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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닭백숙과 시골밥상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 계곡의 노루목 산장

- 엄나무 닭백숙과 시골밥상




늘 떠나고 싶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지랖 넓게 나부랭이 떨다가

도저히 능력 없음을 한탄할 때마다

떠나고 싶었습니다.


떠나도, 떠나도... 또 떠나고 싶어집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아

그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쓰러질 때 마다

떠나고 싶습니다. 떠나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나서고 보면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됩니다.

어느 길목에서는 되돌아갈 곳이 정해집니다.

잠자리도 먹거리도 산천도 사람들도 어색하고

익숙했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길 위는 늘 진행형입니다.

머물러지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또 나서야 할 것만 같습니다.

떠나고 싶었던 도시에서의 삶이 이러했는데,

길 위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딜 가면 편하게 누울 수 있을지...

그래서, 다시 되돌아갈 곳을 생각하게 됩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서 머무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2001년에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강추(?)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KBS 방송국 TV 프로그램(내 마음의 영상 포엠)까지 추천하여 TV 영상으로 그것도 2번씩이나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영월입니다. 영월의 서강을 지나 김삿갓 계곡에 들어서면 노루목 산장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2001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사람 2명, 강원도 춘천사람 1명, 원주사람 1명, 영월사람 1명 이렇게 5명이 동해안 여행을 하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곳 김삿갓 계곡에 들어왔습니다. 강원도 영월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동행인들도 이곳 산장의 군불 때는 방과 닭백숙, 할머님이 손수 해주시는 아침식사 등이 편하고 좋다기에 ‘그저 좋겠지’라는 맘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동해를 거쳐 삼척의 환선동굴을 보고 폐광지역이 되어버린 사북, 태백을 지나 이곳 강원도 영월로 들어왔습니다. 오후 늦게 들어와 어둑어둑해지는 계곡을 보면서 꽤 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지친 몸뚱이 뜨듯하게 지질 수 있다는 군불 때는 방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엄나무 닭백숙과 동동주를 기다리면서 짐을 풀었습니다. 방안은 앞선 손님들이 왔다간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상위의 남아있는 음식찌꺼기, 코끝을 핥고 지나가는 동동주 향기, 미처 다 날아가지 못한 담배 끝자락 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영월에 사는 동행인 왈, 이곳은 아는 사람만 온다며 영월에서는 꽤 입소문난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날 밤 먹었던 닭백숙! (원주 동행인 말에 따르면) 백혈병도 낫게 했다는 그 좋다는 엄나무로 국물을 낸 닭백숙이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직접 기르신 시골 닭이었습니다. 한 시간 이상 압력밥솥에서 푹 고아 국물과 닭고기가 먼저 나오고 그 뒤 닭죽이 나왔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칭찬하는 동행인들의 이야기에 별 생각 없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장난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한 닭백숙 국물이라니!!!! 정말 좋았습니다. 익숙한 향기는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에서 받아주는 그 맛이라니!! 정말이지 백혈병도 낫게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것 같은 엄나무 닭백숙과 시원한 동동주와 할머니께서 손수 장만하신 고추장아찌로 한 해 동안의 회한과 못 다한 인생살이들에 대해 이런저런 야기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다 떨다가 동동주가 떨어지면 할아버지, 할머니 주무신다는 핑계로 냉장고에 있는 맥주와 소주 내다가 먹었고 또 이야기하다가 새벽녘께 잠들었습니다. 따뜻해져오는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면서 군불 때는 할아버지 기침소리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며 한쪽 눈이 떠졌습니다. 머리도 움직여졌습니다. 군불 때는 방에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축축 처지지도 않았습니다. 몇 번 뒤척이다가 곧바로 일어났고 밖으로 나가기위해 문을 연 순간! 그 순간! 세상은 온통 흰색이었습니다. 새하얀 색!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눈 위를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아무도 발자욱 찍지 않은 곳, 아무런 흔적이 없는 눈 위를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방안에서 아직도 자고 있는 동행인들에게 일어나라고 마구 외쳤습니다. 너무 좋다고, 얼른 일어나서 보라고!! 김삿갓 무덤이 있는 곳에 올라가서 계곡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 속에 있는 이 계곡이 넘 좋았습니다. 눈물나게 시리... 넘...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구 감동받고 뛰어다니다가 내려와 아침상을 마주하였습니다. 어...라...이...게...뭐...야! 청국장, 보리쌀이 섞인 밥, 김치, 어제 저녁 맛있게 먹었던 고추장아찌, 계란 후라이, 그리고 어제 저녁 먹다가 남은 엄나무 닭백숙 국물 등등 그저 그런 시골밥상이 마루에 나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상에 앉았습니다. 청국장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는 순간! 결국, 그날 아침은 두 그릇 먹었습니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 놀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 해주신 바로 그 맛이 생각났습니다. 계란 후라이도 유정란으로 하신 거라고 하였습니다. 한 시간 이상 아침밥 먹고 밥상은 손님 5명이 이러 저리 치웠습니다. 빈 그릇 부엌으로 가져가고 부엌에서는 설거지하고 밥상치우고 마룻바닥도 닦았습니다.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불편하신 몸으로 손님 뒤치다꺼리 하시는 할머니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뭉개려 했는데, 동행인들이 너무 앞장서 일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아침밥상으로 치우기는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많이 생각합니다. 봄에도 가보고 가을에도 가봤습니다. 여름에만 못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여름에 놀러오세요. 물도 많고 참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2년 전 3월 초봄에 들렀는데, 예전보다 더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연세도 많으셔서 여간 고생이 아닐 것 같았는데, 자제분들이 주말에는 와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엄나무 닭백숙하시고 청국장 뜨시고 고추장아찌 직접 담그시는지 궁금합니다.


** 김삿갓 계곡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김삿갓 유적지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쳐 흐르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이처럼 산자수려한 고산준령 풍운속에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해학과 재치와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조선 후기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인 김삿갓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홈페이지 김삿갓계곡 홍보문안 중 일부)


** 노루목산장과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이 없어서 어쩌지요. 찍기는 했지만, 사진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 날아간 것 같습니다. 쓸만한 거라곤 2001년 겨울 크리스마스때 찍은 사진 한 장 남아있네요. 지송.... 꿩 대신 닭이라고 강원도 영월군에서 제공하는 자료 사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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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펀드하지 않을꺼야

 

한심한 인간 흘러보내지 못하고 뭐 그리 꼭꼭 가둬두나

사람과 사람관계는 거울이거늘

상대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내탓이 큰 걸

왜 그리 팽팽한 고무줄처럼 대하는지

어리석은 사람

 

소득분위 4분위면서 뭐 그리 돈벌어보겠다고

펀드해서 이 형편에 기백만원 날리리 신경쓰이네

정말 한치앞도 못보고 처지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

 

뭐 그리 잘났다고 설쳐대냐구 어리석기는...

 

옴마니반메홈 옴마니반메홈

 

근데,

 

펀드하고 싶어한거 아닌데

은행에서 하라고 자꾸 부추기고 평소 도움많이 주던 선배도

적극 추천해서 했던니

원금의 1/4 날릴줄이야

어디서 하소연하면 뭐하노

 

옴마니반메홈 옴마니반메홈....

 

- 2008/11/21 아프리카여행하려고 적금대신 들었던 펀드해약하면서 기백만원 날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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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가을에 긁적거림

 

2008/11/

 

뭐라도 하는게 좋지

나이들어 허리가 꼬부라져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내 몸으로 움직여 밥벌이, 용돈벌이라도 해야지

 

산재나서 누워있는 큰아들에게 손 벌릴까

앞뒤분간 안되는 이 생의 업일만큼 느껴지는

작은아들에게 손 내밀까

 

그나마 형편 좀 나은 막내아들은

늘 기대는 것 같아 눈치만 보이고

하나있는 딸래미 한테는

이전저런 야기는 해도

지생활 살림살이가 있는데

더 이상 손벌릴 수도 없어

 

자식새끼들이 그나마 한 달에

60만원 모아주는 것도 고마울 뿐

 

그러나, 이것저것 들어가는 것은 많은데

하찮은 몸둥이라도 움직여 벌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지하철에서

비록 신문파지 줍지만

하늘같은 일이다

 

-  2호선 지하철에서

신문파지 모으는 노파의 모습에서

내 부모님을 느끼다.

 

2008/11/

 

출근길 떠르르 추워진 날씨앞에

움추러드는 몸과 마음 뒤로 하고

출근하는 길

 

너나할 것 없이 추워진 날씨앞에 움츠리고

뚜꺼운 겨울 파카 주머니에, 바지에

한쪽 손 집어넣고

한손으로 담배 피우는 이들

 

밤새 세워두었던 길옆 차가

흠없이 잘 있었는지 살피면서

접어두었던 사이드미러 젖히는

젊은 아가씨

 

추운 새벽 일찍 일어나

주문 떡 만들었는지

참기름 맛있게 발려져

아침햇살에 반들반들거리며

나와있는 꽃송편들

 

터벅터벅 길옆으로 천천히 걸으며

점점 더 꼬부라지는 허리펴면서

어디론가 향하는 할머니

 

핸드폰가게 투명유리사이로 보이는 전자신문

.....

.....

.....

 

2008/11/12

 

어느덧 잎사귀 떨어지고

듬성듬성한 나뭇가지의 공간에서

흐르는 시간

 

그리고,

눈물이 빙그르르

 

아! 가을은

시간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나를 찾아준다

 

 

2008/10/8

 

가을이네!

아침저녁 약간 쌀쌀한 기운을 느끼면서

드높은 푸른 하늘 올려다 보면서

점점 물들어가는 나뭇잎 보면서

 

오늘도 변하는 하루다!

 

 

2008/10/27

 

찬바람불고

몸이 찌뿌둥해지니

만사 움직이는 것!  -> 귀찮아져

그나마 하던 아침산책마저 1주일이나 하지 못해

 

월요일 아침 늦어진 출근길에

옆에 앉은 젊은 친구 담배입냄새에 머리가 어질

 

이번주 언제 시간내어 산에게 가서

나를 돌볼 수 있을까?

 

 

2008/10/28

 

어쩌다 우리가

이 나이에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어떤 사람 말마따나

우연을 가장한 엄청난 필연인가

 

피곤한 몸과 마음이라도

같이 하는 이들과 좋은 하루이기를

  

 

2007/10/28

 

요즘, 참 공허하네!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네

무엇때문인지...

왜?

 

새로운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 받아서 일까?

아님, 즐거움이 없어서일까?

혹, 집중하는게 없어서 일까?

 

집중할 만한 것을 못찾아서이겠지

 

존재감을 타인에게 과시하지 못해서 더 공허한 걸까?

 

 

  

** 봄에 긁적 거림 들...

 

2008/4/14

 

토, 일요일 삼실 나가 일했더니

월요일 출근길이 천근만근

또 다시

운동적인 삶과 늙어가는 몸둥이에서

고개드는 감각사이에서

해매는 봄 날!

 

 2008/ 4/12 - 대구 친구 수경이가

 

벗꽃길이다.

자코 얇은 꼿들이

세상을

다르게 바꾼 듯

행복하다!

 

 2008/3/28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매번 화들짝 놀라고 기대되고 기분 좋아지는 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겨울에 내 인생이 있고

타협하지 않는 내 삶과 고집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2007/7/4  - 찐빵할매가 답답해 하는 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상대편 얘기를

일단 꾹 참고 다 들어봐!

 

답답하겠네

그래도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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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 겨울 잘 나야지

가을을 지나 겨울이 지나간다.

 

관악산에 올라 다 떨어진 나뭇잎과 거의 맨몸과 같은 나무들 사이

 

소나무의 푸르름이 넘 좋아

 

이봉우리 저봉우리 넘나들면서

 

겨울산을 즐기다가

 

문득, 이 겨울도 지나고

 

조금만 있으면 또 봄이 오겠지....

 

봄까지 아무도 죽지말고 쓰러지지 말고

 

잘 견뎌서

 

새 봄에는 더 이상 굶지않게 추위에 떨지않게  

 

하루하루 사는 것 걱정하지 않는

 

젊으나 늙으나 여자나 남자나 

 

우리 모두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재벌들이

 

굶주리는 죽어가는 일자리 빼앗기는 가족이 파괴되는

 

사람들 살리기 위해 앞장서서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같이 살기위한 노력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우리 손으로 망해가는 자본주의를 딛고

 

함께 행복하기 위한 세상 만들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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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귀뚜라미 소리는 집밖으로 뛰쳐나가게끔 유혹한다.

8월 26일 건강검진 결과 '비만'과 '지방간' '위염'이라는 소릴 듣고 어떻게든 운동한다는 마음으로

아침저녁 시간날때마다 산책을 한다.

 

며칠사이 제법 선선한 공기와 귀뚜라미 합창, 곧 푸른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노란색으로 변해갈 것만 같은 나무 잎들을 보면서 가려는 여름에 못내 아쉬움을 토하면서 다가오는 초가을의 햇살이 너무 좋기만 하다.

 

늦여름, 짙은 초록색, 보라색 맥문동, 운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보게 된 과꽃!

어릴때 즐겨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천천히 걸으면서 과꽃을 보면서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며칠동안 과꽃과 노래를 생각하다가

우리동네 아파트 화단에 누가 심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넘 예쁘게 핀 과꽃 한아름을

햇볕좋은 일요일 아침 8시 15분에 찍어보았다.

 

** 아침 8시~10시 사이의 햇살이 사진 찍기에 가장 좋은 것 같다.

    사진을 다운받아서 크게 보면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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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비가 온다.

이 비가 온뒤 곧 봄이 올 것 같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아주 쎄게...

몇 년전부터 봄이 되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 같다. 너무 강해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만 같다.

바람에 대해 좋은 느낌도 있지만, 아주 불안한 느낌도 있다. 요 몇 년동안 봄마다 부는 바람은 불안하다. 너무 쎄게 불어서 불안하다. 건물들이 흔들릴 것 같고, 건물 간판도 바람이 흔들려 뜯어져 나갈 것 같고, 판자집 지붕도 날아갈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누워서 지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티벳 카일라스 산 앞에 있는 마나스로바(성호,강가 강의 발원지)에서 맞았던 바람은 너무 좋았다.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몸뚱아리가 날아갈 것 같은 매섭고 칼 같은 바람이었다. 추워서 오래 서 있지도 못했지만 시원한 바람이었다. 너무 좋았던 그곳의 바람. 끝을 알 수 없는 그 큰 호수, 파랗디 파란 물빛, 드넓은 초원.

그 곳에서는 외로움도 불안함도 갈 길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 왔다는 것 그 자체가 놀랍고 신기하고 경이로 왔다. 처음 보는 초원, 호수, 설산, 타쵸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힘든 여행길에 지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외국인이든 현지인이든 친구든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채기 내는 친구 틈바구니에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 있다는 것, 이곳에서 날아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 끝도 알 수 없는 호수 낭떠러지에 서 있다는 것, 성스러운 곳이라기에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지형이 예사롭지는 않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했던 것 같다.


*

성호, 귀호 : 서부 티벳에는 카일라스 산이 있다. 흰두교 신중 시바신이 태어난 곳이다. 또, 불교의 수미산이 바로 이 산이다. 굉장히 성스러운 산으로, 흰두교와 불교 신자들이 성지순례하는 곳이다. 카일라스 산 맞은편에는 2개의 호수가 있다. 하나는 굉장히 큰 호수이고 또하나의 호수는 조그만 호수이다. 큰 호수 이름이 성호인 것 같은데, 티벳어로는 모르겠다. 이 지역 호수는 카일라스를 비롯한 이근 히말라야 설산의 눈이 녹아 이 호수로 이어진다.  성호는 강가(겐지즈)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차로 2시간 이상 달려도 성호를 벗어나지 않는다. 성호는 주변 초원지역과의 경계가 분명하다. 경계는 낭떠러지이다. 호수로 들어가려면, 카일라스 산에서 2~3시간이상을 달려 초원과 호수의 경계가 완만한 지역으로 가야 한다. 카일라스 산과 성호, 귀호 이 지역을 통틀어 성지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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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도읍지 - 동경성에서

2005/ 9/ 2 발행 도읍지 동경성 유적지를 둘러보고

 

 

조선민족의 혼과 발자취는 어디 갔는가?
 
발해의 오랜 도읍지, 흑룡강성의 동경성을 찾았다.
말로만 듣던 북간도 땅! 조신민족의 삶의 터전!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말!!!
발해의 땅을 디디고 걷고 있다가는 문득 드는 생각!
국경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발가고 사람가고 가족이 정착하여 먹고 살고 그러면 내땅 내하늘이 되는 것이지. 사람 사는데 국경이 무슨 의미인가? 땅 조각 만드는 것은 권력자들에게만 필요할 뿐이다.
 
장안의 궁궐터를 본 따 만들었다는 발해의 궁궐은 엄청나게 컸다. 그 옛날 발해의 영화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1000년이 지난 지금 이순간! 발해의 궁궐터에서 본 세상은 허망하였다. 발해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발해 궁궐터는 문화재 발굴 탐사 중이었다. 문화재 발굴 모습은 사진을 못 찍게 하였다. 그리고, 문화재 발굴중에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화재 발굴은 중국정부의 통제하에 진행하고 있었다.
 
발해궁궐터와 유물 전시관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찾아가는 길이 복잡해서 힘들었던게 아니라 동경성에 있는 주민과 문화재 관리자들의 불친절(?) - 아니 비협조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 때문에 너무 고생하고 기분을 완전히 잡쳐 버렸다.
먼저, 동경성역에 내려 역무원과 주변 식당 복무원들의 도움으로 3원정도면 발해유적지에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3륜 모터차를 탔다. 3원으로 가격으로 우리를 내려준 곳은 박물관이라는 간판만 있지 아무것도 없었다. 옆건물의 조선족 아주마이 설명에 의하면 발해유물관은 좀 더 먼 곳에 있다며, 3륜 모터차를 잡아줬다. 발해유물관과 궁궐터, 또 다른 곳 등 3군데를 봐야 된다며 30원을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물관과 궁궐터만 보여 달라며 10원으로 가격을 흥정하고 탔다. 우리가 내린 곳은 이상한 절이었다. 그러면서 기사는 돈을 달라고 했다. 3원만 줬고, 기사는 돈을 받고서 가버렸다. 찌그러져 가는 절은 "흥륙사" 라며 1000년 고찰이라고 했다. 입장료는 1인당 15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절을 둘러보고 난 뒤 절앞에 있던 또 다른 3륜 모터차를 타고 발해궁궐터에 가자 했다. 10원을 달라는 거였다. 우와 또 바가지! 아예 걸어가겠다며 터벅터벅 걷는데, 3륜 모터차가 다가와 5원으로 가자기에 바가지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차를 타고 발해 옛 궁궐터로 갔다.
여기서 부터가 화근이었다. 문제는 점점 커져갔다.
발해궁터에 들어가는 길들은 오래된 곳이라는 짐작을 하기에 충분했다. 오래된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궁궐터 앞 주차장에 내린 우리들은 궁궐터 안으로 걸어갔고, 3륜 모터차 기사는 궁궐터 관리인 듯한 사람과 뭔가를 이야기하였다. 궁궐터 관리인듯한 사람들이 우리보고 입장료를 내라고 하였다. 입장료는 무슨 입장료냐며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1인당 20원이라며 40원을 내라는 것이다. 4~5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들은 한창 실랑이를 벌인 뒤 30원을 줬다. 입장표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 기분은 상했지만, 상한 기분을 계속 가지고 갈 경우 우리만 손해다 싶어 잊어버리고 궁궐터 구경을 하였다. 궁궐터 구경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유물과 역사를 보면서 중국정부와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낸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또 중국정부의 유물발굴로 인해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서글펐다. 그러나, 콩밭과 잡초들만 무성한 곳으로 변해버린 옛궁궐터이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바라본 발해의 궁터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삶의 족적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가슴 한 구석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궁궐터에서 시내쪽으로 나오다보니깐 옛날식 건물이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구경삼아 들어가봤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발해유물관이었다. 입구에는 유물관내 사진촬영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고, 발해 왕들의 그림이 양쪽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발해유물을 보려는 순간! 유물관 관리인이 와서 입장료를 내야된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까 궁궐터앞에서 입장료를 냈는데, 지금 또 무슨 돈을 달라는 거냐구? 이거 참 신경질 나게 하네! 뺑 돌겠네!
한참을 실랑이 했다. 궁궐터 입구에서 입장료를 냈으며, 그들은 영수증을 주지 않고 가버렸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막무가네였다. 중국말이 능통하지 않아 몸짓 발짓 어설픈 한자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도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궁궐터앞 관리인에게 전화도 하는 것 같았는데, 무조건 표를 가져와야만 한다는 거다. 이것 참! 하는 수없이 다시 궁궐터 앞으로 걸어갔다. 가서 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니깐 하는 말! 3륜모터차 기사가 가져갔다는 거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택시기사가 영수증을 가져가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러면, 유물관앞 관리인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같이 가자고 해도 같이 안가고 전화만 했다. 하는 수없이 포기! 30원 적선했다고 생각하고 입장표를 다시 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유물관을 안 볼수도 없고…
유물관 보고나니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날씨도 꽤 추워졌다. 3륜 모터차를 잡아서 2원으로 기차역까지 가기로 했다. 기차역앞에서 내릴 때 잔돈이 없어 5원짜리 지폐를 주니 기사가 1인당 2원이라며 4원을 내라는 거였다. 악! 끝까지 이러네!! 미치겠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돌아가면서 동경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 발해유물관에서 영어로 소개된 글중에 ‘… 발해유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해 중요한 문화…’라는 표현이 있었다. 우리라니? 발해문화가 중국의 문화로 생각한단 말인가? 중국 국토내에 있는 곳이니 중국문화로 표현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한국은 발해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중국은 한국사람들이 발해와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러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사람들의 불친절도 앞으로 별로 개선될 여지도 없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흑룡강성에는 옛날 마적떼들의 후손들이 살기에 소매치기, 사기등이 많다며 연길에 사는 사람들도 가기 어려운 곳이 동경성 발해유적지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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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30 여행일기

 

나의 영혼과 자신을 알기위해 떠난 여행이

또 다시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럽다.

같이 떠난 동료와 호흡을 마추는 것 또한 힘든다.

나는 나대로 나의 감정표현을 많이 하지 않으려 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일이 불쑥 튀어 나올때는 참기가 힘들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어떻게 같이 보낼까 생각하니 갑갑하다.

기분따라 움직이는 생각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때 조절할 방법을 찾아야 겠다.

그 첫째 방법으로 계획되지 않은 일정을 하고 싶을때는 미리 동료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이해를 구하도록 하자. 그리고 같이 의견 일치하에 일정을 변경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

둘째, 일정 변경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고 불쑥 제기하여 곧바로 진행하거나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고 진행할 경우 제안한 사람이 진행하도록 하자.

세째, 그래도 정 내키지 않을 때는 일정을 따로 하도록 하자.

그리고, 상대의 의견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도,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는 것이 함께 하는 여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분만 상하게 하는 것 같다. 언제 기회를 봐서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겠다.

또한, 비단길 여행을 정 자신없어 할 경우 포기하도록 권하고 나만 떠나는 것을 준비해야 겠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일정을 제안받았을 때 세번 생각해 본뒤 판단하자.

그리고,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절대 먼저 나서서 진행하지 말고 제안한 사람이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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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봄이야!


햇살이 따습다. 보는 것 만으로도 따스함이 느껴진다.


겨울이 가고 있네, 그려!


그래도 겨울의 끝자락이 있는 것 같다.


햇살만으로는 봄인것 같은데,


밖으로 나가보면 바람끝이 차다.

 

얇은 옷 입고 나가기가 불안하다.


그래서 여전히 겨울에 입던 두꺼운 옷 입고 외출한다.

 

 

 

 

 

 

 

 

 

 

 

 

 

그래도 봄은 봄!


봄 햇살아래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는


오는 봄 앞자락을 등으로 막으며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는 봄자락을 느낀다.

 

 

 

 

 

 

 

 

어제 38여성대회때 광주극단 '신명'의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 공연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미 봄이 와 있다.


1년을 넘기는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에도 봄이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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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올해 처음 블로그에 들어와 보네.

 

바람불고 춥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방안에서 게임하고 메일확인하고

밥먹고 뒹굴고 있다.

좀 있으면 친구들의 딸들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내일 있을 강화도 켐프에 가기 위해 오늘밤 서울로 와서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일찍 집결지까지 가기 위해서다.

물론, 웬쑤(?)같은 친구들은 나보고 수행하라고 한다.

 

처음엔 아무생각없이 그렇게 하자고했지만,

초등학생들이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 잔다고 하니

반찬은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얘들은 무얼 잘 먹는지? 도통 자신이 없다.

 

그래서 시금치 무치고 콩나물도 볶았는데,

뭔가가 부족한 듯하다.

멸치라도 볶을까?

아니면 두부사서 구워줄까?

냉동실에 있는 굴을 꺼내 굴전할까?

 

이제 1시간만 있으면 꼬마 손님맞이하러 서울역으로 가야한다.

그때까지 무얼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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