엘 군 2명을 사망시키고 샬리트 상병을 인질로 잡고 9천여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 450명과의 교환을 요구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국제언론은 마치 팔레스타인 무장행동이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을 가져온 것처럼 묘사하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의 도발은 이미 준비된 것이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공격은 단순히 충동적인 인질극이 아니었다.
지난 6월 8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내무부 보안대장으로 임명된 인민저항위원회 지도자 자말 아부 삼하다나 등 4명을 살해했다. 9일에는 베이트 라히야 해변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족 7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당했다. 해변사건 이후 하마스는 지난해 2월부터 지켜온 이스라엘과의 휴전합의를 깨고 무장단체들과 연합해 가자지구에 인접한 이스라엘 마을 스데로트에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고 연이른 융단폭격으로 100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이 과정에서 샬리트 상병의 '납치'는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군사작전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 2월 팔레스타인 총선승리로 출범한 하마스정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고립·압박공세에 이어 잘 계산되고 준비된 군사적 공격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가자지구를 공격한 이스라엘군이 6월 29일 하마스 고위인사와 현직의원 등 60여명을 납치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력화시킨 만행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포함한 하마스의 포로교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한 채 강행하는 군사작전으로 보아, 이스라엘은 샬리트상병의 구출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무정부상태로 초토화시키는 한편,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 통제를 강화하면서 분리장벽과 정착촌 확대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레바논 전선 - '정의의 처벌' 작전
가자지구의 위기가 고조되자, 7월 12일 레바논의 이슬람 저항운동인 헤즈볼라가 팔레스타인 민중저항에 연대하는 군사작전으로 이스라엘 접경지대를 공격하여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이스라엘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고, 준비된 무차별적 공습을 포함한 군사작전(정의의 처벌)을 개시했다. 헤즈볼라에 대한 보복공격을 빙자한 무차별 공습은 이슬람계와 기독교계 민간인 거주지와 시설, 교량 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개시된 뒤 1주일이 경과한 현재까지 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천여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전쟁의 공포 속에 1만여명의 외국인이 국외로 탈출하고 레바논인 50만명이 죽음의 피난대열에 합류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군사공격은 일차적으로 헤즈볼라에 대한 보복공격이지만, 지난해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피습 사망한 사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등장한 헤즈볼라를 제거해 친이스라엘 정부를 수립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82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 전총리가 이끈 레바논 침공도 똑같은 목적에서 시도됐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이번 레바논 침공은 이스라엘 군부에게 2000년 레바논 자진철수의 불명예(?)에 대한 역사적 보복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과 민간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습에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에 조직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공군과 해군의 공습에 이어, 7월 19일 지상군을 투입했지만, 헤즈볼라 무장대는 국경을 넘어온 이스라엘 육군에 맞서 탱크 2대를 파괴하는 등 완강한 저항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중전선과 미국-이스라엘의 국가테러리즘에 의한 중동지배전략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즉 이슬람 무장저항운동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양상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테러공격은 그 방식에 있어 민간인과 민간시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군사작전이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깝다. 이는 일차적으로 나치식 인종학살 공포작전으로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저항운동을 고립화·무력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만행은 바로 미국의 비호와 긴밀한 협조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18월과 20일 각각 상하원에서 압도적 표차이로 이스라엘 지지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과 레바논 침공의 핵심적 목적은 인근국가에서 정권교체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슬람운동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의 이슬람저항운동들이 제도권 진입을 저지함과 동시에, 이란과 시리아 등과의 연계를 통한 저항블록 구축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사건의 배후로 이란과 시리아를 지목하면서, 이라크침략에서 시작된 석유 및 중동지배전략, 또 이를 위한 정권교체 전략을 중동전역으로 확산시키려 한다. 이로 인해 중동지역의 정치군사적 불안도는 증폭되고 있으며, 이란과 시리아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제5차 중동전'의 발발 가능성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민중의 힘으로 이스라엘·미국 제국주의를 저지해야 한다
인질구출을 빌미로 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작전은 전세계 민중과 여론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에게 예속된 아랍정권들과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미사일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했던 UN은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해 무기력하다. UN은 겨우 19일에야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중동사태는 단지 이스라엘의 광신적 시온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한편에서 군사공격과 불법점령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중동자유무역협정(MEFTA)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제국주의적 중동지배구도를 완성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양대전략의 핵심적 파트너가 이스라엘이며, 친미적 아랍정권들이 그 들러리를 서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무력화시키지 못하는 한, 이스라엘은 내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가에 대한 국가테러리즘을 지속할 것이다.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국제반전운동의 전략을 재구성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가테러리즘에 맞선 전세계 민중의 반전·반제투쟁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잔혹한 학살만행을 중지시켜야 한다.
<노동자의힘> 107호
아무 생각없이???
그동안 쓴 글을 다 정리해서 올리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론 좌파란 개념 자체가 다의적이어서 항상 혼동과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체제에 투항하거나 포섭된 개량주의를 제외한 비제도적·탈제도적·혁명적 좌파로 의미로 한정하여 말한다면, 좌파운동은 이른바 소수파운동 또는 비주류운동이었다. 대부분의 좌파운동은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좌파가 다수파가 되는 혁명적 상황이 존재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어로 다수파라는 의미였지만, 사실 1917년 10월혁명 직전까지 거의 항상 소수파였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주류파로부터 혁명적 좌파를 분리 정립하여 이른바 맑스의 공산주의 개념을 복원한 공산주의운동을 창출했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가 무정부주의와 유토피아적 공상적 사회주의로부터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정립했다면, 레닌은 맑스주의의 적자를 자처한 사민주의로부터 공산주의를 분리 또는 복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레닌의 공산주의가 스탈린에 의해 왜곡되자, 이에 대항하는 좌파들이 트로츠키주의, 좌익공산주의(또는 평의회 공산주의)로 새로운 분리정립을 통해 혁명적 좌파의 재결집을 시도했지만, 결국 거의 모두 공산주의내 소수파운동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이것이 레닌 사후 공산주의내 소수파운동의 딜레마였다.
그러나 문제는 공산주의운동 역시 노동자계급운동 내에서 사민주의에 맞서서 다수파로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당이 2차대전시 저항운동을 통해 좌파내 또는 노동운동내 다수파로 정립하는 데 성공했고, 소련의 영향력 하에 동유럽과 북한에서 인민민주의정권이 성립했지만,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원형과는 거리가 먼 인민혁명의 형태를 취했고, 중국혁명을 필두로 쿠바혁명과 니카라과혁명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노동자계급운동을 장악하지 못한 공산주의운동,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딜레마였다.
냉전시기 이른바 적대적 체제의 평화공존 테제 하에서 주류 공산주의운동은 제도화의 길을 걸었고, 그 귀결점은 유로코뮤니즘, 즉 공산주의운동 제도화의 완성이었다.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소련붕괴 이후, 한때 2백만당원을 자랑했던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사민주의적 민주좌파당(PDS, 나중에 민주좌파[DS]로 개칭)의 변신이다. 민주좌파는 이 변신과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에 거침없이 가입하였다. 1970년대 중반 전투적 신좌파에 대한 적대감을 견지하면서, 반동적 기민당(DC)과의 "역사적 타협"을 통한 정부참여를 추진했던 과거의 역사를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1968혁명을 통해 제도화된 주류 공산주의운동으로부터 새로운 혁명적 좌파의 구축을 꿈꾸었던 신좌파 역시 소수파운동에 머물렀고, 제도화된 공산주의운동을 뛰어넘지 못했다. 부패한 부르주아 사회체제의 타도와 해체를 위해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지만,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68년혁명의 충격과 그 진폭을 고려하면 소수파운동으로서나마 생존한 경우도 또다시 소수에 속하는 역설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런 좌파운동 역사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서, 구조화된 소수파운동의 역사적 딜레마에 대한 구체적 실천적 전략을 도출하지 못하는 한, 소수파 좌파운동은 변혁을 꿈꾸는 몽상가들 또는 낭만주의자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한 타스의 강령보다 한걸음의 운동의 전진이 중요하다"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맑스의 테제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좌파운동이 소수파운동의 한계를 넘어 계급대중에게 대안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좌파는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좌파일 뿐이며, 그들의 운동은 지성과 정력의 소모적 낭비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의 힘>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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