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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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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6/07/06
    수(守)와 공(攻),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죽음
    곰탱이

포은의 핑계가 되고 싶다.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1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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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방을 이번엔 유지하고 싶었다. ㅅ서책 한 권, 변볂변한 가구 하나 없는 방. 홀로 앉아 마으음을 비우고 뜰에 돋는 새싹들을 바라보는 방. 문지방을 넘어온 흰 구름이 창문으로 빠져나간 자리를 그윽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얼마나 근사할까.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가르는 기준은 결코 독파한 서책의 양에 있지 않다. 나무 상자 한 개와 열 개의 차이는 오십보백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생각을 쌓아 올리기란 무척 어렵다. 죽은 이도 살리고, 전혀 만난 적도 없는 것들을 위아래 좌우로 잇고, 또 그 전부가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여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마음의 방! 

방에 대한 생각을 살짝 흔들어 다시 닦는다. 이미 답이이 나왔다면 되돌아아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텅 빈 방에선 원칙조차 흩어지는구나.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섬에 홀로 들어갈 때 어떤 서책을 가지고 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세 권을 고른다면? 아니 딱 한 권만? 이런저런 서책들을 혀 위에 올렸다. <<맹자>>를 가장 자주 짚었고, <<논어>>나 <<시경>> 혹은 <<사기>>와 <<역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 내게 묻는다면, 단 한 권의 서책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답하리라. 책을 펼쳐 글자를 읽는 대신, 팔베개를 하고 누워 다가왔다가 지나가는 구름을 구경하겠다. 그리고 그 구름의 모양과 크기와 움직임에 따라 과거를 추억했다가 지우고 현재를 살피다가 지우고 미래를 예상하다가 지우리라. 너무 낳이 채우고 쌓기만 했다. 흘러가는 물을 위해선 비우고 낮추고 부드러워져야 한다. 

이게 다 포은 탓이다다! 요렇게 적고 보니 은근히 흡족하여 한 번 더 적는다. 이게 다 포은 탓이다! 내 잘못은 없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목은 학당을 드나들 때부터 포은은 우리들의 핑계였다. 스승이 유난히 포은을 아낀 탓에 학당 서생들은 스승의 노여움을 살 때마다 포은에게 화살을 돌렸다. 황당할 뿐만 아니라 억울할 법도 한데 포은은 따지거나 반발하지 않고 그믐처럼 넘겼다. 나도 죽기 전에 포은의 핑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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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국

시인 안도현은 <무생채와 들기름으로 볶은 뭇국을 좋아헀다>(안도현의 시 [안동](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에서)고 했다. 

나도 이 뭇국을 좋아한다. 

 

물과 기름은 서로 섞일 수 없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상극이다. 

그러나 물이 무우채로 새롭게 생산되고 

기름이 들기름으로 새롭게 생산되면, 

서로 잘 섞여서, 종합 통일돼서 

뭇국이라는 고차적인 새로운 것이 생산된다. 

물과 기름이 무우생채와 들기름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이 되면, 

무우생채와 들기름의 생산관계는

다시 뭇국이라는 보다 고차적인 생산력이 된다. 

 

이것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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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이산하 시

베로니카 

 

-이산하 

 

모든 게 그렇겠지. 

이제 패색이 짙은 낙엽처럼 다른 길은 없겠지. 

홀로 핀다는 게 얼마나 속절없이 아픈 일인데 

아름답기 전에는 아프고 아름다운 뒤에는 슬퍼지겠지. 

그대 뒤에서 그대를 은은하게 물들이거나 

세상 뒤에서 세상을 은은하게 물들이거나 

이기지 않고 짐으로써 세계를 물들이는 

그런 저녁노을 같은 것이겠지. 

어차피 질 줄 알면서도 좀더 잘 지기 위해 

잘 지기 위해 잘 써야지, 거듭 나를 치다가도 

이 난공불락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어 혼자 중얼거리겠지. 

낙, 낙, 나킨온 헤븐스 도어...... 

낙, 낙, 나킨스 헤븐스 도어...... 

 

모든 게 그렇겠지. 

아직 다른 길이 없으니 왔던 길 계속 가야겠지. 

케테 콜비츠 판화 같은 세상도 여전하고 

틀판에 하얀 목화꽃이 팡팡 터지는 꿈도 사라지고 

이젠 너무 멀리 이송되어 돌아갈 곳도 잊어버리고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소용도 없어지겠지. 

어느날 내가 심해어처럼 베니스에 홀로 누워 

마지막 별빛의 조문이 끝날 때마다 

속눈섭 같은 물안개로 피어오르던 그대의 가슴에 묻혀 

폐사지의 바람처럼 다시 중얼거리겠지. 

낙, 낙, 나킨온 헤븐스 도어...... 

낙, 낙, 나킨온 헤븐스 도어...... 

 

-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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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처럼-이산하 시

대나무처럼 

 

-이산하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날카로운 창이 되고 

끝을 살짝 구부리면 

밭을 매는 호미가 되고 

몸통에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고 

바람 불어 흔들리면 

안을 비워 더욱 단단해지고 

그리하여 

60년 만에 처음으로 

단 한 번 꽃을 피운 다음 

숨을 딱 끊어버리는 

그런 대나무가 되고 싶다. 

 

-이산하 시집 <악의 평범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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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랑 하나뿐인 선배 00형..

내 딸랑 하나뿐인 선배 00형이 코로나 돌파 감염으로 지난 주 목요일에 가셨다.. 

허망하고 원통하고 슬프다... 

 

이제 누가 있어 나와 같이 순대국밥을 먹을 것이며, 

소주잔을 토닥토닥 기울일까... 

이제 누가 있어 아픈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내가 아플 때, 

"아.. 또 왜?"라며 내 아픔을 위로해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내가 외로울 때, 

"어이 당구 한판 어때? 오늘 넌 나의 밥이다" 하며, 

기꺼이 달려와 나를 위안하고 달래줄까... 

이제 누가 있어 나의 괴로울 때, 

나와 어깨동무 하며 같이 노래 한자락 해줄까... 

 

형이 힘들고 외롭고 아프고 외로울 때, 

형처럼 같이 살아야 했는데... 

그런데 울음도 안 나오고 눈물 한방울 안 나오는데... 

형은 단톡방에서 가시기 전에 

"날 위해 많이 울어주라" 했는데... 

 

이제 누가 있어 

내 딸랑 하나뿐인 형과 같이 살까... 

 

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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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백석 시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 백석 지음 -

 

[어린아이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바다의 주는 옷과 밥으로 잔뼈가 굴른 이 바다의 아이들께는 그들의 어버이가 바다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가장행복된 때입니다. 마음 놓고 모래장변으로 놀러 나올 수 잇는 까닭입니다.

굴 깝지 우에 낡은 돋대를 들보로 세운 집을 지키며 바다를 몰으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라는 그들은 커서는 바다으로 나아가여야 합니다.

바다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흐리고 풍낭 세인 날 집 안에서 여을의 노대를 원망하는 어버이들은 어젯날의 배ㅅ노리를 폭이 되엇다거나 아니 되엇다거나 그들에게는 이 바다에서는 서풍 끝이면 으레히 오는 소낙지가 와서 그들의 사랑하는 모래텀과 아끼는 옷을 적시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밀물이 쎄는 모래장변에서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고 바다에 싸움을 겁니다. 물결이 그들의 그 튼튼한 성을 허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욱 승승하니 그 작은 조마구들로 바다에 모래를 뿌리고 조악돌을 던집니다. 바다를 씨멸식히고야 말듯이.

그러나 얼마 아니하야 두던의 작은 노리가 그들을 부르면 그들은 그렇게도 순하게 그렇게도 헐하게 성을 뷔이고 싸움을 버립니다.

해질무리에 그들이 다시 아부지를 따러 기슭에 몽당불을 놓으려 불가으로 나올 때면 들물이 성을 헐어버린 뒤이나 그때는 벌써 그들이 옛성과 옛 싸움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바다의 아이들은 바다에 놀래이지 아니합니다. 바다가 그 무서운 헤끝으로 그들의 발끝을 핧아도 그들은 다소곤이 장변에 앉어서 꼬누를 둡니다.

지렁이 같이 그들은 고요이 도랑츠고 밭가는 역사를 합니다. 손가락으로 많은 움물을 팟다가는 발뒤축으로 모다 메워버립니다. 바다물을 손으로 움켜내어서는 맛도 보지 않고 누가 바다에 소금을 두었다고 동무를 부릅니다. 바다에 놀래이지 않는 그들인 탓에 크면은 바다로 나아가여야 하는 바다의 작은 사람들입니다.

- 남이두시기해빈 南伊豆枾崎海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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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공위성-백석 시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제3인공위성]

 

- 백석 지음 -

 

나는 제3인공위성

나는 우주 정복의 제3승리자

나는 쏘베트 나라에서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쏘베트 나라에 나서

우주를 나르는 것

해방과 자유의 사상

공존과 평화의 이념

위대한 꿈 아닌 꿈들......

나는 그 꿈들에서도 가장 큰 꿈

 

나는 공산주의의 천재

이 땅을 경이로 휩싸고

이 땅을 희망으로 흐뭇케 하고

이 땅을 신념으로 가득 채우고

이 땅을 영광으로 빛내이며

이 땅의 모든 설계를 비약시키는 나

 

나는 공산주의의 자랑이며 시위

공산주의 힘의, 지혜의

공산주의 용기의, 의지의

 

모든 착하고 참된 정신들에는

한없이 미쁜 의지, 힘찬 고무로

모든 사납고 거만한 정신들에는

위 없이 무서운 타격, 준엄한 경고로

내 우주를 나르는 뜻은

여기 큰 평화의 성좌 만들고저!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여,

대기층을 벗어나, 이온층을 넘어

뭇 성좌를 지나, 운석군을 뚫고

우주의 아득한 신비 속으로

태양계의 오묘한 경륜 속으로

크게 외치어 바람 일구어

날아 오르고 오느는 것이여,

 

나는 공산주의의 사절

나는 제3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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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밖에는 햇살 몇 조각들 모여,

가을장마의 물기 툭툭 떨어내듯

조곤조곤 안부인사를 건넨다.

토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 정기복 -

 

담론이 끝나고

철문이 내려진 거리에

스산한 겨울이 어슬렁거리면

구겨진 전단 같은 퇴색한 잎들이 날리고

이제 나는

그리움의 수배자가 된다

그 많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나

지워진 얼굴들 대책 없이 호명하다가

가슴에 품었던 산동네 하나 끄집어낸다

 

살얼음 진창 밟으며

사람의 하늘 열던

동학군 깃들어 짚신 고쳐매던 그곳

그믐 가시밭길 봉화 치켜들고

새벽을 밝히던 산사람들

싸릿불 지펴 감자 굽던 그곳

비탈산 불 놓아

조며 수수며 메밀 갈던

생떼 같은 화전민들 목숨 부쳐먹던 그곳

그렇게 시절에 쫓긴 땅벌들이 더덕 뿌리 흙살 박아 물 차오르던 곳

 

암울에 지쳐 병이 된

이 계절에 산동네 의풍리 떠메고 와

만나는 사람마다

한 자락씩 떼어주고 싶다

 

- 정기복 시집 <<어떤 청혼>>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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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청혼

하도 답답하여, 20여 년 전에 읽었던 시집을 꺼내들었다.

시집 제목은 <어떤 청혼>(정기복 시집).

시집 제목인 어떤 청혼은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 중 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때 참 무엇인가에 그리움 복받쳐 먹먹하게 읽었던 시다.

그런데 오늘 읽어보니 무엇인가 밋밋하다..

왜 그럴까를 찬찬히 생각해보며 이 시를 다시 읽어보련다.

 

<어떤 청혼> -정기복-

 

바다 쉴새없이 뒤척여

가슴에 묻었던 사람 하나

십 년 부대껴 떠나보내고

달무리 속 대보름달

생선 속살 모래밭에

연어 같은 사람 하나 던져주었네

 

그대!

잘먹고 잘사는 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오빠,

다 읽었는데 전태일

그 사람 그 뜨거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썩는다는 것이다

씨앗으로 썩어 어머니 젖가슴 닮은

봉분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대,

 

흙 토해 기름진 흙이게 하는

지렁이처럼 살자

 

정기복 시집 <어떤 청혼>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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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