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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13
    야구 심판 일지 51.
    곰탱이
  2. 2012/07/13
    야구 심판 일지 50.
    곰탱이
  3. 2012/06/05
    야구 심판 일지 49.
    곰탱이
  4. 2012/05/26
    인터내셔널가 Billy Bragg-쌍용차 살인해고 희생자 추모 분향소 침탈
    곰탱이
  5. 2012/05/25
    야구 심판 일지 48.(3)
    곰탱이
  6. 2012/05/25
    야구 심판 일지 47.
    곰탱이
  7. 2012/05/23
    야구 심판 일지 46.
    곰탱이
  8. 2012/05/23
    야구 심판 일지 45.
    곰탱이
  9. 2012/05/17
    길...
    곰탱이
  10. 2012/05/11
    야구 심판 일지 44.
    곰탱이

내 딸랑 하나뿐인 선배 00형..

내 딸랑 하나뿐인 선배 00형이 코로나 돌파 감염으로 지난 주 목요일에 가셨다.. 

허망하고 원통하고 슬프다... 

 

이제 누가 있어 나와 같이 순대국밥을 먹을 것이며, 

소주잔을 토닥토닥 기울일까... 

이제 누가 있어 아픈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내가 아플 때, 

"아.. 또 왜?"라며 내 아픔을 위로해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내가 외로울 때, 

"어이 당구 한판 어때? 오늘 넌 나의 밥이다" 하며, 

기꺼이 달려와 나를 위안하고 달래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나의 괴로울 때, 

나와 어깨동무 하며 같이 노래 한자락 해줄까... 

 

형이 힘들고 외롭고 아프고 외로울 때, 

형처럼 같이 살아야 했는데... 

그런데 울음도 안 나오고 눈물 한방울 안 나오는데... 

형은 단톡방에서 가시기 전에 

"날 위해 많이 울어주라" 했는데... 

 

이제 누가 있어 

내 딸랑 하나뿐인 형과 같이 살까... 

 

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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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백석 시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 백석 지음 -

 

[어린아이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바다의 주는 옷과 밥으로 잔뼈가 굴른 이 바다의 아이들께는 그들의 어버이가 바다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가장행복된 때입니다. 마음 놓고 모래장변으로 놀러 나올 수 잇는 까닭입니다.

굴 깝지 우에 낡은 돋대를 들보로 세운 집을 지키며 바다를 몰으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라는 그들은 커서는 바다으로 나아가여야 합니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흐리고 풍낭 세인 날 집 안에서 여을의 노대를 원망하는 어버이들은 어젯날의 배ㅅ노리를 폭이 되엇다거나 아니 되엇다거나 그들에게는 이 바다에서는 서풍 끝이면 으레히 오는 소낙지가 와서 그들의 사랑하는 모래텀과 아끼는 옷을 적시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밀물이 쎄는 모래장변에서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바다에 싸움을 겁니다. 물결이 그들의 그 튼튼한 성을 허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욱 승승하니 그 작은 조마구들로 바다에 모래를 뿌리고 조악돌을 던집니다. 바다를 씨멸식히고야 말듯이.

그러나 얼마 아니하야 두던의 작은 노리가 그들을 부르면 그들은 그렇게도 순하게 그렇게도 헐하게 성을 뷔이고 싸움을 버립니다.

해질무리에 그들이 다시 아부지를 따러 기슭에 몽당불을 놓으려 불가으로 나올 때면 들물이 성을 헐어버린 뒤이나 그때는 벌써 그들이 옛성과 옛 싸움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바다의 아이들은 바다에 놀래이지 아니합니다. 바다가 그 무서운 헤끝으로 그들의 발끝을 핧아도 그들은 다소곤이 장변에 앉어서 꼬누를 둡니다.

지렁이 같이 그들은 고요이 도랑츠고 밭가는 역사를 합니다. 손가락으로 많은 움물을 팟다가는 발뒤축으로 모다 메워버립니다. 바다물을 손으로 움켜내어서는 맛도 보지 않고 누가 바다에 소금을 두었다고 동무를 부릅니다. 바다에 놀래이지 않는 그들인 탓에 크면은 바다로 나아가여야 하는 바다의 작은 사람들입니다.

- 남이두시기해빈 南伊豆枾崎海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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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공위성-백석 시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제3인공위성]

 

- 백석 지음 -

 

나는 제3인공위성

나는 우주 정복의 제3승리자

나는 쏘베트 나라에서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쏘베트 나라에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해방과 자유의 사상

공존과 평화의 이념

위대한 꿈 아닌 꿈들......

나는 그 꿈들에서도 가장 큰 꿈

 

나는 공산주의의 천재

이 땅을 경이로 휩싸고

이 땅을 희망으로 흐뭇케 하고

이 땅을 신념으로 가득 채우고

이 땅을 영광으로 빛내이며

이 땅의 모든 설계를 비약시키는 나

 

나는 공산주의의 자랑이며 시위

공산주의 힘의, 지혜의

공산주의 용기의, 의지의

 

모든 착하고 참된 정신들에는

한없이 미쁜 의지, 힘찬 고무로

모든 사납고 거만한 정신들에는

위 없이 무서운 타격, 준엄한 경고로

내 우주를 나르는 뜻은

여기 큰 평화의 성좌 만들고저!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여,

대기층을 벗어나, 이온층을 넘어

뭇 성좌를 지나, 운석군을 뚫고

우주의 아득한 신비 속으로

태양계의 오묘한 경륜 속으로

크게 외치어 바람 일구어

날아 오르고 오느는 것이여,

 

나는 공산주의의 사절

나는 제3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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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밖에는 햇살 몇 조각들 모여,

가을장마의 물기 툭툭 떨어내듯

조곤조곤 안부인사를 건넨다.

토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 정기복 -

 

담론이 끝나고

철문이 내려진 거리에

스산한 겨울이 어슬렁거리면

구겨진 전단 같은 퇴색한 잎들이 날리고

이제 나는

그리움의 수배자가 된다

그 많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나

지워진 얼굴들 대책 없이 호명하다가

가슴에 품었던 산동네 하나 끄집어낸다

 

살얼음 진창 밟으며

사람의 하늘 열던

동학군 깃들어 짚신 고쳐매던 그곳

그믐 가시밭길 봉화 치켜들고

새벽을 밝히던 산사람들

싸릿불 지펴 감자 굽던 그곳

비탈산 불 놓아

조며 수수며 메밀 갈던

생떼 같은 화전민들 목숨 부쳐먹던 그곳

그렇게 시절에 쫓긴 땅벌들이 더덕 뿌리 흙살 박아 물 차오르던 곳

 

암울에 지쳐 병이 된

이 계절에 산동네 의풍리 떠메고 와

만나는 사람마다

한 자락씩 떼어주고 싶다

 

- 정기복 시집 <<어떤 청혼>>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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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청혼

하도 답답하여, 20여 년 전에 읽었던 시집을 꺼내들었다.

시집 제목은 <어떤 청혼>(정기복 시집).

시집 제목인 어떤 청혼은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 중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때 참 무엇인가에 그리움 복받쳐 먹먹하게 읽었던 시다.

그런데 오늘 읽어보니 무엇인가 밋밋하다..

왜 그럴까를 찬찬히 생각해보며 이 시를 다시 읽어보련다.

 

<어떤 청혼> -정기복-

 

바다 쉴새없이 뒤척여

가슴에 묻었던 사람 하나

십 년 부대껴 떠나보내고

달무리 속 대보름달

생선 속살 모래밭에

연어 같은 사람 하나 던져주었네

 

그대!

잘먹고 잘사는 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오빠,

다 읽었는데 전태일

그 사람 그 뜨거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썩는다는 것이다

씨앗으로 썩어 어머니 젖가슴 닮은

봉분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대,

 

흙 토해 기름진 흙이게 하는

지렁이처럼 살자

 

정기복 시집 <어떤 청혼>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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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

일 포스티노를 보고..

어제 밤에 모처럼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어렸을 때 아껴 먹던 맛있는 과자처럼, 개인적으로 아끼면서 보는 영화다.

그런 영화들 중에는 브레스트 오프, 풀 몬티, 빌리 엘리엇, 파업전야, 우리 학교 등이 있다.

 

어제 본 [일 포스티노]를 보고 떠올랐던 단상을 주저리 주저리 메모해 본다.

 

시는 혁명이고, 혁명은 가랑비와도 같다.

사회주의는 메타포어이며,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자신이 관게하는 모든 타자에 대해 모른다는 한계를 자각하고,

그 타자를 향해 현재 자신을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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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이란 어떠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규정으로 규정될 수 없는 물자체(thing itself)이다.

그렇지만 삶은 규정될 수 없는 이 물자체의 현상학(과학)이다.

그럼으로써 죽음은 삶에 의해 규정되어야만 하는 당위이면서

현실의 삶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동시에 삶은 '규정된' 죽음에 의하여 규정되어야만 하는 당위이며,

현실의 죽음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 주저리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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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에 대한 주요한 방역 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론되고 있다.

새로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단상을 잠깐 정리해 본다.

방역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는 것을

당분간 자제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본주의 체제는 본래 사회적 거리두기를 자신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자본의 허락 없이 각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 모여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노동생산물이 자본의 승인을 통해 시장에서 비로소 상품이 되어

다른 노동생산물과 관계를 가지게 되고, 생산자들 역시도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자본의 승인하에 취업을 하게 되고,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

자본의 승인이 없으면 사회적 관계망에서 배제되어 <사회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자본은 자신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의 이익 생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노동조합 등 모든 소수자 집단의

자발적인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을 배제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누구 누구와 어울리지 말아아, 데모에 참가하지 말아라 등...

우리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화하면서 살아왔을 터이다.

 

코로나19에 의해 희생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사회적 관계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차단된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사회적 관계가 약화될수록 면역력이 급속히 낮아진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코로나19의 장기적인 방역대책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바로 일상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기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관계의 강화, 즉 각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연대, 소통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생산, 강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중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행전염병의

새로운 방역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19를 발생시킨 근본적인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어쩌면 자본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경고일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에 의해 규정(승인)될 수 없는 자연(nature)의

자본에 대한 투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공장이 멈춰서고, 세계의 교통이 점점 동맥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19 같은 유행전염병을

진정시키는 일은 바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관계의 강화이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강화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공중파에서 코로나19의 시민사회의 새로운 방역대책으로 내세운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단상을 두서없이 끄적여 보았다.

차분히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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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그제 어제는 눈이 내렸다. 많이도 내렸다.

그런데 그제 어제 온 눈은 미련이다.

겨울에 대한 미련...

이 미련은 나를 닮았다.

아무리 겨울에 대한 미련을 가진들

봄을 향한 마음을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의 한겨울에 내렸다면

세상의 마음을 얻었을 텐데...

 

이 미련은 부질없거니와

또한 세상사의 이치임을...

그래서 세상은 동장군을 안타까워 하리라.

부질없음과 세상사의 이치의 경계는 어디일까...

 

눈을 닮되 눈을 닮지 마라

나를 닮되 나를 닮지 마라

세상을 닮되 세상을 닮지 마라

 

이 끄적임도 부질없지만 세상사의 흐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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