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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사회이론 사이의 가치론 1.

지금부터 올리는 번역은 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중 5장 <화폐 가치론>의 2절 <자연주의와 사회이론 사이의 가치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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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

 

@ 5장 화폐 가치론 @


# 2절. 자연주의와 사회 이론 사이의 가치론 #

 

이미 1장에서 보았듯이, 노동은 고전 정치경제학에서는 늘 오로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개별적인) 개인의 과정인데, 이 과정은 인간에게 고역과 부담을 의미한다. 정치경제학과 관련되는 최후의 지점이 늘 개별적 개인이기 때문에, 즉 “인간에 대해서” 변용된 상품 소유자의 인간학이기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는 정치경제학 일반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상도 아니다.(주19-) 고전 경제학뿐만 아니라 한계주의(Marginalismus-대부분의 인간 행태를 '限界(marginal)'라는 개념으로써 설명하려고 하는 소위 '限界主義(marginalism)' 분석 방법을 택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嗜好(preference)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며,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制度도 주어진 조건으로 하여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는 늘 두 개별적인 상품 소유자 사이의 행위로서만 상품교환을 주제로 삼는다. 이 둘의 패러다임에서는 교환관계의 양적인 규정에 대한 문제가 중심에 서 있고, 또한 이 둘에게서 이러한 문제는 인간학과의 관련을 통해서 그 답이 얻어진다. 교환 속에서 이미 늘 전제되고 있는 비교 가능성은 더 이상 이론적인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두 패러다임의 내용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전 정치경제학의 “객관적” 가치론과 한계주의의 “주관적” 가치론은 그들 담론의 개별적 개인이라는 인간학적 구조 속에서 일치한다.


고전 경제학과 신고전 경제학에 대립하여 맑스가 상품교환을 단순히 사회적 재생산의 매개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노동의 한 특수한 형태로 고찰한다.(주20-) 맑스는 교환자들이 교환 속에서 생각하는 것에 대한 문제, 즉 교환자들이 어떤 이해관계를 추구하는가의 문제에 서 있지 않는데, 그 대신에 개별적 개인들에게 교환 이외의 어떤 다른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탐구한다.

 

“사용대상들은 그것이 상호 독립적으로 행해진 사적 노동의 생산물인 한에서만 상품이다. 이러한 사적 노동들의 복잡성은 사회적인 총노동을 형성한다. 생산자들이 우선 자신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사회적 접촉을 하기 때문에, 또한 역시 생산자들의 사적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은 우선 이러한 교환 속에서 나타난다. 또는 여러 사적 노동은 사실상 교환이 노동생산물과 그 생산물을 매개로 한 생산자들의 위치를 바꿔 놓는 관계들을 통해 사회적 총노동의 한 지절(Glieder)로서 나타난다.”(Ⅱ.6/103f; 23/87, Herv. v. mir)

 

 개별적 개인들이 자신의 개인적 노동을 상호 독립적인 사적 노동의 형태로 전제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생산물을 교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사적 노동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나타날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적인 생산자들의 사회화는 그들의 서로 다른 사적 노동 사이에 하나의 응집된 사회적 연관이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러한 응집 관계의 수립은 또한 개인들의 교역의 결과물이지만, 개별적 개인들 자체를 명확하게 밝혀 낼 수 있는 어떤 의식적인 결과물이 결코 아니다; 또한 이러한 관계의 수립은 독립적인 행위들이 충돌해서 나타나는 단순한 우연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개별적 개인들에게 이러한 결과물은 그들 행위 이전에 현존하는 전제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전제는 상품과 화폐의 대상적 속성으로, 즉 대략 중력 법칙과 같이 바로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속성으로 설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한에서 맑스는 “물신주의”에 대해서 말한다.(주21- “물신주의”에 대한 개념은 알튀세(1969, S.103)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헤겔의 유해한 어떤 잔재도 아니다. 물신주의는 상품물신과 화폐물신에 한정되지 않고 부르주아 생산관계 전체를 포괄한다. 피셔(Fischer, 1978)의 다양한 물신형태와 아울러 바로 다음 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절과 비교해 보라. 에르켄브레흐트(Erckenbrecht, 1976)는 좀더 넓은 연관 속에서 맑스의 물신주의 개념을 논하고 있다.) 일상의식뿐만 아니라 고전 부르주아 경제학은 자신들의 경험주의를 토대로 하여 이러한 물신주의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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