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공무원… 문화운동가로… 새길을 낸다

 

[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우리 안의 다문화 ⑵ 다문화 리더 시대
이주민의 이익 대변자로 사회 각 분야서 두각
"구색 맞추기·정권 따른 부침 탈피 다양성 기여를"

김청환기자
chk@hk.co.kr                 안산=김창훈기자 chkim@hk.co.kr  

몽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이라(33)씨는 6ㆍ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돼 1호 다문화

정치인이 됐다. 2003년 9월 한국인과 결혼한 친구의 소개로 당시 여행업을 하던 사업가(50)와 결혼해 입국한 이씨는 2008년 10월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받았던 고난을 다른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안겨 주지 않으려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결혼이민자 네트워크 부회장과 경기 성남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덕분에 2008년 5월 세계인의날에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그의 이력을 높이 사 비례대표후보 1번으로 공천했고,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됐다.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다문화인들은 이처럼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킬 정치인을 배출할 만큼 외연을 넓히고 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국민참여당도 충북도의원 비례대표후보 1번으로 몽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체체그수렌(37)씨를 내세웠다. 1988년 입국해 2008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청주YMCA 등에서 다문화인을 위한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다문화 강사를 맡고 있다.

두 사람에게서 보듯 다문화인에 대한 관심은 주로 결혼이주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100만여 다문화인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다. 이주노동자를 대변하는 다문화 리더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95년 정치적 자유를 위해 버마를 떠나 한국에 들어온 소모뚜(35)씨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다국어 방송인 MWTV(이주노동자의방송) 대표로 10개 국어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유용한 정보를 얻도록 하는 일에 열심이다. 그는 이제 다문화인뿐 아니라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시민 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35년째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62)씨는 한옥 지킴이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는 지난해 6월 동소문6가 주민 20여명 명의로 시를 상대로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처분 등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공무원 사회도 다문화인들의 활약은 예외가 아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중앙공무원교육원 행정자치부 교육담당 계약직 나급인 더글라스 빈즈(미국)씨 등 5명이 국가직 공무원으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안토니 우디위스(영국)씨 등 123명이 교육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남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계약직 가급인 호셀라몬 로살(미국)씨를 비롯한 35명은 지방직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다문화 리더의 증가에는 함정이 있다. 특히 정치 분야의 경우 여야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징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효용성이 떨어지면 바로
폐기 처분된다. 또 정치 권력이 변하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많다.

미국이나 영국의 소수민족 공동체도 의회에 자신들의 대표를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회는 자유방임과 경쟁의 원리가 기본이어서 인위적 지분 배정은 드물다. 다문화 리더의
성공 비결은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똑같은 조건, 아니 더 열악한 조건에서 스스로 승리를 쟁취한 결과인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리더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창준(53) 전 미 연방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연세대 법학과 3학년 때인 1961년 단돈 200달러를 들고 혈혈단신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그는 지방신문 독자부 직원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사업에 성공한 김씨는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어 미국 정치의 꽃인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현재 그는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시장으로 일하고 있다.

영미와 달리 주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소수자로서 다문화 그룹에 대한 지분을 배정해 리더를 키운다. 하지만 이들도 그 많은 다문화인 사이에서 확실하게 경쟁력이 검증된 사람만 선택하기 때문에 한국의 부속품형 리더와는 다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리더라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으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해 새로운 이주민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국제적 관점에서 자기 분야의 경쟁력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인이 늘고 있지만 아직 귀화자는 7만여명에 불과해 소수자의 이익 대표성을 반영한다는 식의 다문화 리더론은 합리성이 떨어진다"며 "냉정하게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다문화 리더들이 나와야 소수자에게도 희망을 주고 문화 다양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 거주 필리핀인들의 우상 "적응 힘들겠지만 희망 잃지 않길"


필리핀 출신 귀화인 카스트로 경장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국경없는마을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외국인 밀집 지역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삶을 공유하는 이 마을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이가 대한민국 경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 출신 귀화인 아나벨 카스트로(42ㆍ여ㆍ사진) 경장이 그 주인공.

카스트로 경장은 안산 단원경찰서 외사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문화인이 많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이들과 소통하고 외국인 범죄를 사전 예방하는 게 그의 임무다. 22일 외사계에서 만난 카스트로 경장은 한글로 문서 작업을 하느라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물론 제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경찰관이 되고 무척 난감했습니다. 업무도 서툰 데다 너무 긴장도 됐고요."

그는 1995년 친구 소개로 지금의 남편(49)을 필리핀에서 만났다. 2년간 교제하다가 결혼한 뒤 한국으로 온 게 13년 전이다. 그는 전남 함평군에서 농사를 짓는 남편과 시부모를 모시며 2남 1녀를 낳았다. 피부색만 다를 뿐 여느 한국인 며느리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해 왔다. 그러다 함평경찰서에 필리핀과 관련된 사건의 통역을 도우며 경찰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카스트로 경장은 필리핀에서 8년간 고교 생물교사로 근무했다. 모국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해 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함평 지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능력과 부지런함을 인정한 함평경찰서는 외사 특채에 지원해 보라고 권했고, 2008년 7월 당당히 경찰관이 돼 안산시로 갔다. 시내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1,500여명의 필리핀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카스트로 경장은 우상으로 통한다. 하지만 법을 집행해야 할 대한민국 경찰관이기에 그들을 단순히 동포로만 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찰 업무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직장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무엇보다 어렵다. 현재 남편은 큰 아들과 함께 함평군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아나벨 경장은 안산시에서 자녀 둘을 데리고 있다.

그는 주말이 더 바쁘다. 다문화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안산시에서는 외국인 관련 행사들이 주말과 휴일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는 가족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경찰관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는 "경찰관이 돼 필리핀 사람들과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하니 정말 행복해요. 다만 우리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처럼 똑같은 감정으로 대해 주길 바래요"라고 당부했다. 국내 거주하는 다문화인에들에게는 희망을 강조했다. "한국 문화 적응이 힘들겠지만 시간은 금방 지나가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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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2 23:40 2010/06/2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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