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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1
    흩어진 사고의 흐름

흩어진 사고의 흐름

 

 

 

 

나를 위한 시간은 많은데,

이상하게 예상과는 다르게 행복하지 않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지하철에서 자리가 생기기가 무섭게 앉기 바쁘고

그러는 동시에 졸기에 바쁘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이들어서 부모랑 같이 사는 것도 힘들다.

나도 나만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을 몰라주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다.

보아하니 항상 화의 근원은 밖에 있는데,

엉뚱하게도 안에서 푼다.

그래서 엉뚱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봄이다.

아니 갑작스럽게 초여름이 왔다고 해야 하나.

나름대로 "혼자"  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잠 못 자는 와중에도

산책이란 산책은 다 다녀서

벚꽃도 보고

새로운 길도 알아내고

전시회도 다녀서

스스로도

신기하다.

게다가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실 그 동안 책 읽기가 가장 힘들었다.

마음이 산란하면 더욱 그러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와중에

책을 읽으니 좋더란 말이다.

그래서 불면증을 가진 사람들이 책을 그렇게 많이 읽나보다.

 

너는 무엇을 보자고 그렇게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느냐.

- 내가 너무 파라해서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 계속 했던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사실은 외롭기 때문이었다.

항상 내 화두는 외로움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가혹하게도 그 외로움을 거두어 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럼,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했을까.

일찍이 프로이드는 방어기제를 통해 사람들은 각기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한다고 말하곤 하였지.

가장 최선의 방어는 승화다.

그래서 예술가들이야 말로 자신의 약점을 가장 최선으로 방어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가들을 '종종' "미쳤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니.

나도 승화를 해야겠단 말이다.

중학교 때 piano란 영화를 봤다. jane campion??

주인공은 벙어리인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아노를 사용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만의 언어, 언어를 사용해도 대부분이 알아주지 않는 언어를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람과는 다르게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깐...여기서 사고의 비약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 잠시 주의가 흐트러졌다. 왜냐면 문자때문이다. 예상과 다름없는 그 문자.

예의 상 보냈던 것이고, 예상과 다름없이 그렇게 왔다. 정말, 예의가 뭔지!

 

나를 파괴하면서까지 그들의 지지와 인정을 구하진 말자.

있는 자존감도 바닥을 칠대로 쳤다.

 

보드카가 넉넉히 몸을 감싼다.

요즘은 술이 없으면 더 잠을 못 잔다.

 

웃끼게도 돈은 없어도 프리지아 한 다발은 사서 방에 놓는 이 어처구니 없는 낭만은 뭐란 말이지.

 

죄책감,

그것이 내 저조한 자존감의 원인이 아닐까.

그런데 왜 그리 죄책감이 많아, 내가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초자아가 너무 발달해서 그렇지.

 

- 내가 타이핑한 내용들을 보아하니 정말 사고가 왔다 갔다 하는게

미쳤구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렇다.

환경적으로 그것을 받쳐주는 것도 없고.

스스로 이기려니 힘들어서.

그렇다고 내가 졸라 어려운 상황이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사고에 내 감정에 파묻혀서 그렇게 그리 된 거다.

 

중요한 것은 함부로 나를 낮추지 말며,

기분이 나쁠 때는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고,

어줍쨚은 것들은 상대하지도 말자.

 

한 평생 사는 것도 아닌데, 좀 잘 살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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