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뚜/ 이주 노동자의 방송 ‘MWTV’ 대표

  

2010년 3월 5일은 내가 한국에 온 지 15년째 되는 날이고 3월 7일은 내가 이주 노동자가 된 지 15년째 되는 날이다. 열아홉 살 때부터 한국에 와 있었기 때문에 몇 년만 더 있으면 내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15년이라는 세월은 참 오랜 시간이고 그동안 내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 온 지 15년 됐다는 내 얘기를 듣는 분들은 나보다 더 놀라워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나 내가 활동하는 이야기를 인터뷰하러 오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내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부모님 안 보고 싶으세요?”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울해진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부모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고향도 그립지… ….

하지만 “‘살고 싶은 곳’보다 ‘살아야 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다. 내 꿈과 희망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움 또는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면, 누구나 나처럼 ‘살고 싶은 곳’보다 ‘살아야 하는 곳’을 선택할 것이다. 나에게는 한국이 내가 선택한 곳,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다. 한국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인연 때문이다. 여기서 살면서 내게는 친구들이 생겼고 스승들도 여기 계신다. 그리고 한국에 오랫동안 살다 보니 여기가 바로 내 집, 내 나라가 됐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내가 사는 이곳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받아먹은 적이 있다면 그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고 어렸을 때 배운 적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소수자인 이주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대가나 기분 좋은 대우를 못 받더라도, 지난 15년 동안 내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대해 주고 나를 성장하게 해 주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나는 1998년부터 한국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일들을 해 왔다. 내 노래로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나의 경험으로 한국 사람들과 이주민들 사이의 벽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이주민들에게는 ‘세상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안 좋은 한국 사람들만 보고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나쁘다고 판단하지 마’ 하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어디에서 온 사람’이냐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고 알리고 있다.

나는 “너희 나라에도 해가 있냐? 달이 있냐?” 하고 어처구니없는 물음을 하는 한국 사람도 만나 봤지만, 내가 모르는 것을 친절히 가르쳐 주는 한국 사람도 만났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다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도 만났지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좋은 벗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만났다.

공장 기숙사 내 방에 있는 불단에 자기 양말을 벗어 올려놓는 한국 사람도 만난 반면에 자신이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와 함께 절에 다니며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만났다. 손으로 밥을 먹는 나라라고 더럽다고 무시하는 한국 사람도 만났고, 내 나라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존중하며 배우려 하는 사람도 만났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며 처음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한국 사람도 만났고,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도 만났다.

나한테 월급을 주는 게 얼마나 아깝고 싫었으면 오백 원짜리,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 … 등을 주머니 속에서 하나하나씩 꺼내서 월급을 주는 한국 사장님도 만났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직하게 월급을 주는 사장님도 만났다. 한국 땅에서 이주민과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하는 한국 사람도 만났고 함께 사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만났다.

물론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나처럼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을 반반씩 겪은 사람의 생각과 늘 안 좋은 일만 겪어 온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좋은 일만 생길 수도 없고 늘 나쁜 일만 있을 수도 없다.

내가 15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한국인과 이주민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같은 땅에 함께 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서로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주민들도 한국이 뭘 해줄까 하는 것만 기대하기보다 한국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도 배우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꿈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꿈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며 손으로 실천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서 한국에 보답하고 싶다.
 

이 글은 작은책4월호 "우리 밖의 우리"코너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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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00:12 2010/05/0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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