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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만수형님..

 

 

 

2012년 3월 27일..

후배들이 고생한다고..오랜만에 나와주셨습니다..

힘내라고..

마지막 말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서 들려온 소식..

한만수초대의장님 아들 장가간다는 청첩장과..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비보..

 

아침에 웃으면서 헤어지던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96년..

김영삼정부시절, 체제전복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탄압을 시도했지만..

당시 유덕상한국통신위원장과 함께 민주노조 사수의 깃발을 들면서 충주지부장으로..

지역연대를 만들기위해 전교조와 농민회, 당시 배이산업을 중심으로 지역연대체를 만들어내며 중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충주시장실을 점거하고..

합법화이전 전교조 조합원들을 격려하고..함께하던..

한국통신의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부당해고와 복직..

충주에서 청주로, 영동으로..쫏겨다니던..

그리고 명예퇴직..

 

그리고 2006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당시 민주노동당의 시의원후보로 출마하시면서

지역의 후배들에게 노동자가 가야할 길을 묵묵히 실천하셨습니다..

 

4월7일이면..

노동조합 지부장한다며..조합활동할때..

어린아이였던 아들이..장가간다고..후배들은 무조건와서 밥한끼 먹고가라던..

정말로 훌쩍커버린 아들과 딸을 보면서..

그저 눈물만 나올 뿐입니다..

 

그냥..

편안히 쉬셔도 될 나이..

손주들의 재롱이나 보면서..

 

이제는..

좀 쉬셔도 될거 같습니다..

평생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그렇지만..

이제는 노동의 굴레를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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