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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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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소파가 놓인 응접실. 한국 남자 한 명이 앉아 있다.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베트남 여성 11명은 긴장했다. 무릎을 한쪽으로 모으고 앉아 있는 여성들 얼굴 위로 한국 남자의 어색한 시선이 지나갔다. “어휴, 미안해서 어떻게 누굴 골라요. 이제 그만 올려보내세요.” 20분 만에 한국 남자는 더 이상의 면접을 포기했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는 인천에 사는 무직의 김장호(35·가명)씨. 김씨는 초혼 상대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자”는 말에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김씨는 이제 베트남에서 배우자를 찾고 있다.
김씨는 11명의 실물 면접 이외에 화상 면접도 시도했다. 옆방으로 옮긴 그는 ‘2006년 4월’이라고 적혀 있는 1시간30분 분량의 CD를 틀었다. 모니터에는 가슴에 번호표를 단 150명의 여성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얼굴에서 시작한 카메라의 앵글은 전신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 역시 20분 만에 그는 포기했다. 이미 김씨는 조금 전 면접을 본 11명의 여성 중 두 명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
센씨는 이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김씨가 센씨와 또 다른 아담한 체구의 베트남 여성(21)을 상대로 질문했다. “나는 아직 무직이지만 곧 직장을 구할 겁니다. 나이 많은 어머니가 작은 식당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모실 수 있습니까?” 두 여성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난 이국(異國) 남녀의 대화는 침묵의 시간이 더 길었다. 김씨도 여성들도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후보가 되면 여성들도 질문을 할 자격이 있지만 남자의 나이, 직업, 가족 상황을 말하면 베트남 여성들은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다”고 했다.
방을 빠져 나온 뒤 반나절, 센씨는 초조했다. 착해 보이는 인상이 맘에 들었지만 그 한국 남자가 자기를 선택할지는 알 수 없었다. 호찌민시로부터 4시간 거리의 궁벽한 농촌의 처녀. 그는 1년 전부터 국제 결혼을 꿈꿨다.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센씨는 “작은 할머니의 딸이 3년 전 대만 남성과 결혼했는데, 덕분에 시멘트 집을 새로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코리안 드림’을 그리고 있었다. 센씨는 열흘 전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뒤 한 차례 면접을 봤지만 선택되지 못했다.
담배를 빼물고 서성이던 김씨는 마침내 센씨를 골랐다. “어머니가 키 큰 여성을 데려 오라고 신신당부했거든요. 어머니 밥 차려 드리는 것 보는 게 소원이에요.”
짝을 찾은 두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에이즈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얼마 전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에이즈 감염으로 한국에 오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 후 결혼식 전의 에이즈 검사는 의무사항이다. 1시간 반 만에 둘 다 ‘음성’, 합격 판정을 받았다.
반지를 교환하고 축배를 드는 간단한 의식의 베트남 결혼식, 신부 부모와의 인사, 뙤약볕 아래의 정장 차림 야외 촬영을 이틀 만에 전쟁 치르듯 해치웠다. 6박7일의 베트남 국제 결혼, 800만원이 드는 이 결혼식에는 김씨 외에 안산의 한 공장에서 기술이사직을 맡고 있는 장재룡(44)씨와 인천 공장의 대표인 김원영(52)씨가 각각 23세의 베트남 신부를 재혼 상대로 맞았다. 경험이 있는 김원영씨는 베트남어를 공부했고, 장재룡씨는 휴대용 컴퓨터에 베트남어 번역 프로그램을 담아 왔다.
하지만 초혼의 김장호씨는 정작 둘만 남게 되자 소통(疎通)의 문제를 드러냈다. 김씨는 센씨와 아침을 먹는 도중 한국측 가이드에게 물었다. “거참, 보디 랭귀지면 다 통할 줄 알았는데, 아니데요. 자꾸 이렇게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손을 귀 옆까지 들어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베트남식의 ‘모르겠다’는 표현이다. 신부가 “당신 말을 모르겠어요”라고 했지만, 그 말을 못 알아 듣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차라리 내가 베트남 말을 배우는 것이 빠르겠어요”라고 답답해 했다.
그날 밤 센씨는 호텔 방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회화책을 꺼내 뒤적이며 삐뚤한 한글로 편지 쓰는 연습을 했다.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남편이 호적을 만들어 보내 비자를 받기까지는 길게는 두 달이 걸린다. 그때 부칠 편지의 내용이다.
‘부모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건강하세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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